나폴레옹의 이름은 농민과 군인에게는 질서와 영광을 의미하였고, 상공업자에게는 경제적 번영을 의미하였다. 또한 많은 노동자에게는 사회주의와 대혁명의 계승자로 보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56

농민과 대다수 국민에게 공화정이란 무질서와 불안정과 중세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나파르티슴은 질서와 영광과 번영을 의미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57

국민투표란 근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색인 간접민주주의를 짓밟는 제도로서, 이것은 보나파르티슴의 창작 중 최고의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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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1851년 12월 2일의 쿠데타는 비틀거리는 제2공화국에 대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제2공화국의 실험은 심각한 환상으로 끝났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69

그리하여 나폴레옹 3세는 크림 전쟁에 영국과 함께 참전하여 전제주의의 나라 러시아를 항복시키고 1856년에 파리에서 열국 평화회담을 열었다. 유럽 열강이 파리에서 회담을 갖기는 1822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인데, 그때의 프랑스는 떳떳치 못한 위치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당당한 전승 국가의 하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79

사르데냐 왕국 중심의 이탈리아 통일 왕국의 탄생은 나폴레옹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은 따지고 보면 그의 실책에 의해 촉진된 것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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