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사기의 완전 폐지는 산악파가 국민공회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1793년 7월 17일령에 의하여 비로소 실현된다. - P308

지롱드당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산악파는 상퀼로트의 요구에 응하는 적절한 조치들을 하나하나 실시하였다. - P349

그는 파리 코뮌과 국민공회의 사이, 국민공회와 자코뱅 클럽의 사이, 파리와 프랑스의 사이를 잇는 살아 있는 유대로서 코뮌과 국민공회를 둘 다 수호하는 데 성공하였다. - P352

한편 혁명정부는 혁명력(공화력)을 제정하여 전해인 1792년 9월 22일을 새 역법의 설날로 정하였다. 1년을 열두 달, 한 달을 30일, 한 주일을 10일로 나누고 그 끝날을 휴일로 하고, 연말의 5일을 상퀼로트의 날로 정하여 공휴일로 하였다. 달의 명칭도 전통적인 이름을 버리고 계절의 특징을 따라 붙였다. - P359

혁명력의 재정에는 최소한 두 가지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역법의 불합리성을 합리적으로 고친다는 생각이었다. 달마다 날수가 다르고 7일을 일주일로 할 때 빚어지는 복잡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수학적 과학 정신의 소산이었다. 또 하나는 공화정의 선포를 인류 역사의 획기적 사건으로 생각한 혁명 정신이었다. 역사를 인간 이성의 발달과 과학적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했던 계몽사상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 이성의 몽매의 산물인 왕정을 타도하고 계몽주의의 산물인 공화정을 수립한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뜻깊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몽매한 역사이고 이제부터의 역사는 이성의 역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서 공화정이 시작되는 날을 혁명력의 설날로 잡았던 것이다. - P361

왼쪽의 에베르파와 오른쪽의 당통파를 없앤 로베스피에르는 이제 양쪽에서 오는 반대에서 모두 해방되었다. - P377

동시에 "아이들은 부모의 것이기에 앞서 국가의 것"이라는 생쥐스트의 사상에 따라 1793년 말 초등교육의 의무제를 세계 최초로 제정하였다. - P395

날이 밝자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일파 22명이 곧바로 형장으로 끌려가고, 함께 체포된 코뮌파 70명도 그 뒤를 따랐다. 이 사건이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이고, 이 쿠데타를 주동한 자들을 테르미도르파라고 부른다. - P414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프랑스의 민주 공화주의를 100년간 후퇴시켰다. 테르미도르파의 지배하에서 뒤늦게 그 쿠데타의 성격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최고 임금제의 부활을 위하여 봉기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 P415

프랑스 혁명은 테르미도르 9일로써 막을 내리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결국 나폴레옹의 제정과 부르봉 왕가의 복위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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