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럽시다,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나는 눈이 멀 때 내 멀어버린 눈을 보고 있었소. 무슨 뜻이죠. 아주 간단하오, 내 텅 빈 안구에 염증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떻게 된 건가 보려고 안대를 벗었는데, 그 순간에 눈이 멀어버렸소. 꼭 알레고리처럼 들리는군요,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말하더니 덧붙였다, 자신의 부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눈. - P362

처음에 이 병실의 눈먼 사람들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을 때는 두세 마디만 나누면 낯선 사람도 불행을 같이 겪는 동반자로 바뀔 수 있었다. 그리고 서너 마디만 더 하면 서로 모든 허물을, 그 허물들 가운데 일부는 정말 심각한 것이었음에도, 용서해 줄 수가 있었다. - P37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격리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이 용변이라는 문제에서 인류의 탁월한 본성이 부과하는 십자가를 대체로 양심적으로 또 위엄 있게 지고 갈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 P373

이 눈먼 사람들은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곧 짐승으로 변할 것인데,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눈먼 짐승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그림과 이 세상의 이미지들에 대해 말하던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록 표현은 약간 달랐지만, 밤늦게 그 말을 한 사람은 남편 곁에 누워 있는 의사의 아내이다. - P377

하지만 우리가 눈이 먼 채로, 완전히 눈이 먼 채로 여기 있다는 것만 잊지 마, 우리는 따뜻한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동정심도 없는 장님들이야, 그림책에 나오는, 눈이 먼 어린 고아들의 세계는 끝이 났어,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거야. - P380

알아, 안다고, 난 평생 사람들 눈을 들여다보며 살았어,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거야, 그런데 그 눈을 잃은 사람들이니. - P380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세상 것들 가운데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신에게 속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무관심한 태도로 자기 물건을 내주었다. 그것 역시 또 하나의 투명한 진리였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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