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게 아닙니다"라고 랑베르가 말했다. "나는 늘 이 도시나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싫건 좋건 간에 이 고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일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서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지요. 그런데도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거기서 돌아서 있죠."
어린애는 임시 병원에 이송되어 침대 여섯 개가 설비되어 있는 옛 교실에 수용되었다. 약 스무 시간이 지나자, 리외는 아주 절망적인 케이스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 작은 몸은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병균에 침식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그러나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작은 멍울들이 가냘픈 사지의 마디마디에 퍼져 있었다. 이미 진 싸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외는 카스텔의 혈청을 그 어린애에게 시험해볼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그 무죄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언제나 그들에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로 보였다.
어린애는 마치 누가 위장을 잡아 뜯기라도 하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시 몸을 구부렸다. 어린애는 한참 동안 그처럼 몸을 구부리고, 마치 그 연약한 뼈대가 휘몰아치는 페스트의 바람에 꺾이고 끊임없는 열풍에 삐걱거리듯, 오들오들 떨면서 경련적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 발작이 지나가자 몸이 약간 풀리고 열이 가시는 듯이 보였고, 헐떡거리면서 축축하고 독기 있는 모래사장에 내던져진 듯싶었는데, 편안해진 모습이 벌써 주검과 같았다.
타오르는 듯한 열의 물결이 세 차례나 밀려와서 몸이 약간 솟아오르더니, 어린애는 바싹 오그라들어서 그를 불태울 것 같은 불꽃의 공포에 싸여 침대 밑바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불을 차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속눈썹에서 솟아 나오는 구슬 같은 눈물이 납빛 얼굴 위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애는 그 발작이 끝나자 기진맥진해서, 뼈가 드러나 보이는 두 다리와 48시간 만에 살이 완전히 빠진 두 팔을 오그라뜨리면서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괴상한 자세를 했다. 타루는 몸을 굽히고 그의 두툼한 손으로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그 조그만 얼굴을 닦아주었다.
리외는 가끔가다가 별로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 자기의 무력한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애의 맥을 짚어보곤 했는데, 눈을 감으면 그 요란한 맥박이 자기 자신의 피의 동요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고통받는 그 어린애와 한몸이 되었으며, 아직 성한 자신의 온갖 힘을 다해서 그 애를 지탱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치되었다가도 두 사람의 심장 고동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어린애는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그의 노력은 허공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의 찰흙처럼 굳어버리고 만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마디의 비명,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롭고 어색한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그리고 마치 모든 인간에게서 동시에 발해진 듯싶을 만큼 비인간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외는 여전히 골이 난 태도로 몸을 돌리더니 격렬한 어조로 내뱉었다. "허, 그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아닙니다, 신부님"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까지도 고통을 당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기란 죽어도 싫습니다."
"그야 뭐 어떻습니까?" 하고 리외가 말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죽음과 불행입니다. 그것은 당신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든 원하시지 않든 간에 우리는 함께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며 그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리외는 파늘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그는 파늘루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하느님조차도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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