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필자 자신도 그러했지만)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서 그냥 견딜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의 문을 폐쇄함으로써 생긴 가장 중요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사실 그럴 줄은 꿈에도 모르고 당하게 된 돌발적인 이별이었다.

왜냐하면 그 귀양살이의 감정이야말로 우리 마음속에 항상 지니고 있던 공허였고,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하거나 또는 반대로 시간의 걸음을 재촉하려는 구체적인 감정이었으며, 어리석은 욕망이었고, 추억에 대한 불타는 듯한 화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그 심연과 정상의 중간 지점에 좌초되어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돌면서 기약 없는 그날그날과 메마른 추억 속에 몸을 맡긴 채 스스로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기를 수락함으로써만 힘을 얻을 수 있는 방황하는 망령이 되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의 깊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맛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또는 그녀와 옛날에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모든 것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덧붙여보려 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현상(現狀)에 진저리가 나고 과거로 되돌아갈 전망도 없으며 미래를 박탈당한 우리는 마치 인간적인 정의와 증오 때문에 철장 속에 갇힌 사람들 같았다.

어떤 유령을 상대로 계속해온 그 기나긴 마음속의 대화에서 끌려 나오자마자 아무런 변천의 여유도 없이 흙의 가장 무거운 침묵 속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그는 전혀 시간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행성 열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즉시로 그 환자를 끌려가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럴 때면 정말 추상과 곤란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병자의 가족은 환자가 완치되거나 죽기 전에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동정이 아무 소용이 없을 때는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점점 닫혀가는 것을 느끼고서, 의사는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나날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위안을 찾았다. 그는 자기의 임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수월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나날을 기뻐했다. 그의 어머니가 새벽 2시에 아들을 맞아들이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아들의 공허한 눈길을 슬퍼했는데, 그때 그녀는 리외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을 그야말로 한탄하는 것이었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다소 추상을 닮을 필요가 있다.

그처럼 리외는 꾸준히, 그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개개인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 사이에서 그 기나긴 기간에 걸쳐 우리 도시의 생활 전체를 지배했던 그 우울한 투쟁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 추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리로 보였다.

그들에게는 페스트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불쾌한 방문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단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겁은 났지만 절망하지는 않았으며, 페스트가 그들의 생활 형태처럼 보이게까지 되고 또 그때까지 영위할 수 있었던 실존 자체를 잊어버리게까지 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여러분, 여러분은 불행을 겪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불행을 겪는 것이 당연합니다"라고 격렬하고 단호한 한마디를 청중에게 던졌을 때, 일종의 소용돌이가 군중을 헤치고 성당 앞뜰에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파늘루 신부는 그 말 다음에 애급에서 있었던 페스트에 관한 <출애굽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재화(災禍)가 처음으로 역사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급 왕은 영원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는데,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하느님의 재화는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 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는 우리 시민들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참상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말이요 또한 사랑의 말인 유일한 말을 하늘을 향해 외치기를 그 어떤 희망보다도 더 원하고 있었다. 그 나머지 일은 하느님이 하시리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 설교는 그때까지 막연했던 어떤 생각, 즉 자기들은 미지의 어떤 죄악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감금 상태의 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 리외에게는 밤이 신음 소리로 가득 차 있는 듯싶었다. 가로등 위 어두컴컴한 하늘 어딘가에서 들리는 휘파람 소리는 보이지 않는 재앙이 더운 공기를 지칠 줄 모르고 휘젓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