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와 올리버는 가장 번잡하고 사람이 빡빡하게 몰려 사는 동네를 한참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가 지금껏 지나쳐온 길 중에서 가장 더럽고 비참한 좁은 길로 들어서자 잠깐 멈춰 서서 약도에 나온 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길 양쪽의 집들은 높다랗고 컸지만 매우 낡았고,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것은 집들이 방치된 상태에서도 짐작이 가지만 가끔 팔짱을 끼고 몸을 확 굽힌 채 몰래 그림자처럼 숨어 다니는 남녀들의 지저분한 모습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었다. 셋집의 상당수는 1층이 상점이었지만 상점문은 꽉 잠긴 채 곰팡이로 뒤덮여 썩어가고 있었고, 위층 방들에만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떤 집들은 오래되고 썩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보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 흔들리는 벽과 길바닥 사이에 큰 나무 기둥들을 받쳐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집조차도 노숙자들이 밤마다 드나드는 보금자리로 이용되는 모양이었다. 문이나 창문자리에 있던 거친 판자들 여러 개가 뜯겨져 있는 모양새가 한 사람이 들락거릴 정도의 개구멍 같았다. 하수구 도랑의 물은 고여서 썩어가고 있었고 더러웠다.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썩어가는 쥐들조차도 굶주려서 끔찍한 모습이었다.
(94-95/883p)

올리버는 한편으로는 이 세 사람과 다른 한편으로는 넘치도록 많은 장례식 사이에 끼어서, 굶주린 돼지가 실수로 양조장 곡물창고에 갇힌 것만큼 그렇게 안락한 처지는 못 되었다.
(105/883p)

올리버의 가슴이 들썩거렸고 허리가 꼿꼿해졌으며 두 눈은 형형한 빛을 내뿜었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돌변해서 발밑에 쭈그린 채 누워 있는 비겁한 가해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기백을 내보이며 노아에게 맞선 것이다.
(109/883p)

올리버는 음울한 장의사 가게의 정적과 고요함 속에 홀로 남겨지자 비로소 낮에 받았던 수모와 굴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까지 올리버는 경멸의 눈빛으로 모욕을 한 귀로 흘려들었고,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매질을 견뎌냈다.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인다고 해도 끝까지 비명 한 번 안 지르리라는 자존심이 가슴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게 되자,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 그대로 어떤 어린애보다도 더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121-122/883p)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축복은 올리버가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이후로 온갖 고난과 역경, 변화 속에서도 올리버는 이 축복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124-125/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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