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발코니에서 아내는 그에게 손짓을 했고 그는 연신 뛰어가다가 뒤돌아보며 밀짚모자를 흔들어 응답하더니 먼지와 더위로 잿빛이 된 거리로 달려 나갔고 더 멀리 영화관 앞 아침나절의 눈부신 햇빛 속으로 사라져 버린 뒤 다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119/662p)
앙리 코르므리도 끼여 있는 아프리카 부대는 최대한 신속히 수송되어 와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그 알 수 없는 고장 마른에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배치되었는데 군모를 마련해 쓸 겨를도 없었고 알제리에서와 같이 색깔이 바랠 정도로 햇살이 거세지도 않았으므로 아랍인과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알제리 사람들의 무리들은 번쩍거리고 말쑥한 색깔의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채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붉고 푸른색의 과녁들이 되어 무더기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무더기로 부서져 가지고 장차 4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내들이 진흙탕의 굴속에 엎드린 채 조명탄, 소이탄이 빗발치는 하늘 아래 1미터 간격으로 매달려 있게 될 그 비좁은 영역을 기름지게 해주기 시작하는 가운데 부질없이 진격을 예고하는 탄막(彈幕) 사격 소리만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a] 그러나 당장은 아직 소굴도 없었고 다만 빗발치는 포탄들 밑에서 오색의 밀랍 인형들처럼 녹아내리는 아프리카 부대들뿐이었으며 매일같이 수백 명의 고아들이 알제리의 방방곡곡에서 만들어져 이 아랍인, 프랑스인의 아버지 없는 아들딸들은 그 후 가르침도 유산도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있었다. (123-124/662p)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떠나는 적이 거의 없으니 공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고 그게 그 턱인 단조로운 생활을 하니 시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었다. (139/662p)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이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 (140/662p)
물론 그는 친구들이 불러내는 소리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의 매혹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도덕의 실천보다는 잘못을 호도하는 쪽으로 온갖 주의를 다 기울였다. (150/662p)
또 어떤 사람들은 기름과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아랍 튀김 과자들을 팔았다. 이렇게 늘어놓은 물건들 주위에는 설탕 맛에 이끌려 달려드는 파리와 아이들의 떼거리가 서로서로 뒤를 쫓으면서 윙윙거리고 와글거렸고 상품을 벌여 놓은 진열대가 기우뚱할까 봐 걱정이 된 장사꾼은 욕을 퍼부어 대며 파리와 아이들을 한꺼번에 쫓아 버리는 것이었다. (163/662p)
영화가 계속되는 동안 줄곧 어떤 노처녀가 피아노로 반주를 하게 되는데 레이스로 장식된 칼라로 뚜껑을 해 덮은 광천수 병 모양으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그녀의 차분한 뒷모습은 〈벤치 좌석〉의 떠들썩한 야유와 대조를 이루었다. (165/662p)
어느 의미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완전한 귀머거리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백 개 남짓한 어휘들 못지않게 의성어와 손짓으로 의사 표시를 하며 지내는 터인 자신의 동생 에르네스트[1]만큼도 그녀는 생활에 섞이지 못하고 지냈다. (171/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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