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파리를 떠나 아프리카로 갈 때는 매번 이런 기분이었다. 어렴풋하게 솟아오르는 희열, 부풀어 오르는 가슴, 멋진 탈출에 성공하여 경비병의 낯짝을 상상하면서 껄껄 웃어 대는 사람의 만족감. 육로로 혹은 기차로 돌아올 때마다 변두리 동네의 첫 번째 집들이 나타날 즈음이면 그의 가슴은 죄어드는 것이었다. (74/662p)
어쨌든 여름철에 그 샘은 바싹 말라서 짙은 색 돌로 된 그 거대한 가장자리는 수많은 손길과 바지 엉덩이에 쓸려 반들반들해지고 미끄러워져 있었는데 자크, 피에르, 그리고 다른 여러 친구들은 그 위에서 말 타기를 하면서 엉덩이를 깔고 앉아 빙그르르 돌면서 놀다가 끝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넘어지면 오줌과 햇빛 냄새가 나는 별로 깊지 않은 연못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79/662p)
그럴 때면 그들은 꼬마 장과의 입씨름이 없지 않으나 결국 굵은 박하사탕, 땅콩 혹은 말려서 간을 한 이집트 콩, 아랍인들이 영화관 문 앞에다가 바퀴 달린 간단한 나무 상자로 파리가 잔뜩 엉겨 붙은 좌판을 차려 놓고 파는 트라무스라는 이름의 층층이부채꽃 혹은 색깔이 요란한 보리사탕 등을 나눠 먹었다. (84/662p)
제철에는 매일같이 감자튀김 장수들이 열심히 화덕을 달구었다. 대개 이 작은 무리의 아이들에게는 튀김 한 봉지 사먹을 돈도 없었다. 어쩌다가 그들 중 어느 하나가 필요한 돈[a]을 가지고 있게 되면 그는 감자튀김 한 봉지를 사가지고 공손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의 무리를 이끌고 엄숙하게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간 다음 바다 앞 망가진 낡은 배 그늘에서 두 발을 모래에 박고 한 손은 튀김 봉지를 똑바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통통하고 바삭바삭한 감자튀김이 한 개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봉지를 덮은 채 털썩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는 것이었다. (90-91/662p)
그들은 삶에서나 바다에서나 지배자였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호화로운 것을 받아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유한 재산을 가진 영주처럼 그것을 무제한으로 쓰는 것이었다. (92/662p)
하늘은 대낮의 후끈한 열기가 가시면서 더 맑아지다가 이윽고 초록빛으로 변해 갔고 햇빛이 누그러지면서 만(灣)의 저편에서는 지금까지 안개 낀 것처럼 흐릿하게 묻혀 있던 집들과 도시의 곡선이 더욱 뚜렷해졌다. (93/662p)
대개 피에르가 가장 먼저 〈늦었어〉 하고 말을 꺼냈고 그러면 곧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서둘러 인사들을 나누었다. 자크는 조제프와 장 형제와 함께 다른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집을 향하여 달렸다. 그들은 숨이 턱 끝에 닿도록 힘껏 뛰었다. 조제프의 어머니는 걸핏하면 매를 들었다. 더군다나 자크네 할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93/662p)
식탁 주위에는 석유램프의 붉은 불빛 아래 반벙어리인 삼촌이 계속 수프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아직 젊고 머리의 숱이 많고 갈색인 어머니가 아름답고 정다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 알면서……〉 하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검은색 옷을 꼿꼿하게 가다듬어 입고 입을 꼭 다문 채 맑고 엄격한 눈초리로 쏘아보면서 할머니가 딸의 말을 끊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하고 물었다. 「피에르하고 같이 산수 숙제 했어요.」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머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고 아직 모래투성이인 양쪽 발목을 만져 보았다. 「해변에 갔다 왔구먼.」 〈이 거짓말쟁이〉 하고 삼촌이 또록또록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의 등 뒤로 가서 방 문 뒤에 걸려 있는 황소 힘줄이라고 하는 조잡한 채찍을 벗겨 들고 그의 종아리와 엉덩이를 서너 번 고함치고 싶을 정도로 아프게 후려쳤다. 잠시 후 그는 입 안과 목구멍 속에 눈물이 가득한 채, 불쌍히 여긴 삼촌이 떠준 수프 접시를 앞에 놓고 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려고 전신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할머니에게로 잠시 눈길을 던지고 나서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수프 먹어. 이제 됐다. 이제 됐어.」 그제야 그는 울기 시작했다. (94-95p)
한편 그는 턱밑에 있는, 두 개의 목 힘줄 사이의 언저리를 상기시켜 주는 어머니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고 있었다. 다 큰 지금은 입술을 갖다 대고 키스할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아주 드물게나마 어머니가 그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혀 줄 적이면, 그리하여 어린 시절의 삶 속에서는 너무나도 희귀한 애정의 냄새가 난다고 여겨졌던 그 오목한 곳에 코를 박고 잠이 든 척할 때면, 숨을 들이켜 냄새를 맡고 애무하기를 좋아했던 바로 거기였다. (99/662p)
그는 항상 죽음처럼 헐벗는 가난의 한가운데서, 보통 명사들 속에서 성장했다. 반면에 삼촌 댁에 가면 고유 명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108/662p)
일생 동안 일만 하고 지내다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였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나 달게 받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손상되기를 거부했던 강인하고 씁쓸한 표정의 한 사내. 요컨대 가난한 사내. 가난이란 일부러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없어지지 않고 줄곧 따라다닐 수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117-118/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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