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은 동쪽 바다에는 이르지 못한 채 이제 이 고장 전체를, 강 가까운 질퍽한 땅들과 그 주위의 산들을, 희미한 울음소리가 그들 등 뒤에서 이따금씩 들리곤 하는 동안 자루를 같이 쓰고 꼭 붙어선 두 사내에게까지 그 진한 냄새가 피어올라오는 거의 인적 없는 광대한 저 대지를 적시게 될 것이었다.
최초의 인간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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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와서 살게 된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는 알제리에 그대로 눌러 살고 계신 어머니가 그렇게도 오래전부터 당부하며 시킨 일을 실행해야겠다고 별러 왔다.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 당신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아버지의 무덤을 한번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44/662p)
더욱 뿌연 하늘에는 희고 갈색 나는 작은 구름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고 하늘에서 가벼운, 그리고 나중에는 어두워진 빛이 차례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광대한 사자(死者)들의 벌판에 침묵이 가득했다. 도시의 어렴풋한 소음만 높은 담 저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다. 이따금 검은 실루엣이 저쪽 멀리 있는 무덤들 사이로 지나가곤 했다. (46/662p)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무덤들 사이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그의 주위에서 시간의 연속성은 부서지고 있었다. 세월은 끝을 향하여 흘러가는 저 도도한 강물을 따라 순서대로 배열되기를 그쳐 버리고 있었다. 세월은 오직 파열이요 깨어지는 파도요 소용돌이일 뿐이었다. 자크 코르므리는 그 속에서 고통, 그리고 연민을 부둥켜안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48/662p)
지난 40년 동안 그를 따라다녔던 이 세계의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질서에 반항하여 더 멀리, 저 너머에까지 가고자 하면서, 앎을 얻고자 하면서, 죽기 전에 앎을 얻고자 하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러나 영원히 존재하기 위하여 마침내 앎을 얻고자 하면서, 그를 온 생명의 비밀로부터 갈라놓는 벽에다 대고 한결같은 힘으로 고동치고 있는 이 가슴일 뿐이었다. (49/662p)
푸근하고 둥근 몸매 그 자체, 손가락들이 약간 뭉툭한 손은 제 발로 걸어서 돌아다니는 일이라면 질색을 하는 중국의 고관을 연상시켰다. 그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눈을 지그시 감을 때면 영락없이 비단옷을 입고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을 낀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매를 보면 영 딴판이었다. (56/662p)
20년 동안이나 같이 살고 나서도 한 인간을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은 지 40년이 지난 사람에 대해서 당연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조사를 한다 해봤자 제한된, 그래 제한된 것이라고 해야 옳겠지, 의미의 정보밖에는 얻지 못할 것 아닌가. 하기야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58/662p)
그러나 재능을 많이 타고난 사람들에게는 스승이 필요해요. 우리가 가는 길 위에 인생이 어느 날 세워 놓은 사람, 그 사람은 영원히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돼요, 그가 의식적으로 은혜를 끼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게 나의 신념이에요! (60/662p)
「맞아요. 난 인생을 사랑했어요. 탐욕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 끔찍스럽고 접근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게 바로 내가 인생을 믿는 이유예요. 회의주의 때문에. 그래요, 나는 믿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항상.」 (65/662p)
「예순다섯 살이 되면 한 해 한 해가 유예 받은 시간이지. 나는 조용하게 죽고 싶어. 죽는 것은 무서워. 난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어.」 (66/662p)
「나의 내면에는 끔찍한 공허가, 가슴 아픈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어서…….」 (67/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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