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닙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 제가 늘 이방인이고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겪을 만큼 겪고 보니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가 여기 사람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411/667p)
바로 그런 어린아이 하나가 마치 창자를 물려뜯기기라도 하는 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시 한 번 자기 몸을 구부렸다.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자신의 홀쭉한 몸뚱아리가 휘몰아치는 페스트의 광풍에 접히고 뜨거운 숨을 계속 내쉴 때마다 찢어지기라도 한다는 듯 오한과 경련으로 몸을 떨었다. 돌풍이 지나고 나자 몸이 잠시 축 늘어졌고, 신열이 물러가는 듯 축축하고 독을 품은 모래사장 위에 거친 숨을 내쉬는 아이는 내처졌는데, 그곳에서의 휴식이란 이미 죽음을 닮아 있었다. 다시 한 번 타는 듯한 신열이 파도처럼 세 번째로 밀려들어 아이를 잠시 들어 올리자 아이는 몸을 움츠렸고, 자신을 태워 버릴 듯 타오르는 무시무시한 불길에 그만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담요를 걷어차며 미친 듯이 머리를 뒤흔들어 댔다. 눈꺼풀 밑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솟아 나와 납빛 얼굴로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고비가 지나자 기진맥진해진 아이는 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다리와 꼬박 이틀 동안 살이 다 녹아내린 것 같은 두 팔에 경련을 일으키며 난장판이 되어 버린 침대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괴이한 자세를 취했다. (422/667p)
오직 그 어린아이만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따금씩 리유는 딱히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무력한 부동의 자세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아이의 맥을 짚어 보곤 했는데,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의 그 불안한 맥박이 솟구쳐 오르는 자신의 피와 뒤섞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고통받는 아이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았고, 아직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아이에게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그들의 심장 박동은 잠시 하나로 모였다가도 어긋나 버렸고, 어린아이는 그만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가녀린 아이의 손목을 제자리에 놔두고 자기 위치로 돌아왔다. (424/667p)
바로 그때 아이가 처음으로 눈을 떠 자기 앞에 있는 리유를 바라보았다. 잿빛 진흙을 뒤집어쓰고 이제는 완전히 굳어 버린 듯한 그 얼굴의 움푹 파인 곳에서 입이 열리더니, 기다릴 사이도 없이 외마디 비명이, 호흡으로 생기는 미묘한 변화도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와 일순 병실 전체를 단조롭고도 음이 맞지 않는 저항으로 가득 채웠다. 그 비명은 도무지 사람이 내는 소리 같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모든 인간들에게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비명 같았다. (426/667p)
그런데 갑자기 다른 환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의사는 순간적으로 아이의 비명 소리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비명 소리는 서서히 작아지더니 급기야 뚝 그쳐 버리고 말았다. 아이 주변으로 신음 소리가, 이번에는 나지막하게 그리고 마치 지금 막 결판이 난 그 전투의 아득한 메아리와도 같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카스텔은 침대 반대편으로 가더니 이제 다 끝났다고 말했다. 아이는 입을 벌린 채 그러나 말없이, 갑자기 몸은 더 왜소해 보이고 얼굴 여기저기에 눈물 자국을 남긴 채로 흐트러진 시트의 옴폭 파인 곳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427/667p)
가슴을 짓이기는 듯한 지독한 응어리를 풀어 버리기 위해 계속해서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더운 열기가 무화과나무 가지들 사이로 천천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파란 아침 하늘이 희끄무레한 얼룩 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뒤덮여 대기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리유는 벤치에 털퍼덕 앉았다. 나뭇가지들이며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조금씩 자신의 피로감을 삼키고 있었다. (429/667p)
「그게 바로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겁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군요. 우리는 신을 모욕하는 말이건 신에게 올리는 기도건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그 무언가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430-431/667p)
리유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인간의 구원이란 제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이에요. 전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건 인간의 건강입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건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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