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되자 개인의 운명이란 더 이상 없었고, 페스트라는 집단의 역사와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정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극심한 것은 이별과 유배의 감정이었으며, 거기에는 공포와 분노가 담겨 있었다.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최윤주 저 (329/667p)
먼지로 뒤덮여 희뿌옇고 바다 냄새에 절은 이 인적 없는 도시는 바람이 마치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주받은 섬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최윤주 저 (331/667p)
페스트라는 저 높은 차원에서 본다면 형무소장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들어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형을 선고받은 처지였고, 따라서 어쩌면 처음으로 감옥 안을 절대적 정의가 지배하게 된 셈이었다. (334/667p)
침묵에 잠긴 거대한 도시는 생명력을 잃은 육중한 정육면체 덩어리들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들 사이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기억 못 하는 자선가들이나 청동 속에서 영원히 질식사해 버린 듯한 오래전 위인들의 말 없는 조각들만이 돌이나 쇠로 된 가짜 얼굴을 가지고 한때 인간이었던 자의 품위 잃은 모습을 드러내려 애쓸 뿐이었다. 그 볼품없는 우상들은 무거운 하늘 아래 생명 없는 사거리마다 군림하고 있었으며, 무심하고 거친 모습으로 우리가 처해 있는 요지부동의 지배를, 아니 적어도 그 지배가 의미하는 궁극의 질서, 즉 페스트와 돌덩어리 그리고 밤이 결국 찍소리도 내지 않고 잠자코 있도록 만드는 지하 공동묘지의 질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338-339/6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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