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밤이 들판으로 찾아와 있었다.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으나 벗어나지 못했던 달이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달빛에 흠뻑 젖어들어 빛의 포화 상태가 된, 스폰지 같은 층층의 구름과 안개 사이로, 지평선과 거대한 들판에 밝은 빛을 비추며, 달빛은 차분하고 균일하게 물방울을 걷어 내고 있었다. 이제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매끄러웠으며, 지평선과 들판과 길은 온통 우유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날은 하늘이 낯설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이 무심하고 우울하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밝은 달빛 속에 풍덩 빠져든 것 같은 가을 밤이었습니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세상에! 하늘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