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변통으로 곡괭이로 사용하던 나의 단검은 땅과의 전투에서 무력하기만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흙을 한줌 파내고는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아! 내가 공병대에 배속되었더라면 지금 내게는 삽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빨리, 보다 빨리 땅을 팔 수 있을 텐데!‘라고요. 왜냐하면 바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물이 반쯤 차오른 구덩이 속에 다리가 걸쳐진 채,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가 그의 검대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내어, 두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구덩이를 아주깊게 파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친구의 바람이었으니까요. 그가 내게 말했었지요. ‘만일 내가 네 곁에서 죽는다면, 나를 가능한 한 깊이 묻어 줘. 저 번에 테펠렌드(알바니아의 작은 도시)에서의 일처럼 개나 재칼이 나의 시신을 파낼까 겁이 나. 너, 그곳에 있던 개들 생각나니?‘ ‘응, 생각나고 말고.’
나는 담배를 태우며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그때에, 나는 땅을 파면서 혼자 웅얼거렸지요. ‘걱정하지 마, 너의 무덤은 깊은 무덤이 될 거야, 아주 깊은 무덤이. 그를 다 묻고 나자, 나는 누군가가 그곳을 발견하여 그의 시신을 파낼까 걱정되어, 구덩이 위로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땅을 판판하게 골랐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요란한 기관총 소리 에 무덤을 등뒤로 하고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고, 막 그를 버리고 온 어둠을 향해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속으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할것은 아무 것도 없어. 너는 결코 발견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입니다.(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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