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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사랑하였다.
‘더 리더’
이 책은 나에게 별의미가 없었다. 단지 얼마 전 이 책에 대한 영화 광고를 보고 여주인공이 예전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점에 잠깐 눈길이 끌리긴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그녀를 보고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건강한 육체미를 가진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무감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보진 못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인지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다시 이 책에 시선이 끌렸고 책이 내 손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까만 표지에 케이트 윈슬렛이 벗은 몸으로 욕조 안에 앉아 팔짱을 끼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마에서부터 코를 지나 단단하게 닫혀있는 입술로 연결되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견고함과 고집스러움이 보여진다. 팔짱을 낀 그 팔 안에 그녀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I.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는 그녀의 손길, 그녀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에 중독되었다. 그는 평생을 그녀에 취해 살았다. 그와 만났던 여인들에게서 심지어 결혼한 부인에게서조차 그녀를 찾았다. 그녀에 탐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기억 속에서 - 추억 속에서 - 꿈속에서 그녀를 만지고 느끼고 그녀의 냄새를 좇으며 빠져든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II.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를 만난 이후 변함없이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그에게서 인정받고자 했다. 어느 날 새벽 달리는 전차 안에서, 그를 떠나기 전날 수영장에서, 18년 동안 감옥 안에서 그의 답장을 기다리며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멀리 두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떠났다.
III. 그녀의 비밀
그녀는 문맹이었다. 그녀의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수치심은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그 깊은 수치심을 끝까지 숨기려고 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녀는 그녀의 치부를 감추고자 나치 수용소의 감시자로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그 치부를 감추기 위해 싸우고 희생하였다.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p.142)을 감추기 위해, 더 이상 노출되기를 바라기 않기에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하였다.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그녀는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할 사람들을 선별하는 일을 했다. 게다가 행군 중 폭탄을 맞아 불타는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밖에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두려움 이었을까? 책임감이었을까? 그녀는 재판장에게 되묻는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p.137)
그러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평화 시에 그녀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다. 구토하는 아이에게 손길을 내밀고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살아가기 위해 전차에서 차장 일을 하고 지쳐 들어와서는 침대에 몸을 던지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전쟁 시에 그녀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수행했다. 그녀는 단지 그 일이 자신이 선택한 직업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을 뿐. 여기에 전쟁의 끔찍함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성 상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V. 아버지와의 대화
진실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철학자인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녀가 문맹임을 밝히면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그녀가 원하지는 않지만 이후의 그녀의 삶을 위해 그 사실을 밝혀 무죄를 입증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여 그대로 밝히지 말고 두어야 할 것인가? 그는 답을 얻기 위해 그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그녀와 직접 대화를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V. 강제수용소에 관한 책들을 보다
그녀는 감옥에서 글을 읽고 쓰게 되자 쁘리모 레비, 장 아메리 등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을 자를 선별했던 자신과 반대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에 놓여있던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그녀!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과 번민과 고뇌에 빠졌으리라.
VI.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그는 그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몸은 그녀를 찾아 그녀의 몸과 마음을 탐닉하였으나 그의 머리는 그녀와 항상 거리를 두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는 기존의 사회적 제도 속에 갇힌 채 그녀를 온전히 그녀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온전히 사랑했다. 끝까지 그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놓기 어려운 책이다. 책에 쏙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인 수치심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죄와 처벌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진실과 개인의 자유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내 머리 속에서 옹달샘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생각들 가운데...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는 그녀를 평생토록 떨쳐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