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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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최재천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은 아이들이 읽는 책 가운데 몇 권의 자연관찰책의 감수자로서 였다. 그러다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학문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로 알게 되었다. 그는 <대담>에서 21세기의 학문은 여러 학문들이 모여 일관된 이론의 체계를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p.93). 물론 그의 말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과가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여러 학문들을 모아서 일관된 이론체계가 찾아내는 것이 가능한가에는 의문이 든다. 아직 <통섭>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라 너무 섣부른 판단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통섭>을 읽고 난 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이라는 책을 먼저 일고, 다음에 <대담>을 읽었다.

먼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에서는 많은 동물들의 생태가 인간의 사회, 문화, 경제현상과 비교되어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어있다. 대부분 알고 있는 동물 생태를 다루어서 쉽게 읽어내려 가다가 가장 눈이 쏠렸던 부분은 뉴기니 섬이나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정자새를 예로 들면서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형태가 유전된다면, 그 형태가 만들어내는 행동도 유전되고, 그 행동이 만들어 내는 구조물도 유전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p.92). 그렇다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그의 구조물 또한 모두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활동일까? 아니면 일부분이라면 어느 부분까지가 유전자의 명령에 의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을 품고 <대담>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문학자인 도정일과 생물학자인 최재천이 만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꿈꾸며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신화나 종교의 기원, 영혼의 존재여부 및 예술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그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라 그에 대한 궁금증은 얼마간 해소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시각도 흥미를 끌었다. 이 부분은 프로이드의 저작을 읽어본 후에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시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에서 가졌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은 어디까지가 유전자의 명령에 의한 것이고(생물학적 진화), 어디까지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가(사회적 진화)?

인문학자 도정일은 인간의 탁월성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은 틀림없이 이기적 동물이나 동시에 그 이기적 성향을 거스를 줄 아는 존재이고, 둘째는 인간이 상상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 여기’에 매어 있으면서도 그 결박을 넘어 다른 것, 다른 세계, 다른 가능성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p.515).

인간의 탁월성의 첫 번째는 상호호혜이론으로 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존재하는가? 동물들에게 존재하는 상상력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더 생각해 볼 문제다.

진화의 개념으로 볼 때, 어떤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내부의 성향들이 환경과 어떻게 교섭하고 협상하느냐에 따라서 발현의 종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한다(p. 540). 따라서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동물들이 상상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이 아닐까?

아직까지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는 판단이 아직 서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동물들과는 다른 인간 고유의 특성이 있다고 믿고 싶다. 조금 더 관련서적을 읽어보고 생각하다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의 책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그도 확실하게 인간의 모든 활동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명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든 간에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그의 말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으로서 인간과 동물, 동물과 식물, 지구상의 생물과 환경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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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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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중, TV 채널을 돌리다가 방통대 강의채널에서 「인문학강의-호모에로스」로 고미숙님이 강의하는 것을 보았다. 강의내용이 알듯 말듯 모호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하였다. 읽는 내내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산발적으로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 뒤섞여 나뒹굴었다. 결국 다른 일들을 뒤로 하고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아니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이 글을 쓴다. 멜로드라마로 인한 사랑의 편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을 옭아매는 부모의 덫, 쇼핑몰(자동차와 성형)에 잠식 당한 욕망 등 수없이 많은 내용들이 나와 있다. 이들을 모두 이야기 하자면 또 다른 맥락에서 다른 글을 써야 하기에 나의 관심에 의미있게 다가온 부분만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생각해 보았다.  

I.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사랑은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사랑할 대상이 없다.’ 라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은 대상이 나에게 기쁨 혹은 쾌감을 준다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고 한다.(p.145) 동감이 가는 부분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가장 먼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고 그로 인한 기쁨과 환희 또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사랑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사랑때문에 상실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잃은 사랑 때문에 분노하고 원한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모든 원인을 남의 탓, 세상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약자요, 노예의 정신이라고 한다. 내 운명을 망치는 것, 나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것, 그 모든 것이 다 타자라면, 당연히 나는 내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래서 노예라고 하는 것이다.(p.176) 그렇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II. 시절인연 
사랑이라는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절인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상형을 찾아 헤매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무르익으면 누군가가 만나지는 것이다.(p.174) 같은 이치로 이 인연의 배치가 달라지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인연의 고리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p.175)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이 시절인연이 어긋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헤어짐은 고통이지만 불행한 일이 아니며, 새로운 인연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인 것이다. 헤어짐의 슬픔에 빠져있을 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사건이 왔을 때 시절인연을 오롯이 누렸다면, 즉 존재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삶을 창조하는데 매진했다면 그 사랑은 미련도 회한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공부가 필요한 모양이다. 사랑하는 동안 오롯이 상대에게 매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III. 에로스는 쿵푸다. 
사랑은 바로 내 몸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자신의 몸과 능동적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몸이 능동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사랑은 무조건 축복이다. 내용과 형태가 무엇이건 그 순간, 존재의 충만감에 휩싸이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히려 평온함을 동반한다. 태풍의 눈이 그러하듯이.(p.156) 예컨대, 내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인데 변비와 두통, 옆구리 쑤심, 스트레스 등에 시달린다면, 그에 더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감에 시달린다면, 그 연애는 당장 멈춰야 한다. 몸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 사랑은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p.155) 내 몸과 소통하는 힘에 비례하여 상대에 대해서도 알아차릴 수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p.159)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도록 관찰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고로, 에로스는 쿵푸다.

IV. 발원하라.

상대에 대한 욕망과 분노와 무명無明의 늪에서 빠져나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은 간절히 발원하면 된다. 발원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발원이란 존재를 거는 것이고 그 순간 이미 나는 그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사랑은 이미 내게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간절히 발원하라. 그리고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상대를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이든 서로 마주보는 사랑이든 사랑을 발원하는 것만으로 이미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상대가 그 사랑을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사랑은 내 스스로 인연의 장끼며 내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V. 사랑은 삶(서사)과 함께 -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나를 멸망시킨다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나, 자아 혹은 자의식의 성체를 무너뜨리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p.152) 사랑은 끝없이 변화하는 흐름이요 운동이다.(p.145) 사랑을 하게 되면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아주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일상의 활동들을 시공간적으로 다르게 안배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신의 삶의 현장이 달라지고 자신의 인연조건이 달라진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와 활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새로운 신체의 창조이며 삶의 창조다. 루신처럼 말이다. 사랑을 통한 삶의 창조,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다.(p.230) 저자는 말한다. 일상과 동떨어진 이벤트나 쇼는 하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내 안에 나를 잠식시킬 파동이 존재하는가?’



내가 사랑에 대해 품었던 의문은 사랑의 실연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가? 게다가, 현재의 사랑과 그이전의 사랑이 마음속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였다. 이에 대한 답은 저자를 통해 다소나마 얻은 듯하다. 실연은 고통스러우나 새로운 인연의 서막이며 시절인연을 오롯이 누렸다면 마음의 미련이나 회한이 남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김상봉의 ‘서로주체성의 이념’를 더 읽어보면 좀더 명확하게 보일 것 같다. 사랑에 대해...    

 헤어짐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이들이여! 사랑이 이러하다면 두려워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비록 헤어짐의 아픔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절인연의, 새로운 만남의 장이 열리는 서막이거늘! 모든 이들이여! 사랑이라는 삶의 연못에 푹 빠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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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46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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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박지원’은 학창시절에 무심결에 외운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하일기의 지은이였다. 열하가 중국의 지명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박지원은 나의 기억 저편에 짧은 두 단어로 남아있던 터에 이번 독서클럽의 토론주제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선정되었다. 도서관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클릭했더니 이 책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2주전에 이 책을 대여했으나 한동안 집안 책상 위에서 홀로 남겨져 있어야 했다. 그만큼 박지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틀 전 드디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읽어나가다 보니 ‘어! 박지원, 우울증, 체제를 거부한 당당한 아웃사이더, 생각보다 재밌는 인물이네, 음, 특이한 경력이군, 어, 어, 어.’ 하다가 박지원의 열혈 팬이 되었다. 아직 2장까지밖에 읽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내가 옳다구나! 동감한 부분은 연암의 우정론과 문장론에 대한 부분이다.

<우정론>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입이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맛보는 것을 같이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의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는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p.65)

진정한 친구와의 교우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듯하다. 그들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절친그룹 백탑청연에는 당대의 최고 과학자인 담헌 홍대용, 석치 정철조, 서얼인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자출신의 무인 백동수 등이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갔다. 밤마다 모여 한쪽에선 풍류를, 한편에선 명상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모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광경인가? 그들은 맛을, 향을, 음악을, 감정을, 사상을 같이 공유했다.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p.64) 중국 명나라 이탁오의 말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맴을 돈다.

<문장론>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방대하지만 가리키는 뜻은 제가끔 다르다. 때문에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온갖 생물 가운데에는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영(靈)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 -초정집서(p.135)

그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문장에 생의 약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을 것 인가였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탄이든 증오든 공명을 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p.133)

글을 쓰는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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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48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2. 진격의 두별! -다산과 연암 가족관계 파헤쳐 보기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6-18 12:14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완전정복 가이드 1탄] 다산과 연암, 그들의 가족관계 18세기 조선에 나타난 두 거성, 다산과 연암. 이 두 개의 별을 둘러싼 또다른 크고 작은 별들과의 관계를 파헤쳐 봅니다. 오늘은 가족관계편입니다! 다산의 가족관계 1762년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다산. 다산의 아버님은 장가를 세 번 드셨습니다(당시 상황으로는 뭐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에게서는 약현을 낳았고, 두번째 부인인 다산..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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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 이야기이다.

저자는 부모가 모두 작가인 집안에서 태어나 책을 또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살아 온 사람이다. 책과 한 가족으로 지내면서 저자가 경험한 책과 관련된 18편의 담백한 삶 이야기가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남편과 자신의 서재를 따로 가지고 있던 저자가 남편의 책과 자신의 책을 톻합하여 분류하고 정리하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과정을 그녀는 책의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 에세이를 시작으로 해서 책과 관련된 그녀의 유년시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과의 경험 또는 다른 책과의 추억이 잔잔하게 표현되어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헌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다. 나는 대체로 새책을 좋아해서 헌책은 그리 사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지문, 낙서, 밑줄, 자국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그러나 그녀는 책의 여백을 모두가 와서 먹을 수 있는 공동 식탁으로 여기며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움도 커진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 책의 전주인 혹은 전전주인 혹은 이전에 그 책을 읽었던 모든 사람들이 책의 여백이라는 원탁에 둘려 앉아 토론하고 있고 나도 그 틈에 끼어 이야기를 듣거나 내 생각을 말 할 수 있는거구나.’ 참 신선했다. 내 생각의 전환점!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번갈아가면 침대에서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준다. 서로에게 맞는 책을 찾아가며 읽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낭독의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듣고 싶을 사람이라면 혹은 책이 집에 너무 많아 책장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책을 많이 꽂아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그 해결책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새로 책을 찾아 나서는 길은 언제나 인도 제도로 항해하는 것이며, 묻힌 보물을 찾아나서는 것이며, 무지개의 끝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그 끝에 금이 든 단지가 있든 그저 즐거운 책 한 권이 있든,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늘 경이가 넘친다."(p.202) <돈은 지혜롭게 책은 어리석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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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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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러나... 
 

녀는  
 

그를 사랑하였다.

‘더 리더’

이 책은 나에게 별의미가 없었다. 단지 얼마 전 이 책에 대한 영화 광고를 보고 여주인공이 예전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점에 잠깐 눈길이 끌리긴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그녀를 보고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건강한 육체미를 가진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무감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보진 못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인지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다시 이 책에 시선이 끌렸고 책이 내 손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까만 표지에 케이트 윈슬렛이 벗은 몸으로 욕조 안에 앉아 팔짱을 끼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마에서부터 코를 지나 단단하게 닫혀있는 입술로 연결되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견고함과 고집스러움이 보여진다. 팔짱을 낀 그 팔 안에 그녀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I.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는 그녀의 손길, 그녀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에 중독되었다. 그는 평생을 그녀에 취해 살았다. 그와 만났던 여인들에게서 심지어 결혼한 부인에게서조차 그녀를 찾았다. 그녀에 탐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기억 속에서 - 추억 속에서 - 꿈속에서 그녀를 만지고 느끼고 그녀의 냄새를 좇으며 빠져든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II.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를 만난 이후 변함없이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그에게서 인정받고자 했다. 어느 날 새벽 달리는 전차 안에서, 그를 떠나기 전날 수영장에서, 18년 동안 감옥 안에서 그의 답장을 기다리며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멀리 두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떠났다.

III. 그녀의 비밀

그녀는 문맹이었다. 그녀의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수치심은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그 깊은 수치심을 끝까지 숨기려고 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녀는 그녀의 치부를 감추고자 나치 수용소의 감시자로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그 치부를 감추기 위해 싸우고 희생하였다.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p.142)을 감추기 위해, 더 이상 노출되기를 바라기 않기에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하였다.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그녀는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할 사람들을 선별하는 일을 했다. 게다가 행군 중 폭탄을 맞아 불타는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밖에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두려움 이었을까? 책임감이었을까? 그녀는 재판장에게 되묻는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p.137)

그러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평화 시에 그녀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다. 구토하는 아이에게 손길을 내밀고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살아가기 위해 전차에서 차장 일을 하고 지쳐 들어와서는 침대에 몸을 던지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전쟁 시에 그녀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수행했다. 그녀는 단지 그 일이 자신이 선택한 직업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을 뿐. 여기에 전쟁의 끔찍함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성 상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V. 아버지와의 대화

진실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철학자인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녀가 문맹임을 밝히면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그녀가 원하지는 않지만 이후의 그녀의 삶을 위해 그 사실을 밝혀 무죄를 입증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여 그대로 밝히지 말고 두어야 할 것인가? 그는 답을 얻기 위해 그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그녀와 직접 대화를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V. 강제수용소에 관한 책들을 보다

그녀는 감옥에서 글을 읽고 쓰게 되자 쁘리모 레비, 장 아메리 등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을 자를 선별했던 자신과 반대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에 놓여있던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그녀!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과 번민과 고뇌에 빠졌으리라.

VI.자유로운 영혼이 되다

그는 그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몸은 그녀를 찾아 그녀의 몸과 마음을 탐닉하였으나 그의 머리는 그녀와 항상 거리를 두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는 기존의 사회적 제도 속에 갇힌 채 그녀를 온전히 그녀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온전히 사랑했다. 끝까지 그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놓기 어려운 책이다. 책에 쏙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인 수치심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죄와 처벌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진실과 개인의 자유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내 머리 속에서 옹달샘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생각들 가운데...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

그는 그녀를 평생토록 떨쳐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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