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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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다.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잔혹할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세상.

살육자들의 세상.

그러한 세상이... 시대가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책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도대체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도대체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사회인가? 인간의 사회인가? 비인간의 사회인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아무리 허우적거리고 버둥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온몸이 수렁 속에 잠겨버렸다.

쁘리모 레비!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제도가 보여 줄 수 있었던 냉혹함과 잔인함의 극한의 실례인 아우슈비츠에서 견디며 살아남았던 그는 생환하여 증언함으로써 인간의 재건을 위해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새로운 보편성의 틀을 재구축하는 역할을, ‘인간’의 가치를 한층 보편적인 것으로 높이기 위해 그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공포와 잔혹함의 연쇄는 끝없이 순환하며 확대되어 갔다. 더욱이 나찌 독일에 의한 대학살의 피해자였던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레바논을 침공하고 무차별한 대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보고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데에 대한 허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아우슈비츠의 부정론을 펼치는 훗날 ‘역사가 논쟁’이라고 불리게 되는 논쟁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했을 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이후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녔던 그림자! 자신을 삼켜버린 시스템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던 수치심, 자신보다 연약한 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소홀했다는 죄의식, 자기보다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자책은 그를 끝없는 수렁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죽음이라는

자기 본위의 선택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척도’가 파괴된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인간성의 존중, 평화의 존엄함을 망각해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강렬하면서도 열정적으로

한 순간에

우리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비인간이 아닌 인간들만의 세상을 위해 희생한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용히 되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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