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씩 따라가다 보니, 위로라기보다 정면을 보게 만드는 기록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마음을 달래기보다, 마음을 바로 세우는 문장들입니다.가장 먼저 오래 붙잡고 있었던 부분은 톨스토이의 죽음에 관한 문장입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택의 기준을 선명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태도는 비관이 아니라 정리입니다. 무엇을 미루고 있었는지, 무엇이 사실 중요하지 않았는지를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마지막에 가서야 삶의 방식을 후회하는 일만큼 공허한 일도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의 태도가 곧 전체의 방향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셈입니다.침묵에 대한 문장도 오래 남습니다. 말보다 태도가 먼저 드러난다는 내용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를 헐뜯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의 인성을 먼저 드러낸다는 문장은 매우 정확합니다. 반응하지 않는 절제가 곧 품위일 수 있습니다. 침묵이 무능이 아니라 선택이 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 둘 만합니다.⠀⠀⠀⠀⠀⠀러셀의 사랑에 대한 구절은 다소 의외로 현실적입니다. 인간의 고독을 전제로 두고, 사랑을 탈출구라고 표현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인간은 혼자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을 통해 유지된다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부재가 곧 고통의 원천이 된다는 말이 논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비트겐슈타인의 문장들은 방향을 묻습니다. 좋은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문장이 이렇게까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준비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삶의 방식뿐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언어에 대한 구절도 오래 남습니다. 사용하는 말의 범위가 곧 세계의 범위라는 주장입니다. 표현이 빈약하면 인식도 좁아진다는 뜻입니다. 어휘의 폭이 넓어지면 선택지도 늘어납니다. 결국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시야입니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어떤 인생을 해석하느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 습관을 점검할 필요를 느낀 하루입니다.마지막으로 두려움에 관한 문장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짓누르라는 표현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용기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태도, 영향받지 않겠다는 결심이 곧 자유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흔들림은 외부 사건보다 내부 해석에서 시작된다는 점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이 문장들은 기준의 언어입니다. 오늘의 밑줄은 내일의 선택을 조금 더 단정하게 만들 재료가 됩니다. 그렇게 쓰임이 분명한 문장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