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스페인사 - 단숨에 읽는 스페인 역사 100장면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역사
나가타 도모나리.히사키 마사오 지음, 한세희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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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스페인은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점입니다. 단일한 기원이나 명확한 출발선보다는, 수많은 민족과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에 가깝다는 인상입니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을 설명할수록 단정적인 문장은 줄어들고, 여백이 늘어납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초기 역사는, 이 땅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진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도로와 도시의 흔적들을 보면, 그것이 단순한 유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페인의 공간적 질서는 이미 이 시기에 방향이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로마 이후의 서고트 시대는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갔지만, 이 불안정한 시간이 이후 역사에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채 흔들렸던 경험은, 뒤이어 반복되는 분열과 통합의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이슬람 지배 시대에 대한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정복과 충돌의 서사로만 이해되는 시기이지만, 이 책은 공존과 교류의 시간으로도 바라볼 여지를 줍니다. 코르도바와 그라나다에 남은 건축물들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실제로 함께 숨 쉬었던 증거처럼 읽혔습니다.

레콩키스타는 단순한 영토 회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과정이었습니다. '되찾는다'는 개념이 만들어낸 서사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것이 이후 스페인 사회에 어떤 긴장을 남겼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교와 권력의 이름으로 많은 것이 정리되었고, 동시에 많은 것이 배제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와 제국의 형성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번영의 기반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도 함께 보입니다. 세계를 손에 넣었으나 내부를 단단히 만들지 못한 나라의 모습은, 지금 읽어도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과잉의 영광이 반드시 지속 가능한 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근대로 접어들며 이어진 개혁과 실패, 내전과 독재의 시기는 읽는 내내 무거웠습니다. 이념과 신념이 일상의 관계를 얼마나 쉽게 파괴하는지, 한 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지나온 기억이 오늘날 스페인의 조심스러움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스페인은 안정된 국가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자치와 통합, 지역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의 긴장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스페인은 하나의 답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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