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틀 안에 넣은 사람은 내가 아닌 세상 모두인데 왜 그 삶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가?"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한 혼혈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인종차별과 정체성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차별의 피해자가 역경을 극복하거나 실패한다는 뻔한 서사를 거부하고, 인간 내면에 뿌리 깊이 박힌 편견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해부한다는 점에 있습니다.소설은 두 개의 시간축을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1953년 백인 어머니와 정체불명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 다니엘의 입양 과정과, 2013년 이 사건을 우연히 접하게 된 오스트리아계 한국인 프란치스카의 추적 과정이 그것입니다. 프란치스카 역시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아시아인의 외모로 살아온 이방인으로서,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하게 됩니다.특별함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피한다는 점입니다. 1950년대 '인류학적' 지식을 동원해 혼혈 아이에게 가장 좋은 삶을 주려 애쓰는 선한 인물들조차 결국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이들의 선한 의도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낳는 모습은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진 편견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슬픈 숙명을 보여줍니다.이 소설은 사회복지 기록, 공식 문서, 일상적 대화 등 다양한 자료와 문체를 활용해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특히 인종 분리가 합법화된 시대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규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들은 충격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프란치스카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되는 관점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전통이나 혈연으로부터 정체성의 뿌리를 찾는 복고적 접근법 대신,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며 인간을 분류하려는 시각적 편견에 맞섭니다. 이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에서 정체성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읽힙니다.혼혈 아이 다니엘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그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보고서적 서술이 소설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세상 모든 인간이 편견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는 비극적 인식에서 출발하되, 그 슬픈 숙명에 맞서는 개인의 존재 방식을 모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