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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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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 않지만, 살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묘한 위로”
정신적 불안과 자존감 결여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여성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주인공 ‘길다’는 어딘가 서툴고 불안하며, 삶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고, 사랑하는 방식도 서툴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조차 부끄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정이 갑니다. 왜냐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늘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작은 일에도 자신을 탓했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주제인 '자살 충동, 무기력, 사회 부적응'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만, 작가는 이를 냉소적인 유머와 재치 있는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비극적이면서도 웃음이 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슬프지만 울 수 없는, 그 어중간한 감정입니다.
길다는 극적으로 변화하거나, 갑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완벽하게 회복되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