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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발톱
엄창석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번쯤 더 음미해보리라 마음먹은 문장에도 그렇고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동의를 얻어낸 문장에도 그렇고 너무도 아름다워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에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때 밑줄 그어진 문장이 하나도 없는 책은 괜한 허탈감을 내게 주곤 합니다.
황금색 발톱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문장은 위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제게 충격을 준 문장입니다. 사실은 문장도 문장이지만 이 소설 전체가 풍기는 거대한 분위기에 대해 쓰고있다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겠군요. '황금색 발톱'은 그 작품자체가 우리나에서는 매우 드문 스타일의 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 출판되었다는게 놀랍고 고작 3쇄를 찍어내는데 그쳤다는 것이 슬픕니다. 단편이지만 작가의 지적방대함이 저같은 사람에게도 느껴질만큼 강렬했거든요.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의 차원과 그 스케일에 완전히 압도당하였습니다. 일상성이 대세이던 그 시절에 이 위대한 작품은 너무 일찍 태어나버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지금이라면 분명,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거 같거든요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객관적인 속도감과 만날 수 있듯이, 지구의 어느 한 공간에서는 회전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틈서리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