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문화과학 이론신서 82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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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비판적 중국연구'의 지난한 여정과 새로운 지평

21세기 한국의 학문 지형에서 중국연구는 이중의 압력 속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는 급부상한 중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위상에 따른 실용적 지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갈등과 동북공정, 사드 사태 등을 거치며 심화된 반중(反中) 정서와 혐중(嫌中) 담론이 학문적 객관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임춘성의 저서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문화과학사, 2024)는 지난 40여 년간 중국문학 연구에 천착해 온 한 중견 학자가 도달한 학문적 성찰의 결정체로서, 한국의 중국연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비판적 중국연구'를 향한 투쟁으로 규정한다. 해방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의 금제 속에서 사회주의 중국은 '죽의 장막' 뒤에 가려진 금기의 대상이었으며, 리영희 선생 등의 선구적 노력 이후 1992년 수교를 거치며 중국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중국연구가 여전히 두 가지 거대한 장벽, 즉 서구 중심주의(Eurocentrism)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과 중국 내부의 중화민족주의가 빚어낸 '중국중심주의(Sinocentrism)' 사이에 갇혀 있음을 통렬히 지적한다. 레이 초우(Rey Chow)의 문제의식을 빌려, 저자는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적대적인 듯하면서도 실상은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공모 관계를 형성하여 중국의 실체를 왜곡하고 있음을 경계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이중의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연구라는 전통적인 분과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비판적 문화연구', '도시문화 연구',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그리고 최근의 쟁점인 '사이노폰(Sinophone) 연구'를 횡단하는 통섭적 방법론을 채택한다. 본 서평 논문은 이 방대한 저작을 세 가지 주요 축—문화연구의 이론과 실제, 도시 텍스트의 에스노그라피, 포스트식민 번역의 정치학—으로 나누어 심층 분석하고, 이 책이 한국의 중국학계에 던지는 학술적 의의와 그 한계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 제1부: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

2.1. 방법론적 전환: '문화의 연구'에서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로

저자는 먼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본고장인 영국의 맥락을 재검토하며, 리비스주의(Leavisism)로 대표되는 고급문화 중심의 '문화의 연구(study of culture)'와 버밍엄 학파가 주도한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사이의 간극을 포착한다. 한국의 중문학계가 종종 문화연구를 단순한 '문화 텍스트 분석'이나 '문화콘텐츠 연구'로 오인하는 경향을 비판하며, 저자는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culture)'라는 새로운 통합적 방법론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위계적 이분법을 해체하고, 모든 문화적 실천을 '정치·경제적 과정'과 '문화적 과정'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장(field)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텍스트의 미학적 분석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사회과학적 환원론에 빠지지 않는 '제3의 길'을 모색한다. 이는 문학연구가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주의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텍스트의 함닉(陷溺)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공 의제(agenda)에 참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론과 맞닿아 있다.

2.2. 리퉈와 다이진화: 문화의 상품화와 시각적 정치학

이러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중국 지식계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특히 리퉈(Li Tuo)가 주편한 '대중문화비평총서'에 대한 분석은 중국에서 비판적 문화연구가 태동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리퉈는 대중문화의 흥기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규정하며, 엘리트 지식인들의 경전화된 태도를 비판했다. 저자는 이 총서에 실린 쑹웨이제의 진융(金庸) 무협소설 연구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당대 중국인의 집단 무의식과 이데올로기가 투쟁하는 장소임을 규명한다.

이어지는 다이진화(Dai Jinhua)에 대한 분석은 더욱 심도 깊다. 다이진화의 "탈주하다 그물에 걸림(逃脫中的落網)"이라는 명제는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적 곤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혁의 전체주의적 '그물'에서 탈출했으나, 곧바로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더 큰 '그물'에 포획된 중국 지식인의 운명에 대한 비유다. 저자는 다이진화의 영화 비평과 젠더 연구를 경유하여, 5세대 감독들의 영화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부응하여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자기 오리엔탈리즘'의 기제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또한, 사회주의 시기 여성 해방이 계급 해방의 이름 아래 여성성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며, 포스트사회주의 시대에 부활한 가부장제와 자본의 결탁을 비판한다.

2.3. 왕샤오밍과 뤼신위: 신이데올로기 비판과 하층의 재현

상하이 학파의 거두 왕샤오밍(Wang Xiaoming)에 대한 장에서는 문학사 연구에서 문화연구로의 전환 과정이 다루어진다. 저자는 왕샤오밍이 주창한 '신이데올로기'론, 즉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과 시장 자본이 결탁하여 대중을 소비주의로 마취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소개한다. 특히 왕샤오밍이 20세기 초 근대 사상(옌푸, 량치차오 등)을 재발굴하여 현재의 자원(resource)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주목하되, 그가 강조하는 '중토성(中土性, local nature)'이 자칫 또 다른 형태의 중국중심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경계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한다.

뤼신위(Lv Xinyu)의 다큐멘터리 연구 분석은 시각 문화 연구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1990년대 '신다큐멘터리 운동'에서 최근의 '하층(底層) 독립 다큐멘터리'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저자는 카메라가 단순한 기록 장치가 아니라 대상과 신체적으로 공명하며 '행동'하는 윤리적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개혁개방의 그늘에 가려진 농민공, 철거민 등 소외된 주체들의 '존엄의 정치'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2.4. 텍스트 분석의 확장: <낭야방>과 적폐 청산의 알레고리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TV 드라마 <낭야방(瑯玡榜)>에 대한 분석은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가 어떻게 구체적 텍스트 분석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백미다. 저자는 이 대중적 히트작을 단순한 무협 사극이나 권모술수 드라마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적폐 청산'이라는 한국과 중국의 동시대적 정치적 열망을 투영한 알레고리로 독해한다. 주인공 매장소가 12년 전의 억울한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은, 정의가 실종된 시대에 대중이 갈망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 정의의 회복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문학이 독점하던 사회 비판과 담론 생산의 기능이 21세기에는 TV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로 이전되었음을 실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3. 제2부: 텍스트로 읽는 도시문화와 에스노그라피

3.1. 상하이: 노스탤지어와 근대의 이중성

2부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려 상하이, 홍콩, 타이완이라는 세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저자가 채택한 방법론은 '문학인류학'과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이다. 소설과 영화를 허구적 텍스트가 아닌, 도시의 생태와 인간 군상을 기록한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로서의 에스노그라피로 간주하는 것이다.

상하이 연구의 핵심 키워드는 '노스탤지어'이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중국을 휩쓴 '상하이 노스탤지어(Lao Shanghai Huaijiu)' 열풍을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으로 단절되었던 자본주의적 근대와의 재접속 욕망, 그리고 억압된 기억의 귀환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노스탤지어는 실재했던 과거라기보다는, 소비주의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 '상상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저자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시대별 '상하이 에스노그라피'를 구축한다.

1. 한방칭의 『해상화열전(海上花列傳)』: 19세기 말 조계지 상하이의 기녀와 상인들의 세계를 다룬 이 작품은 근대 초기 상하이의 혼종적 정체성과 물신주의적 욕망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분석된다.

2. 마오둔의 『한밤중(子夜)』: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민족 자본가와 매판 자본가, 노동자 계급의 갈등을 그린 이 소설은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기록한 '사회 연대기'로 읽힌다.

3. 왕안이의 『푸핑(富萍)』: 1960년대 상하이로 이주한 농촌 여성의 시선을 통해, 화려한 와이탄의 이면에 숨겨진 눙탕(골목)의 일상과 서민들의 생명력을 포착한 에스노그라피로 평가받는다.

영화 텍스트 분석에서는 장이머우의 <상하이 트라이어드>나 리안의 <색, 계>가 보여주는 '상상된 상하이'와 펑샤오롄의 '상하이 3부작'이 보여주는 '리얼한 상하이'를 대비시킨다. 특히 <색, 계>에 대한 분석은 레이 초우의 시각을 빌려, 서구의 시선에 부합하기 위해 스스로를 에로틱하고 원시적인 타자로 전시하는 '자기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짚어낸다.

3.2. 홍콩과 타이완: 사이노폰과 정체성의 정치

홍콩과 타이완을 다루는 장에서는 '중국적임(Chinese-ness)'의 경계가 심문당한다. 홍콩은 영국과 중국이라는 두 제국 사이에서(between colonizers) '이중의 타자'로 존재해 온 공간이다. 저자는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기억과 망각의 알레고리로, 프룻 챈의 <메이드 인 홍콩>을 하층민의 절망적 에스노그라피로 독해하며, 1997년 반환 전후 홍콩인들의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추적한다. 또한, 최근작 <10년>을 통해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약속이 무너진 후 홍콩의 급진화된 로컬리즘과 반중 정서를 분석한다.

타이완 연구에서는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폭발한 정체성 논쟁을 다룬다. 본성인과 외성인, 원주민 사이의 에스닉 갈등과 '탈중국화'의 흐름 속에서, 타이완 문학이 어떻게 '중국문학'의 하위 범주가 아닌 독자적인 '사이노폰 문학'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는 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사이노폰 담론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4. 제3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와 사이노폰 논쟁

4.1. 번역, 언어의 등가성을 넘어서

3부는 이 책의 이론적 도약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저자는 번역을 단순한 언어 간의 의미 등가성 확보 작업이 아닌,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정치적 행위이자 '문화 번역'의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발터 벤야민의 「번역자의 과제」에 대한 독해를 통해, 번역이 원작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원작의 '사후의 삶(afterlife)'을 부여하고 도착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창조적 행위임을 역설한다. 또한 더글러스 로빈슨의 포스트식민 번역 이론을 수용하여, 제국과 식민지, 중심과 주변 사이의 번역이 어떻게 불평등한 권력 위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규명한다.

4.2. 레이 초우와 시각적 번역

레이 초우의 『원시적 열정』에 대한 심층 분석은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다. 저자는 초우의 논의를 빌려 '시각성(visuality)' 자체가 일종의 문화 번역임을 주장한다. 중국의 5세대 감독들이 서구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중국의 민속과 의례를 과장되게 재현하는 행위는, 서구의 시선(gaze)에 맞추어 자신의 문화를 '원시적인 것'으로 번역해내는 '자기 에스노그라피(auto-ethnography)'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장이머우의 영화에서 여성의 신체가 전시되는 방식은 이러한 시각적 번역과 자기 오리엔탈리즘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4.3. 사이노폰 논쟁: 스수메이 대 왕더웨이

책의 후반부는 현재 전 세계 중국학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이노폰(Sinophone, 華語語系)' 논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스수메이(Shih Shu-mei)와 왕더웨이(David Der-wei Wang)의 입장을 대조하며 한국 학계의 수용 방향을 모색한다.

구분

스수메이 (Shih Shu-mei)

왕더웨이 (David Der-wei Wang)

임춘성의 입장

핵심 주장

디아스포라 반대 (Against Diaspora)

포스트 유민 (Post-loyalist)

스수메이 지지 및 보완

관점

이민자는 정착지의 로컬 주체가 되어야 함. 영원한 이방인(디아스포라) 상태 거부.

디아스포라적 의식은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유효한 정치적 자원임.

'가치로서의 디아스포라'는 중화주의의 연장이므로 경계해야 함.

중국과의 관계

사이노폰은 중국 대륙 외부주변부의 문학. 중심 해체 지향.

중국 대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담론장. 통합과 대화 지향.

왕더웨이의 '통합의 정치학'은 대중화(Great China)주의로 회귀할 위험이 있음.

비판 대상

한족 중심주의(Han-centrism), 내부 식민지(티베트, 신장 등).

혁명/계몽 담론에 억압된 서정 전통, 단절된 근대성.

중국의 '내부 식민지' 문제와 패권주의적 태도.

저자는 스수메이의 입장을 지지한다. '디아스포라' 개념이 이주민을 영원히 본국(중국)을 그리워하는 주변인으로 묶어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의 '해외 화인 포섭 전략'과 중화민족주의에 복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왕더웨이의 '포스트 유민' 담론이나 사이노폰을 중국문학의 확장으로 보려는 시도는, 결국 차이를 거대한 중국성(Chineseness) 안으로 다시 통합하려는 '통합의 정치학'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저자가 지향하는 '비판적 중국연구'가 궁극적으로 중화주의와 한족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4.4. 한국문학의 중국 내 수용과 불균형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중 문화교류의 현실을 '번역의 불평등' 관점에서 진단한다. 한국에서는 중국 문학이 활발히 번역되고 연구되는 반면, 중국 내에서 한국 문학의 수용은 미미하거나 한국 측의 지원(한국문학번역원 등)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양적 불균형이 아니라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의 차이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로 파악한다. 중국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은 맥락 없이 소비되거나 오독되기 쉽다. 따라서 번역가는 단순한 언어 전달자가 아니라, 두 문화 사이의 맥락을 연결하고 간극을 메우는 '문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5. 비평적 평가: 출판 의의와 문제점

5.1. 출판 의의 (장점)

첫째, 방법론적 혁신과 통섭의 실천이다. 저자는 문학 텍스트 분석에 머물지 않고 문화연구, 영화학, 인류학, 번역학,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중국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텍스트를 '에스노그라피'로 읽어내는 방식이나, TV 드라마를 정치철학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시도는 한국 인문학의 방법론적 빈곤을 타개할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을 제공한다.

둘째, 이중의 패권주의에 대한 균형 잡힌 비판이다. 서구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식민성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적 담론이 갖는 폭력성(소수민족 억압, 내부 식민지 문제)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특히 '한족 중심주의'가 '중화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내부 식민지를 경영해왔다는 지적은, 중국을 단순히 제국주의의 피해자로만 보려는 기존의 시각을 교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셋째, 최신의 학술 담론인 '사이노폰' 논쟁을 한국적 맥락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스수메이와 왕더웨이의 논쟁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정리함으로써, 한국의 연구자들이 변화하는 '중국문학'의 지형도를 파악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세계화나 디아스포라 문학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도 유효한 참조점을 마련해 주었다.

넷째, 대중문화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접근이다. 5, 6세대 영화뿐만 아니라 독립 다큐멘터리, 대중 소설(진융), TV 드라마(<낭야방>) 등을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21세기 중국의 '공공 의제'가 문학이 아닌 시각 매체를 통해 형성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5.2. 문제점 및 한계 (단점)

첫째,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 개념의 포괄성과 모호함이다. 저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통합적 연구를 제안하지만, 실제 분석에서는 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때로는 방법론적 엄밀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난해한 포스트식민 이론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장과, 드라마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정치적 함의를 읽어내는 장 사이에는 분석의 밀도나 층위에서 다소간의 편차가 존재한다.

둘째, '상하이' 중심의 도시 연구가 갖는 편향성이다. 2부의 도시 문화 연구가 상하이에 집중된 것은 저자의 오랜 연구 이력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의 광대한 내륙이나 농촌, 혹은 베이징이라는 정치적 중심지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비판적 중국연구'가 '하층'과 '주변'을 지향한다고 할 때, 가장 서구화되고 자본화된 도시인 상하이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중심주의(연해 도시 중심주의)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셋째, '문화 번역'의 실천적 한계이다. 저자는 번역가에게 '문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주문하고 '현지화(domestication)'와 '이국화(foreignization)'를 넘나드는 전략을 요구하지만, 이는 당위론적 제언에 머무는 감이 있다. 중국의 검열 시스템, 출판 시장의 구조적 불황, 사드 사태 이후의 정치적 경색 등 '문화 번역'을 가로막는 물질적, 제도적 장벽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넷째, 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법의 모호성이다. 서문에서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며 문학연구가 사회과학 및 4차 산업혁명 담론과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본문에서 이러한 결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학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증은 충분하지 않다. 문학을 문화연구로 해소하는 것이 문학을 구원하는 길인지, 아니면 문학의 고유한 미적 자율성을 포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6. 결론: 공생적 비판성을 향하여

임춘성의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한국의 중국학이 단순한 정보 수집이나 서구 이론의 적용 단계를 넘어, 독자적인 이론적 시각을 가지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해부할 수 있는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책은 중국을 맹목적으로 혐오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양극단의 태도를 배격하고, 텍스트의 심층에 숨겨진 권력 관계와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비판적 독해'의 전범을 보여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이노폰'과 '포스트식민 번역'의 시각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 담론에 균열을 내고, 그 틈새에서 신음하는 소수자, 여성, 하층민,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다. 비록 상하이 중심의 편향이나 실천적 대안의 구체성 부족이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이 책이 제공하는 방대한 지적 자극과 이론적 통찰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고민하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필수적인 나침반이 될 것이다. 중국은 이제 '우리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타자다. 이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며, 이 책은 그 험난한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표 1]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이론적 개념과 적용

개념

주요 이론가

책에서의 적용 및 의의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

임춘성 (종합)

고급/대중문화의 이분법 타파. 모든 문화를 정치적 텍스트로 독해.

상상된 노스탤지어

아파두라이, 데이지 두

90년대 상하이 복고 열풍을 자본주의 욕망의 우회적 표출로 분석.

자기 에스노그라피

레이 초우

장이머우 등 5세대 영화가 서구의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전시하는 방식 비판.

사이노폰 (Sinophone)

스수메이

중국 중심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대륙 외부 및 주변부의 독자성 확보.

내부 식민지

마이클 헥터, 드루 글래드니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티베트, 신장)을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비판.

문화 번역

호미 바바, 탈랄 아사드

한중 문학 교류의 불균형을 언어 문제가 아닌 문화 권력의 문제로 진단.

[표 2] 상하이 에스노그라피 텍스트 분석 구조

시기

텍스트

작가

분석 초점

상하이의 성격

19세기 말

『해상화열전』

한방칭

조계지, 기녀, 상인

혼종적 근대의 탄생, 욕망의 공간

1930년대

『한밤중』

마오둔

자본가, 노동자, 파업

반식민지 반봉건의 총체적 모순

1960년대

『푸핑』

왕안이

이주민(농촌 여성), 눙탕

혁명기 일상의 지속, 숨은 구조

1990년대

<상하이 3부작>

펑샤오롄

주거 공간, 트라우마

사라지는 역사에 대한 복원, 대항 기억

* 이 서평 논문은 저자가 GEMINI PRO(Deep Research, 사고 모드)에게 『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pdf 파일을 제공한 후, 꼼꼼하게 읽고 객관적인 서평 논문을 쓰라는 요청에 대한 1차 답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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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 혁명에서 ‘신시대’로
이희옥.백승욱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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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역사적 분기점과 100년의 재구성

2021년 7월 1일, 상하이의 작은 벽돌집에서 50여 명의 당원으로 시작한 중국공산당(CCP)은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며 9,5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정당이자, G2 패권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끄는 절대적인 영도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희옥, 백승욱 공저(편)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혁명에서 '신시대'로』는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한국의 비판적 중국 연구자들이 집단지성을 모아 당의 100년사를 다각도로 해부한 기념비적 저작이다.1

본 보고서는 해당 저서가 제시하는 중국공산당 100년의 궤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단순히 연대기적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등 각 영역에서 당이 어떠한 방식으로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위기를 돌파해 왔는지, 그리고 시진핑 지도부가 주창하는 '신시대'가 과거의 역사와 어떻게 단절하고 또 계승하는지를 규명한다. 특히 본 보고서는 연구자가 요청한 바에 따라, 각 필자별 핵심 논지를 상세히 요약·분석하고, 임춘성 교수가 집필한 문예정책 및 근현대문학 분야에 대해 별도의 챕터를 할애하여 심층적인 담론 분석을 수행한다.

보고서의 서술은 중국공산당이 100년의 역사를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라는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호출하는 맥락을 따라가되, 그 이면에 숨겨진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이데올로기적 긴장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4 이는 백승욱이 지적하듯, 현재의 '신시대' 담론이 100년의 역사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시 쓰는(rewriting)' 정치적 기획임을 전제한다.4


2. 총론: '신시대'의 역사적 위상과 두 개의 백 년

이 책의 서문과 결론을 담당한 이희옥과 백승욱은 중국공산당 100년을 관통하는 거시적인 분석 틀을 제공한다. 이들은 시진핑 체제의 등장을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파악한다.

2.1 프롤로그: 이해의 확장을 위한 제언 (이희옥)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는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를 통해 당의 역사적 생존 능력과 '신시대'의 도전 과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4

  • '두 개의 백 년'과 목적론적 역사관: 이희옥은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주년(2021년)과 건국 100주년(2049년)이라는 '두 개의 백 년(Two Centenaries)'을 설정함으로써, 역사를 목적론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21년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小康社会)'의 달성은 1단계 목표의 완수이며, 이를 바탕으로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China Dream)'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6 이는 당의 통치 정당성을 경제 발전과 민족 중흥이라는 미래 비전과 결합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수사다.

  • 시기 구분의 재정립: 이희옥은 당의 역사를 혁명기(국가 수립), 사회주의 건설기(체제 실험), 개혁개방기(경제 발전), 그리고 신시대(강대국화)로 구분한다.3 여기서 '신시대'는 덩샤오핑 이후 지속된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힘을 기름)'와 '선부론(일부가 먼저 부유해짐)'의 시대를 마감하고, 강력한 당-국가 체제의 복원과 대외적 팽창을 추구하는 새로운 단계임을 명확히 한다.8

  • 신시대의 이중적 과제: 신시대는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내부의 사회적 불평등(빈부격차)이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희옥은 시진핑 체제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당의 영도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법치'와 '민주' 같은 보편적 가치 대신 '당의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적 통치로 회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6

2.2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백승욱)

중앙대 백승욱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역사 서술의 정치성을 비판적으로 해부한다.3

  • 단절과 연속의 정치학: 백승욱은 '신시대' 선언이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공의 역사'로 균질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도자(시진핑)의 등장을 역사적 필연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단절'의 수사라고 분석한다.9 이는 마오쩌둥 시대의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과오를 '어렵지만 필요한 탐색'으로 미화하고, 덩샤오핑 시대의 유연성을 '과도기적 조치'로 격하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 관료자본론의 재해석과 중국 예외성: 그는 중국 현대사 서술의 쟁점인 '관료자본'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 국민당의 관료자본을 비판하며 혁명을 일으켰던 공산당이, 오늘날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백승욱은 중국 학계가 이를 '후발 주자의 따라잡기(Catch-up) 전략'이나 '중국적 특수성'으로 옹호하며 '중국 예외성'을 이론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9

  • 일국주의적 역사 서술의 강화: 결론적으로 백승욱은 현재의 역사 다시 쓰기가 보편적 사회주의 역사가 아닌 '중화민족의 민족사'를 완성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는 역사적 사실과 평가 사이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경계한다.9


3. 필자별 내용 요약 및 분석: 100년의 다층적 궤적

본 장에서는 정치, 사상, 경제, 사회, 외교, 노동, 젠더 등 7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사를 상세히 기술한다. 각 필자는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당이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추적한다.

3.1 제1장 정치: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안치영)

인천대 안치영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통치 시스템 변화를 '권력의 제도화'와 '탈정치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5

  • 제도화의 역설: 안치영은 덩샤오핑 시대에 확립된 권력 승계의 규범(임기제, 격대지정, 7상8하)과 당-정 분리 원칙이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 어떻게 무력화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는 시진핑의 1인 체제 강화가 당내 파벌 갈등을 억누르고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동시에 제도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새로운 시험'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10

  • 인민의 탈정치화: 개혁개방은 시장 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인민들의 관심을 정치 투쟁에서 경제적 이익 추구로 돌려놓았다. 안치영은 이러한 '탈정치화'가 당의 통치 비용을 낮추고 체제 안정을 가져왔으나, 신시대에 이르러 당이 다시 사회 전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인민과 당 사이의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한다.5

3.2 제2장 사상: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하남석)

서울시립대 하남석 교수는 중국공산당 100년사가 단일한 이념의 관철이 아니라, 치열한 노선 투쟁의 산물임을 강조한다.5

  • 혁명과 건설의 방법론: 창당 초기 '문제와 주의(問題與主義)' 논쟁부터 마오쩌둥 노선의 확립 과정, 그리고 건국 후 대약진과 문혁을 둘러싼 당내 좌우파의 갈등을 다룬다. 하남석은 이 시기의 논쟁이 "어떻게 혁명하고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모색이었음을 지적한다.5

  • 신좌파 vs 자유주의 논쟁: 1990년대 후반, 개혁개방의 부작용(빈부격차, 부패)이 심화되면서 지식인 사회는 '신좌파(New Left)'와 '자유주의(Liberalism)'로 분화되었다. 신좌파(왕후이 등)는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유산의 재평가를 요구한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시장 개혁의 심화와 정치 민주화를 주장했다.4

  • 논쟁의 소멸: 하남석은 시진핑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논쟁이 사라진 침묵의 시대"**를 꼽는다. 당은 '이데올로기 공작'을 통해 좌우파 모두를 탄압하거나 체제 내로 포섭했으며, 이제는 오직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만이 유일한 진리로 통용되고 있다.5

3.3 제3장 경제: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서봉교)

동덕여대 서봉교 교수는 중국 경제 100년을 '체제 생존을 위한 유연한 적응 과정'으로 해석한다.5

  •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탄생: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1993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공식화는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용하여 사회주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서봉교는 이를 통해 중국이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면서도 당의 경제 장악력을 유지하는 독특한 모델을 구축했다고 평가한다.5

  • 국유기업 개혁과 국진민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주룽지 총리가 주도한 국유기업 구조조정('조대방소': 큰 것은 잡고 작은 것은 놓아준다)은 국유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했다.4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4조 위안의 부양책을 통해 국유기업의 역할을 다시 확대했고, 이는 민간 부문이 위축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을 초래했다.4

  • 신시대의 경제: 서봉교는 신시대 경제가 '공급 측 구조개혁'과 '쌍순환(내수와 수출의 조화)' 전략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으나, 당의 통제 강화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12

3.4 제4장 사회: 사회동원과 조직화 (장영석)

성공회대 장영석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사회 통제 기제인 '단위(單位, Danwei) 체제'의 형성과 변형을 추적한다.5

  • 단위 체제의 명암: 계획경제 시기 '단위'는 인민에게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당의 지시를 말단까지 전달하는 핵심 통제 기구였다. 개혁개방은 이 단위 체제를 해체하고 '사회의 복원'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사회적 보호막을 제거하여 불안정을 초래했다.5

  • 신시대의 사회 관리: 장영석은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 당이 무너진 단위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관리 기제로 **'격자망 관리(Grid Management)'**와 디지털 감시 기술을 도입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이는 과거의 전면적 동원 대신, 정교한 관리와 통제를 통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3.5 제5장 외교: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강수정)

조선대 강수정 교수는 중국 외교 노선이 국력의 신장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3

강수정은 신시대의 '중국 특색 강대국 외교'가 기존 국제 질서(Pax Americana)에 대한 수정주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중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3

3.6 제6장 노동: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장윤미)

동서대 장윤미 교수는 노동자 계급이 '국가의 주인'에서 '통제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5

  • 지위의 하락: 사회주의 시기 국영기업 노동자는 '철밥통'을 보장받는 특권 계급이었으나, 개혁개방 이후 구조조정과 시장화로 인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Nongmingong)은 저임금과 차별 대우 속에서 중국의 고속 성장을 떠받치는 희생양이 되었다.4

  • 관변 노조의 한계: 장윤미는 중화전국총공회(ACFTU)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보다는 당의 지시를 전달하고 노동쟁의를 억제하는 '전송대(Transmission Belt)' 역할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한다.5

  • 포섭과 배제: 신시대 노동 정책은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체제 내로 포섭하려 시도하지만, 자발적인 노동조합 결성이나 집단행동은 철저히 탄압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5

3.7 제8장 젠더: 혁명과 젠더 (김미란)

성공회대 김미란 교수는 중국 여성 해방의 역사가 국가의 필요에 의해 호명되고 동원된 역사였음을 밝힌다.5

  • 국가 페미니즘의 명암: 마오쩌둥 시대의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구호는 여성을 가부장제에서 해방시켰으나, 동시에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노동자(철의 여인)'로 만듦으로써 여성 고유의 재생산 부담을 간과했다.5

  • 시장화와 젠더 위계: 개혁개방 이후 국가의 보호가 사라지자 노동 시장에서의 성차별이 부활했고, '한 자녀 정책'은 여성의 몸을 국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5

  • 신시대의 재가부장화: 김미란은 저출산 위기에 직면한 시진핑 정부가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며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보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젠더 질서의 재구성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4


4. 심층 분석: 임춘성 교수의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본 보고서의 핵심 과제인 임춘성 교수(목포대)의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에 대한 심층 분석이다. 임춘성은 첸리췬(錢理群) 등 중국 비판적 지식인 연구의 권위자로서, 문학이 중국공산당의 '영혼 개조 프로젝트'에서 담당해 온 역할과 그로 인한 문학의 비극적 운명을 추적한다.16

4.1 핵심 테제: '영혼의 공학'과 사회주의적 개조의 메커니즘

임춘성의 분석을 관통하는 핵심 테제는 중국공산당이 문학을 독자적인 예술 영역이 아닌, **"인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개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영혼의 공학, Engineering of the Soul)"**로 규정하고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4 그는 이 과정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당의 본질적인 속성인 '정풍(整風, Rectification)'의 논리에 따라 치밀하게 기획되고 집행되었음을 논증한다.

임춘성이 제시하는 문예 통제의 3단계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1. 선전선동 (Propaganda): 혁명의 정당성을 전파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단계.

  2. 사회주의적 개조 (Socialist Transformation): 작가와 지식인의 '부르주아적' 사상을 비판하고 당의 이념으로 재무장시키는 단계.16

  3. 검열 (Censorship): 사상적 이탈을 감시하고 처벌하여 단일한 담론을 유지하는 단계.

4.2 역사적 전개: 옌안에서 신시대까지

임춘성은 100년의 문예사를 결정적인 분기점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며, 각 시기마다 문학이 어떻게 당에 포섭되거나 저항했는지를 분석한다.4

4.2.1 1942년 옌안 문예 연설: 문예의 '당성(黨性)' 확립

임춘성은 마오쩌둥의 **<옌안 문예 좌담회에서의 연설(1942)>**을 중국 현대 문학사의 '원죄'이자 헌법과도 같은 절대적 기원으로 지목한다.5

  • 내용 분석: 마오쩌둥은 문학이 "혁명 기계의 톱니바퀴와 나사"가 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문학의 대상은 노동자·농민·병사(공농병)여야 하며, 그들의 삶을 찬양하고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것만이 문학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 임춘성의 통찰: 그는 이 연설이 "인간성"과 "예술성"을 "계급성"과 "정치성"의 하위 개념으로 종속시켰다고 분석한다. 이때부터 작가의 개성이나 비판적 리얼리즘은 '소부르주아적 감상'으로 매도되었고, 문학은 당의 노선을 선전하는 확성기로 전락했다.4

4.2.2 1949년 제1차 문대(文代): 제도의 완성과 지식인의 투항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 개최된 '중화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대회(문대)'는 옌안의 규범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한 사건이다.4 임춘성은 이 시기 문련(문학예술계연합회)과 작가협회의 설립이 단순한 직능 단체의 결성이 아니라, 작가들을 당의 조직 체계 내로 편입시켜 월급을 받는 '문학 공무원'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이는 첸리췬이 지적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사회주의 국민성 만들기"의 일환으로, 지식인들은 자발적 혹은 강압적으로 사상 개조(세뇌)를 받아들여야 했다.16

4.2.3 1980년대 사상해방과 검열의 길항

문화대혁명 이후 등장한 '상흔문학(Scar Literature)'과 '반사문학'은 문학이 잠시나마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려 했던 시도였다. 그러나 임춘성은 이를 '완전한 해방'이 아닌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해방"**으로 규정한다.5 덩샤오핑 시대에도 '반정신오염 캠페인(1983)'이나 '자유화 반대 투쟁(1987)'을 통해 문학에 대한 당의 통제권은 여전히 작동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은 문학의 정치적 비판 기능이 체제의 한계선을 넘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주었다.

4.2.4 신시대: '중국 이야기'와 역사의 박제화

임춘성은 시진핑 시대의 문예 정책이 옌안 시기의 통제 모델로 회귀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4

  • 역사의 재서술: 신시대 문학은 '중국 이야기(China Story)'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향한 투쟁사'라는 단일하고 영웅적인 서사로 재편하는 작업이다. 고난, 실수, 비극의 기억은 소거되고, 오직 승리와 영광만이 기록된다.

  • 문학의 위기: 임춘성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학이 현실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힘을 잃고, 체제 선전의 도구로 다시금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시공간을 가두기보다 확장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루쉰(Lu Xun)과 같은 비판적 지식인의 정신을 복원할 것을 주문한다.4

4.3 임춘성 챕터의 학술적 의의: 첸리췬과의 연결성

임춘성의 분석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첸리췬 연구와 깊이 연동되어 있다. 첸리췬은 1949년 이후 중국 지식인들이 어떻게 "정신적 노예"로 전락했는지를 파헤친 학자다.16 임춘성은 이러한 첸리췬의 문제의식을 100년사 전체로 확장하여, **중국공산당의 역사가 곧 '비판적 이성의 말살사(史)'**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당이 자랑하는 100년의 성취(물질적 풍요, 강대국화) 이면에, 훼손된 정신적 가치와 억압된 목소리들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학술적 기여다.


5. 결론: 불확실한 100년의 미래와 연구의 과제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은 중국공산당이 단순한 독재 권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하고 적응하며 생존해 온 거대한 '학습 정당'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학습의 방향이 점차 다양성을 말살하고 1인 권력과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필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 신시대의 단절적 회귀: 시진핑의 신시대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분권, 실용, 도광양회)과 결별하고, 마오쩌둥 시대의 통제 방식(집권, 이념, 대중동원)을 현대적 기술(디지털 감시)과 결합하여 복원하고 있다.

  2. 역사의 도구화: 당은 정당성 확보를 위해 100년의 역사를 '승리의 서사'로 독점하고 있다. 이에 맞서 잊힌 기억(문혁의 피해, 톈안먼의 좌절, 농민공의 고통, 여성의 희생)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것이 비판적 연구자들의 과제다.

  3. 내재적 모순의 심화: 경제적 양극화, 인구 감소, 미중 갈등 등 신시대의 과제들은 과거와 달리 당의 통제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 성격을 띤다. '논쟁이 사라진 사회'에서 당이 과연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춘성 교수의 지적대로, 문학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단일한 목소리만을 강요하는 체제는 결국 내부로부터의 경직성으로 인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100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은 전례 없는 강대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강대함 속에 내재된 취약성 또한 깊어지고 있음을 이 보고서는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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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회(同懷) 40년 - 문화과학 신서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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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강사 시절 이웃 학과 노교수의 정년 퇴임 축하 자리에는 기념논문집 봉정이 빠지지 않았다. 제자와 후배 교수들이 스승과 선배 교수의 정년 퇴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글을 모아 논문집 또는 단행본을 만들어 봉정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논문 모음집이었고 때로는 주제를 정해 기획 구성한 단행본 형식을 갖추기도 했다. 간혹 논문집 봉정을 마뜩잖게 여겨 마지막 학기 강의를 주제 특강으로 기획해 각 주제 전문가를 초빙해 연속 강의를 진행하거나, 기념식을 생략하고 학술 세미나를 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나도 얼마 전까지 네다섯 차례 그런 글을 썼다. 65세 퇴임이 문자 그대로 정년(停年)은 아니지만, 대학원 입학부터 치면 40년 이상의 학술 생애를 일단락하는 계기임은 분명하다. 퇴임 후에도 연구실을 차리고 꾸준히 결과물을 내는 분도 적지 않지만, 막상 나날이 달라지는 체력과 심력(心力)의 저하를 체감하면서 적당히 멈출 때를 알아야겠구나(知止)’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코로나19 특별 방역 상황에도 불구하고, 20222월 말 29년 근무했던 대학을 떠나면서 학과를 뛰어넘어 동료 교수들의 과분한 환송을 받았고, 목포대 민교협에서는 고별 강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목포에 거주하는 졸업생과 심포지엄에 참여한 학부생들 그리고 대학원생들과도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또한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고별 강연 자리를 앞당겨 만들어주었고 학회의 절친한 후배들과 두어 차례 축하 모임을 했다. 문화/과학의 절친한 선배 부부도 특별한 축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정년 퇴임을 축하해준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을 처음 구상할 때는 내 나름의 일단락이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동안 몇 권의 단독 저서를 내면서 거기에 수록하지 못했던 글 위주로 가능한 매년 한편을 골라 단행본으로 묶고자 했다. 지난 글들을 정리하며 추리다 보니 학술 논문 외에도 서평과 서평 답글, 책 서문, 강연 원고, 추천사, 영화평, 인터뷰, 학술대회 참관기, 사설 등 종류가 꽤 많았다. 특히 이메일로 주고받은 글은 갈무리하면 그 분량이 상당할 것 같았지만 제외했다. 선인들의 문집을 보며 다양한 장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학술적인 글은 함께 내는 다른 책에서 비판적 중국연구의 여정이라는 명목으로 묶은 만큼, 이 책은 가능한 학술 논문을 제외한 다른 글들을 중심으로 선별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느낌을 드러낸 글을 매년 한 편의 기준으로 골랐다. 물론 이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거에서 거슬러오기보다는 최근부터 되돌아가는 형식을 취했다. 모든 글은 가능한 발표 당시의 원상태를 유지했고,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 그리고 문맥을 다듬는 수준에서 교정했다. 간혹 추가한 부분은 각주로 표기했다. 부록으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와 추모글 한 편, 그리고 단행본 목록과 정기간행물 게재 글 목록을 실었다. 목록은 일단락을 위해 필요하다 싶어 만들었는데 의외로 게재 글 쪽수 확인에 시간이 걸렸다.

                                                                   ---[책을 펴내며]에서


 

이 책을 처음 구상할 때는 내 나름의 ‘일단락’이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동안 몇 권의 단독 저서를 내면서 거기에 수록하지 못했던 글 위주로 가능한 매년 한편을 골라 단행본으로 묶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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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문화과학 이론신서 82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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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에서 사회주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본 정보의 수집조차 불가능했던 중화인민공화국 연구는 한편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죽의 장막’ 속 ‘뿔 도깨비’로 단정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수준에서 그것을 ‘인민 천국’으로 상상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반공 이데올로기의 금제 아래 사회주의 중국 연구의 물꼬를 튼 리영희(1977; 1983), ‘비판적 중국연구’의 깃발을 내건 정치학자 이희옥(2004)과 사학자 백영서(2012; 2023), 세계체계의 틀에서 중국을 고찰한 사회학자 백승욱(2008) 등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자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 학문 영역에 사로잡혀 ‘학제적․통섭적 연구’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 특색의’ 제반 관행을 적시하며 ‘비판적 중국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자고 제안한 문화평론가 이재현(2012a)의 문제제기가 그동안 중국에 매몰되었던 비판적 시야를 환기해주었다. 그럼에도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은 지금도 험난하다.

이데올로기 지형이 자유로워진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쟁점과 과제가 가로놓여 있지만, 그 가운데 근본적인 것은 모던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그에 대한 반발로 제출된 ‘중국중심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초우(Rey Chow, 周蕾)는 ‘비판적 중국연구’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중국의 외부, 즉 서양과 미국의 중국학자들에게 공통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내부, 즉 토착적 중국학자들이 공유하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이다(초우, 2005). 오리엔탈리즘은 문화제국주의의 유산이고 내셔널리즘은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결국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상호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성하면서 지금껏 비판적 중국연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중국 외부로는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중국 내부로는 내셔널리즘과 내부 식민지를 극복하는 것, 바꿔 말하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문제점을 파악해 문화제국주의의 맥락 안에서 나르시시즘적 가치생산의 문제를 규명하는 일이야말로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유럽중심주의와 중국중심주의가 심층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의 프리즘으로 왜곡된 중국관이다. 이는 끊임없이 ‘중국위협론’과 ‘중국위험론’을 부추겨 반중(反中)과 혐중(嫌中) 정서를 조장해왔다.

이 책은 2017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학자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지만, 집필하다 보니 지난 40년간 ‘비판적 중국연구’의 길을 걸어온 필자의 학문적 여정을 집성(集成)하게 됐다. 문학연구가 내 공부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면, 1990년대 시작한 문화연구와 그 연장선상의 도시문화 연구, 2010년대 후반에 시작한 사이노폰 연구, 그리고 문화연구와 사이노폰 연구 사이 어느 시점에

관심을 두게 된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개인 차원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 홍콩과 상하이의 문화정체성 연구, 에스노그라피,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사상 등도 여정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 외에도 ‘비판적 중국연구’의 여정을 뒷받침해준 수많은 공부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사회주의, 인지과학, 포스트휴먼, 적녹보라 패러다임 등등이 그 목록이다. 이 목록은 ‘새로운 대륙’(루이 알튀세르)이라 일컫기에는 부족하지만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필자가 만나 도움받은 영역들이다. 여기에서는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한 접근법으로 ‘비판적 문화연구’와 ‘도시문화 연구’ ‘포스트식민 번역연구’와 ‘사이노폰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 다룬 접근법과 과제가 ‘비판적 중국연구’에 뜻을 둔 문학연구자와 문화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책을 펴내며]에서

이 책은 2017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학자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지만, 집필하다 보니 지난 40년간 ‘비판적 중국연구’의 길을 걸어온 필자의 학문적 여정을 집성(集成)하게 됐다. 문학연구가 내 공부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면, 1990년대 시작한 문화연구와 그 연장선상의 도시문화 연구, 2010년대 후반에 시작한 사이노폰 연구, 그리고 문화연구와 사이노폰 연구 사이 어느 시점에 관심을 두게 된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개인 차원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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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자와 그의 소유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48
막스 슈티르너 지음, 박홍규 옮김 / 아카넷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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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양 근현대 철학사를 섭렵하고 있는 루쉰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익숙지 않은 한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막스 슈티르너(Stirner, Max). 왕후이는 흔히 알려진 대로 루쉰이 니체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다른 맥락에서 슈티르너의 영향을 상당히받았음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왕후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루쉰의 개체성 원칙은 상당 부분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왕후이의 판단이다. 루쉰은 1922「『노동자 셰빌로프를 번역하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 중에는 가끔 내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내게 대단히 불가사의하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데, 나는 니체를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내가 보다 익숙하고 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이는 슈티르너(Max Stirner)이다.

 

루쉰의 언설은 때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위 인용문에서 니체에 대한 언급이 그러하다. 루쉰이 받은 니체의 영향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성과가 나와 있으므로 굳이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으로부터 우리는 최소한 루쉰이 슈티르너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니힐리즘, 실존주의, 정신분석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아나키즘, 특히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그는 서유럽 사상사의 현대적 맥락에서 스스로 형이상학을 제거한 첫 번째 인물일 뿐 아니라 마르크스가 철저하게 인간주의를 벗어나 역사유물론의 과학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장이빙 2018, 583)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적 본질의 논리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었다.”(장이빙, 608) 여기에서 그의 전체 사상을 살펴볼 여유는 없고, 루쉰의 개체성 원칙과 관련된 부분을 영문 번역본(Stirner 2017) 및 중문 번역본(施蒂纳 1989)과 장이빙(2018)을 중심으로 고찰해보도록 하자.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나는 무(, Nichts)를 내 삶의 기초로 삼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포이어바흐와 헤스, 그리고 청년 마르크스가 제기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최고 본질이라는 인간주의의 슬로건에 대해, 현실 존재로서의 개인인 나는 모든 것보다 숭고하다라는 명제로 문제를 제기했다. 슈티르너의 키워드는 ’, ‘이기주의’, ‘유일자(the unique)’. 이 세 가지의 대표인 유일자의 사명은 ()’. 그의 는 정치적인 무정부일 뿐 아니라 존재론(ontology)적 의미에서의 철저한 소멸과 자유이며 전통적 형이상학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 전복이다. 그리고 는 어떤 대상이 어떤 총체적 관계로부터 의지하지 않는 현실의 개인이다.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니체의 초인에 영향을 주었고 새로운 인간주의의 입장에서 고전 인간주의의 본질을 반대하는 개인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를 본질로 하는 유일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일컫는 개인과 주체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은 저자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슈티르너 사상의 의미는 역사적인 맥락을 초월해 당대성도 가지고 있다.

유일자와 그 소유는 인류(humanity)와 소유(ownness)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 슈티르너는 인류 개체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 단계 유년 시기는 인간이 사물 대상과 관계를 맺는 초보적 리얼리즘 시기이고, 둘째 단계 청년 시기는 이상주의 관점의 시기이며, 셋째 단계 성인 시기에서 성인은 이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세계에 대응한다. 이것이 바로 슈티르너가 긍정하는 자기중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2의 자기 발견이며 사물에 얽히지 않고 객관적 실재에서 출발하는 현실적 입장이기도 하다. 슈티르너는 고대인의 관념은 유년기의 산물이고, 중세 이후 모든 근대 관념은 성숙하지 못한 청년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정신결정론이라 비판하면서, 자신의 관념만이 진정한 성인의 성숙한 사상을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도 반대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봉건 전제에서 벗어난 것이고, 사회주의의 자유는 자본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슈티르너가 보기에 이들 자유는 허구라는 것이다. 슈티르너가 보기에 중세시대와 비교했을 때 자유주의는 또 다른 개념을 화제로 제시했을 뿐이다. , 신을 대체한 것은 인간이라는 개념이고 교회를 대체한 것은 국가라는 개념이며 신앙을 대체한 것은 과학이라는개념이다. 요컨대 생경한 교조와 계율을 대체한 것은 현실적 개념과 영원한 법규다.”(麥克斯施蒂纳 1989, 103) 자유주의는 중세의 신과 교회와 신앙을 인간과 국가와 과학으로 대체했을 뿐, 그 본질이 억압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기독교의 계율을 부르주아 법규로 대체했을 뿐이다.

슈티르너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불과하다. 그것은 개인이 재산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고 모두가 재산을 점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산자가 희망하는 대로 빈부 격차를 소멸시킨 사회를 건립한다면 그는 유민이 될 것이다.”(麥克斯施蒂纳, 126) 유민은 부르주아혁명이 시민으로 치켜세웠던 것과 비슷하게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유민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사회만이 재산을 가지게 되는데, 사회추상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모든 유민은 평등하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슈티르너의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어떤 사람도 명령을 발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인용자) 어떤 사람도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인용자) 국가만이 명령권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인용자) 사회만이 재산을 가지게 된다.”(麥克斯施蒂纳, 125) 둘 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르주아 자유주의 및 그 대안으로 제시된 사회주의까지 부정하는 슈티르너의 유일자개념의 핵심은 대체 불가능한 유일자로서의 개인이다.

그간 슈티르너는 마르크스에게 비판받으면서 많은 이들에게 잊혔지만,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다. 이를테면 에티엔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논하기도 했다.

 

슈티르너는 어떤 믿음도 어떤 [대문자] 관념도 어떤 거대 서사, 그러니까 [대문자] , [대문자] 인간, [대문자] 교회, [대문자] 국가의 거대 서사도 원하지 않으며, 또한 동시에 [대문자] 혁명의 거대 서사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현실적으로en effet 인권공산주의 사이에 아무런 논리적 차이가 없듯이, 기독교chrétientié, 인류, 인민, 사회, 민족nation 또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차이가 없다. 이 모든 보편적 통념은 실제로는/현실적으로는effectivement 추상물일 뿐이며, 이 추상물은 슈티르너의 관점에서는 허구들일 뿐이라는 점을 의미한다.(발리바르 2018, 1145. 강조-원문)

 

즉 슈티르너는 기독교 신학과 계몽 정신 그리고 시민의식으로부터 급진적인 인간주의와 공산주의까지 포함해 모든 ()적 존재총체를 허구(fiction)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슈티르너는 개인에 대한 ()적 존재총체의 압박을 반대하면서 당시 유럽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사상과 논쟁을 벌였다. 슈티르너는 신학에서 헤겔까지, 헤겔에서 다시 포이어바흐까지의 변화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신성한 정신이 절대 관념으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이 절대 관념이 또 여러 가지로 변해 인류애와 합리성, 시민 도덕 등등 여러 가지 관념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슈티르너는 오직 눈에 보이는 개체의 존재만을 믿었다. 이런 개인을 슈티르너는 유일자라고 일컬었다. 슈티르너에게 있어 유일자는 삶의 기초가 되는 창조자이고 그것은 영원불멸하지 않은 무()이다. “내가 유일자인 나 자신을 내 삶의 기초로 삼는다면, 내 삶은 자신을 소비하는 일시적이고 사멸하는 창조자에게 의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무를 내 삶의 기초로 삼았다.”(Stirner 2017, 377)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루쉰의 개체성 문화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 막스 슈티르너의 원저는 184410(책에는 1845년으로 표시) 라이프치히에서 출간되었다(Stirner, Max, 1845, Der Einzige und sein Eigentum). 1907년 아나키스트였던 스티븐 빙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고(Stirner, Max, 1907, The Ego and His Own, translated by Steven T. Byington, Benj. R. Tucker Publisher, New York), 같은 판본이 1995년에 다시 출간되었다(Stirner, Max, 1995, The Ego and His Own, edited by David Leopold, translated by Steven T. Byingt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그리고 2017년 월피 랜드슈트라이허에 의해 새롭게 번역되었다(Stirner, Max, 2017, The Unique and Its Property, translated by Wolfi Landstreicher, Underground Amusements). 한편 중국에서는 1989년 번역 출간되었다(施蒂纳, 1989, 唯一者及其所有物, 金海民译, 商务印书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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