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비판적 문화연구와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문화과학 이론신서 82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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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에서 사회주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본 정보의 수집조차 불가능했던 중화인민공화국 연구는 한편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죽의 장막’ 속 ‘뿔 도깨비’로 단정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수준에서 그것을 ‘인민 천국’으로 상상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반공 이데올로기의 금제 아래 사회주의 중국 연구의 물꼬를 튼 리영희(1977; 1983), ‘비판적 중국연구’의 깃발을 내건 정치학자 이희옥(2004)과 사학자 백영서(2012; 2023), 세계체계의 틀에서 중국을 고찰한 사회학자 백승욱(2008) 등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자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 학문 영역에 사로잡혀 ‘학제적․통섭적 연구’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 특색의’ 제반 관행을 적시하며 ‘비판적 중국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자고 제안한 문화평론가 이재현(2012a)의 문제제기가 그동안 중국에 매몰되었던 비판적 시야를 환기해주었다. 그럼에도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은 지금도 험난하다.

이데올로기 지형이 자유로워진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쟁점과 과제가 가로놓여 있지만, 그 가운데 근본적인 것은 모던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그에 대한 반발로 제출된 ‘중국중심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초우(Rey Chow, 周蕾)는 ‘비판적 중국연구’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중국의 외부, 즉 서양과 미국의 중국학자들에게 공통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내부, 즉 토착적 중국학자들이 공유하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이다(초우, 2005). 오리엔탈리즘은 문화제국주의의 유산이고 내셔널리즘은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결국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상호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성하면서 지금껏 비판적 중국연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중국 외부로는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중국 내부로는 내셔널리즘과 내부 식민지를 극복하는 것, 바꿔 말하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문제점을 파악해 문화제국주의의 맥락 안에서 나르시시즘적 가치생산의 문제를 규명하는 일이야말로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유럽중심주의와 중국중심주의가 심층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의 프리즘으로 왜곡된 중국관이다. 이는 끊임없이 ‘중국위협론’과 ‘중국위험론’을 부추겨 반중(反中)과 혐중(嫌中) 정서를 조장해왔다.

이 책은 2017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학자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지만, 집필하다 보니 지난 40년간 ‘비판적 중국연구’의 길을 걸어온 필자의 학문적 여정을 집성(集成)하게 됐다. 문학연구가 내 공부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면, 1990년대 시작한 문화연구와 그 연장선상의 도시문화 연구, 2010년대 후반에 시작한 사이노폰 연구, 그리고 문화연구와 사이노폰 연구 사이 어느 시점에

관심을 두게 된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개인 차원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 홍콩과 상하이의 문화정체성 연구, 에스노그라피,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사상 등도 여정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 외에도 ‘비판적 중국연구’의 여정을 뒷받침해준 수많은 공부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사회주의, 인지과학, 포스트휴먼, 적녹보라 패러다임 등등이 그 목록이다. 이 목록은 ‘새로운 대륙’(루이 알튀세르)이라 일컫기에는 부족하지만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필자가 만나 도움받은 영역들이다. 여기에서는 ‘비판적 중국연구’를 위한 접근법으로 ‘비판적 문화연구’와 ‘도시문화 연구’ ‘포스트식민 번역연구’와 ‘사이노폰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 다룬 접근법과 과제가 ‘비판적 중국연구’에 뜻을 둔 문학연구자와 문화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책을 펴내며]에서

이 책은 2017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학자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지만, 집필하다 보니 지난 40년간 ‘비판적 중국연구’의 길을 걸어온 필자의 학문적 여정을 집성(集成)하게 됐다. 문학연구가 내 공부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면, 1990년대 시작한 문화연구와 그 연장선상의 도시문화 연구, 2010년대 후반에 시작한 사이노폰 연구, 그리고 문화연구와 사이노폰 연구 사이 어느 시점에 관심을 두게 된 포스트식민 번역연구는 개인 차원에서 비판적 중국연구로 나아가는 여정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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