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림의 500자 소설
문수림 지음 / 수림스튜디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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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림 / 500자 소설

500자. 누군가에게는 SNS의 짧은 피드 한 칸일 뿐이지만, 작가 문수림에게는 하나의 완결된 우주가 태어나는 최소 단위였다.

#500자소설 스레드 플랫폼의 특성을 문학적 실험으로 끌어들여, 약 500자 내외의 분량 안에서 하나의 서사를 완결해 낸 101편의 기록. 단 500자라는 분량 안에서 등장인물의 갈등과 욕망을 선명하게 그려내며, 개별 작품들이 독립적인 동시에 인간의 근원적 기억으로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망을 형성하는 작품이다.

"시가 아닌 #소설 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고집이 문장마다 묻어난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명확한 등장인물이 있고, 갈등이 있고, 무엇보다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열린 결말이 무척 매력적이다.

17. 카낙의 별 이나 22. 무해한 것들의 죄 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짧은 글이 주는 타격감이 장편 소설 못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주 밀도 높게 압축된 세계를 베어 문 듯한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또한 팬 독자들을 위해 곳곳에 작은 #이스터에그 를 심어두었다 하니, 이를 발견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있는 읽기 경험이 될 것이다.

긴 호흡의 소설이 부담스러운 분, 문학적인 자극을 짧고 강렬하게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문수림 작가가 설계한 그 연결망 안에서, "나도 딱 500자만 써볼까?" 하며 자신만의 500자를 써 내려가고 싶은 간질거리는 창작욕과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중 하나의 지점이며, 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 정보는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urimstudio.com

"500자, 인생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장 완벽하고도 겸손한 숫자."

#다독 #수림스튜디오 @surim_studio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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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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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주 시노 / 슬픈 호랑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발명.

2023년 페미나상과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휩쓸며 문학계를 뒤흔든 네주 시노의 #슬픈호랑이 는 소설과 에세이, 회고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

66p 이 글에는 일기가 들어 있지 않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린 내면 풍경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나에게 속한 나만의 공간은 행간에 있지 않고, 행 자체에도 있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내 안에만 존재한다.

이 책은 #알프스산맥 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얼룩진 유년 시절을 되짚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족이 깨질까 두려워 홀로 비밀을 간직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가해자를 고소하고 재판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파편화된 기억과 신문 기사, 편지 스크랩 등의 기록을 통해 재구성한다.

91p 이 책의 화자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화자를 나와 떼어 놓고 이 서술의 당당한 주체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 화자는 마치 사회면 보도 기사를 쓰듯이 나를 몇몇 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고 단죄함으로써 사건은 형벌로 끝이 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해자의 처벌 이후에도 끈질기게 삶을 맴도는 #트라우마 의 흔적들과 그 이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얄팍한 동정과 일그러진 시선, 평면적인 기대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남겨진 상처를 안고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128p 나는 이 책이 바로 나에게, 한 인간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 있으리라 확신 하지 못한다. 나는 글쓰기가 치료법이 된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설령 그런 글쓰기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내가 치유된다고 생각하면 혐오감이 밀려온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이 책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194p 내가 곤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배심원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나를 강간한 자의 유죄성이 얼마쯤 적어진다. 심지어는 내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만약 그가 정말로 무언가 심각한 짓을 나에게 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으리라. 종종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는 살아 있고, 너의 뇌는 잘 작동하고 있어. 너는 자유롭게 떠나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 뭐하러 네가 고소를 하는 거야?

그렇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자의 일상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책의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 의 한 구절에서 출발한다. "Did he smile his work to see?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 창조주가 순수하고 온순한 존재인 어린양과 파괴적이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호랑이'를 동시에 만들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333p 만약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어린양보다 호랑이를, 개보다 늑대를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즉 지배당하다가 지배자가 되고, 다시 일어나 복수를 하는 전사가 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어떻게 악을 초월하면서도 새로운 악을 향하지 않고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선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될까?

네주는 이를 통해 자신을 훼손한 강간범과 정녕 같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인지 악의 근원을 파헤치며, 선과 악,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세상의 모순을 다뤘다. 가해자의 초상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피해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분석하는 도구로 문학을 활용한 점이 놀라웠다.

기존 증언 문학의 한계를 부수고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다독 #열린책들 @openbooks21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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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다
이멍 지음 / 허블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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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멍 /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다

"당신의 그 병든 혈관이 우리에겐 억만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고급 식재료라는 걸 아십니까?" 도발적인 대사만큼이나 강렬한 뒤틀림을 준다.

#당신은아직젊고건강하다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멍 작가의 첫 SF 소설집. 수상작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단숨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운맛 단편선.

인간의 결핍과 욕망, 그리고 기이한 공생 관계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내린다.

부모님이 남긴 60평짜리 물류 창고를 얼떨결에 떠맡아 워커홀릭 귀신 아르바이트생과 기묘한 동업을 시작하는 이야기, 혐오스러운 기생충을 사랑했던 남편을 이해하려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아내, 그리고 감정을 느끼면 굳어버리는 치명적인 병을 안고도 감정을 지우는 약을 삼키며 묵묵히 인간 딸을 길러내는 무정한 곤충 외계인 이야기.

다섯 편 중 단연 최고였던 '후루룩 쩝쩝 맛있는'에는 심혈관질환자들의 기름진 혈관을 최고급 식재료로 여기는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순간 나조차도 '지구인 혈관 볶음'의 맛이 궁금해질 정도로 묘사가 강렬했다. 자연산 고집하는 입맛은 우주 공통인지, 억만금을 내고서라도 지구인의 혈관을 탐하는 그들의 모습이 몹시 흥미로웠다.

외계인, 귀신, 기생충 같은 존재들과 인간이 맺는 의존 관계를 통해 역겨움과 애틋함, 끔찍함과 사랑스러움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절묘하게 배합해 냈다. 기이한 해방감을 안겨주는 이 기괴한 생존 투쟁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작가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허블 @hubble_books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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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가지 건축으로 읽는 세계사 - 스톤헨지부터 우주정거장까지 역사의 랜드마크로 남은 위대한 걸작들 ㅣ 테마로 읽는 역사
소피 콜린스 지음, 성소희 옮김, 임석재 감수 / 현대지성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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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콜린스 / 500가지 건축으로 읽는 세계사

건축물은 그 자체로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역사책과 같다.

500가지 건축으로 읽는 세계사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500개의 핵심 건축물을 통해 180만 년의 거대한 세계사 스토리를 읽어내려가는 건축 세계사 백과사전.

기원전 고대 문명의 유적에서 시작해 왕권과 종교가 빚어낸 중세의 웅장한 사원들, 대항해시대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변화한 근현대의 건축물, 그리고 21세기 최신 건축 프로젝트까지 짚어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계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명확하게 요약했다.

줄거리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1부에서 기원후 1000년 이전의 신비로운 고대 유적을 다루고, 2부에서는 중세 종교의 번성과 제국의 확장이 낳은 웅장한 사원과 성곽들을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봉정사 극락전도 이 즈음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3부와 4부를 거치며 세계는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를 맞이하며,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거대 공학 프로젝트인 수에즈 운하 등의 등장 배경이 매우 흥미롭게 서술된다. 마지막 5~6부에서는 세계대전의 상흔과 대중문화의 번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현대의 친환경 건축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굵직한 흐름을 완성했다.

각 시대별 주요 건축물을 중심으로 제국의 흥망성쇠와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세계사가 담겨 있다. 절대왕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화려한 궁전의 이면, 대중의 분노가 폭발해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가 된 바스티유 감옥의 암울함, 그리고 나치 독일의 잔혹성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까지. 각 장소에서 벌어졌던 대사건들이 건물의 외관, 구조와 맞물려 생생하게 전달된다.

전쟁, 혁명 같은 굵직한 사건부터 예술가들의 사생활과 정치적 알력 다툼 같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가득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최고의 무기는 570장에 달하는 생생한 고화질 컬러 사진과 설계도면. 풍부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건축물의 외양뿐만 아니라 세부 설계도까지 수록해 평면적인 역사를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텍스트로만 읽던 역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경험은 꽤 강렬했고, 마치 진짜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몰입감을 줬다. 넓은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글로만 읽는 역사에 지쳤다면 추천하고 싶다.

늘 곁에 두고 찾아보기 좋은 든든한 건축 교양서.

#다독 #현대지성 @hdjsbooks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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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ㅣ 안전가옥 쇼-트 34
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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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성 /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암에 걸린 아내를 떠나보낸 주인공 수한에게, 죽은 아내 나나의 이름으로 거대한 택배 상자가 도착한다. 그 안에는 외모는 물론, 뇌의 싱크를 통해 모든 기억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복제인간이 들어있었다.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나나의 쪽지와 함께 나타난 복제인간 리수한이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더 완벽하게 수한의 삶을 대신하며 일상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린다.

암에 걸린 이후, 나나의 시간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남은 시간을 세어야 하는 삶,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함께 있어야 할 사람과 점점 멀어지는 감각. 그렇게 병으로 인해 약해져 가는 나나의 곁에서 지쳐간 수한은 감정을 닫아버렸다.

나나를 떠나보낸 이후에도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딸을 죽인 놈이라는 장모의 의심, 혼란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재이, 그리고 양육권을 가져오고 싶은 수한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진다.

자신보다 더 완벽하게 삶을 대신하는 복제인간의 등장은 처음엔 기묘한 호기심을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근원적인 위협과 공포로 다가온다. 결국 수한은 자신이 잊고 싶었던 가장 못난 모습과 감정의 찌꺼기까지 복제된 존재를 거울처럼 마주했다.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남편을 보고 싶어 복제를 선택했다는 아내. 하지만 감정은 원하는 부분만 잘라낼 수 없었다. 사랑과 절망이 끝내 분리되지 못한 채, 하나의 형태로 굳어버린 것처럼 사랑과 혐오는 엉겨 붙어 있다.

사람의 감정은 어디까지 숨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밀어 넣은 감정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안전가옥 @safehouse.kr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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