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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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김청귤·천선란·저우원·청징보·왕칸위 / 다시, 몸으로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SF 여성작가 여섯이 모였다. 가상화되고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잊혀진 몸을 복원하려는 이야기로 서버에 이주한 인간, 언어가 감염처럼 섞이는 전염병, 죽은 이들이 깨어나는 정원, 철저히 통제된 사회와 감각을 공유하는 기술까지 독창적 설정과 감각적 묘사로 꽉 찬 6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마다의 개성과 문학적 실험을 담아낸 단편들 다시, 몸으로 는 SF 이지만 전투도 없고, 우주선도 없고, 외계인도 없다. 기억을 저장하는 몸, 감각을 잃어가는 언어, 통제된 쾌락, 재조립된 정체성. 그 어떤 우주보다 넓고 깊은 신체라는 소우주를 탐사했다.

몸은 기억을 담은 그릇이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증거다. 기술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시대에 오히려 그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각과 감정, 기억의 흔적을 되짚는다.

몸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신체는 통제되거나 탈주하는 존재가 아닌, 고유한 기억의 그릇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존재를 실감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며, 기술과 인간, 감각과 기억에 대한 철학적 의미까지 담아냈다.

그중 최고였던 김초엽의 단편 달고 미지근한 슬픔.
주인공 단하의 세상은 큐비드로 구성된 시뮬레이션이며, 감각과 감정 또한 거짓이다. 하지만 나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단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다고 느끼는 시간들을 자주 겪었으며,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감정도 둔해지고, 무엇에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어딘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나만의 이상함 같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어서 더 외로웠다.

다시, 몸으로 는 내 안의 감각의 결여를 일깨웠고, 살아 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느껴졌던 감정들의 정체를 알게 해 준 신기하고 멋진 소설이었다.

#래빗홀 @rabbithole_book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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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할미 - 짧게 읽고 오래 남는 모두의 명화수업
할미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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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미술관에 간 할미

기억에 오래 남는, 모두를 위한 유쾌하고 따뜻한 명화 수업

할미 왔다~ 구수하고 발랄한 첫인사 한마디로 시작되는 미술관에 간 할미 기존의 미술사 교양서가 결코 주지 못했던 특별한 온기와 유쾌함을 선사한다. 30만 유튜브 구독자와 누적 조회수 5천만 회를 기록한 화제의 채널 #할미아트의 주인공, 그림사랑꾼 할머니가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

르네상스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미술사의 흐름을 사람에 집중하여 풀어낸다. 작품과 그 작가의 삶,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배경을 엮어 마치 드라마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와 그림이 생겨난 이유, 그 안에 담긴 고민과 진심, 사랑과 절망이 뒤엉킨 순간들이 정 많은 할머니의 따뜻한 말투로 전해지며, 깊은 감동과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31p 우리 똥강아지도 비록 지금 세상이 알아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렴. 당장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도 괜찮단다. 진짜 훌륭한 건 때로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법이니까. 네 안의 보석이 빛날 순간은 분명 올 거야.

매 장마다 감정을 중심에 두고 명화를 소개하는 방식이 정말 좋았다. 책 속 할미와 함께 걸으며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과 명화 한 점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어려울 줄만 알았던 미술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을 수 있다니, 이제는 그림 앞에 서는 시간이 기대된다.

미술관에 간 할미2도 나왔으면 좋겠다. 또 다른 이야기로 할미를 다시 만나고 싶다.

#더퀘스트 @thequest_book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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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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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 매듭의 끝

홍학의 자리로 한국 미스터리 문학의 반전을 새로이 정의한 작가 정해연 "두 번 다시 이런 소설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말하며, 지금껏 써온 미스터리 중에서도 가장 처절하고 가장 인간적인 소설을 선보인다.

모성은 인간 감정 중 가장 순결하고 헌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매듭의 끝은 그 모성이 욕망과 뒤얽힐 때 어떤 비극이 닥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가장 믿고 싶은 존재가 어느 순간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며, 선을 넘는 순간 드러나는 두 모자관계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박희숙, 그리고 그 사랑이 때로는 폭력처럼 느껴지는 아들 최진하. 이 모자 관계와 교차하듯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형사 이인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후, 그 용의자로 어머니를 의심하며 살아간다.

강박과 통제, 희생과 헌신, 그리고 끝내 집착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며, 인간이 맺는 가장 복잡하고 내밀한 관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이면.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있어. 넌 그러면 된 거야."

“내 인생에는 단 하나의 목표밖에 없었어. 회사를 지키는 것, 그리고 네가 성공하는 것.”

하지만 그 성공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정교한 플롯, 흔들림 없는 캐릭터, 긴박한 전개.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처절한 사랑.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읽힌 올해 읽은 미스터리 중 단연 최고였다. 진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면한 만큼, 그것은 더 날카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정해연 작가는 이번에도 인간의 가장 깊은 그림자를 들여다봤고,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인다.

#현대문학 @hdmhbook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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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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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라리 젠틸 / 살인 편지

하얀 봉투 위 선명한 핏자국, 밀봉된 편지 그 안에는 검은 속내가 숨어 있다. 살인편지 봉인된 진실을 열어젖히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힌다.

살인 편지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는 액자식 미스터리 소설 속 소설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라 현실또한 살아 움직인다.

이야기는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된다. 작가 지망생 프레디는 차기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다. 그녀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사람을 관찰하며 이야깃거리를 떠올리고, 그들 을 프로이트 걸, 만화 주인공 턱, 잘생긴 남이라 이름 붙인 뒤, 이들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건을 만들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도서관 밖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며, 사건은 현실이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실은 또 하나의 소설 도서관 비명 살인사건 속에서 펼쳐지는 픽션이다. 그 소설을 쓰고 있는 이는 호주의 미스터리 작가 해나 타이곤은 미국 보스턴에 사는 ‘리오’라는 독자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글을 집필 중이다.

리오는 소설 속 살인 장소에 적합한 실제 장소를 제안하고, 우연히 살인 현장을 발견했다며 사진을 보내오는 등, 점점 선을 넘는 조언과 논평의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한다. 선을넘는 논평과 조언의 편지를 보내는 리오 존슨. 마치 모든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해나가 아직 쓰지 않은 장면들까지 예측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유도한다.

해나는 점점 혼란에 빠졌다.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소설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과거를 대신 써 내려가는 보고서처럼 느껴졌기에. 리오의 편지 한 줄 한 줄은 해나에게 이 글이 허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점점 키워나가게 했다.

욕망과 복수, 로맨스까지 얽히며, 서로를 의심하는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는 관계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강렬한 표지처럼 이야기의 밀도도 탄탄해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충격적인 반전까지 읽는 내내 몰입감이 좋았다. 내용과 구성 또한 완벽하게 어우러져 진짜 선물용으로도 딱 좋은 책이다.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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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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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 불멸의 유전자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이기적 유전자로 과학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리처드 도킨스. 이번 책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과거 죽은 이들의 이야기, 실패와 성공, 예측과 적응의 기록을 유전자로 품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개체는 유전자가 자신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운반 수단이자 탈 것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변이와 선택을 거치며 영속적으로 전달되며, 때로는 똑같이, 때로는 조심스럽게 바뀌며 수십만, 수백만 년을 이어간다. 바로 이 유전자의 불멸성, 유전이라는 정보의 연속성과 복잡한 축적의 흐름이 불멸의 유전자의 핵심 주제다.

특히 불멸의 유전자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팰림프세스트라는 개념이다. 고대 양피지에서 오래된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썼던 방식으로 도킨스는 유전체를 이 팰림프세스트에 비유했다.

도킨스는 이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자의 유전서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지금 우리가 보는 생물의 몸은 단지 현재에 맞게 적응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거의 수많은 생태적 환경, 생존과 번식의 도전을 견뎌낸 수천 세대의 기록이 켜켜이 쌓인 복합물이라는 것.

결국 생물의 유전체란 지금 이 순간의 생존만을 위한 설계도가 아닌 수백만 년 전 조상들의 환경에 대한 응답이며, 생존 전략이자, 실패와 성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층적인 진화의 문서였다.

유전자는 우리를 과거로부터의 예측으로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 예측을 읽고, 해석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장을 쓰는 존재다. 유전자는 나를 설계했지만, 유전자는 나를 조종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유전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로서 진화는 리셋이 아니라, 덧쓰기다. 삶도 마찬가지 지워내고 싶은 순간들이 있지만, 결국은 그 위에 계속해서 살아가며 덧쓰는 수많은 예측의 산물이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유전적 흐름의 일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조차도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계속 이어지기 위해 수많은 생명들이 선택해온 기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수많은 기억의 합이고,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출판사 '을유문화사'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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