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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셀리반 - 러시아문학 다림세계문학 9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다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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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각 사회마다 면면이 이어온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경험에 의해 축적된 삶의 지혜일 수도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적 편견을 낳기도 한다. 예를 들면 ‘광대뼈가 튀어나오면 팔자가 사납다’라든가, 혹은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설사 그것이 한두 번의 개인적 발견에 의해 뒷받침되었더라도 그것은 우연한 일치를 반복적으로 동일시해온 인간 편견의 산물일 것이다. 일단 한 인간의 의식 내면에 고정된 편견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차후 그 편견에 일치된 경험을 하게 되면 자꾸 왜곡된 의식을 강화해나가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셀리반은 얼굴에 있는 붉은 점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괜한 오해를 받는다. 러시아에선 ‘악한 사람은 하느님이 미리 점지해 놓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바로 셀리반의 얼굴점이 그 표식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마치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을 연상하게 한다. 사회적 분노를 폭발시킬 대상을 찾아 마치 그가 악마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 모든 내면에 잠재된 악마의 탈을 그 대상에게 전가한다. 실은 그것이 자신들 내면에 쌓인 악한 양심의 표출인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선량한 양심이 그 악마에게 강탈당한 것처럼 여긴다. 이제 사람들은 차츰 악마의 화신을 멀리하고 배척한다. 그와 관련된 조그만 사건도 크게 부풀려져 나돌게 되고, 그 부풀려진 거짓이 거짓된 편견을 확고한 사실로 정착시킨다.

그러나 한걸음만 물러서서 살펴보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자명(自明) 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화자인 나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보면 될 일이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말과 시중에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을 믿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내가 보지 않은 사실을 사일인 것처럼 과장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화자가 보는 한 셀리반은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다.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그는 빵장수 집 점원으로 일하면서 동전 한 닢도 숨겨본 일이 없고 빵 하나도 몰래 훔쳐 먹어본 적이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망나니의 자식이라고 내친 보리카의 딸을 보살펴주고 아내로 받아들인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결국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이 셀리반의 순수한 양심을 보지 못하고 겉모양으로 판단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셀리반의 착한 심성은 한 사건을 계기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한 3만 루블이라는 거금을 마차에 싣고 가던 화자의 고모가 폭설로 인해 길을 헤매다 셀리반의 여인숙에 묵게 된다. 이 대목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서로간의 편견이 노출된다. 셀리반은 셀리반대로 자신이 오해받을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투숙객들은 투숙객대로 자신들의 재산을 훔쳐가지나 않을까 밤새 초조해한다.

그래서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마차에서 밤을 샌 하인이 어스름한 새벽에 방에 다가가자 이를 도둑으로 오해한 셀리반이 이를 제압하면서 사단이 발생한다. 돈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착각한 투숙객들이 부랴부랴 도망치듯 출발하면서 그만 돈이 든 상자를 방에 두고 떠나버린 것이다. 집에 도착한 사람들은 셀리반이 이미 돈을 가지고 도망쳤을 것이라 생각하며 수군대고 있는 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셀리반이 도착한다. 그리곤 분실물의 3분의 1은 돌려준 사람이 가질 권리가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셀리반이 던지는 말은 그가 얼마나 법 없이도 살 인물인지 잘 보여준다.

“별 희한한 법도 다 있군요”,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돈을 얻을 수는 없지요.”

참으로 시원한 일갈이었다. 세상의 비뚤어진 인심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 아닌가?

이제 내 심중에 나도 모르게 배어 있는 편견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 편견이 쌓이고 쌓여 더 큰 괴물로 성장하기 전에 빨리 그 싹을 제거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묵은 편견의 찌꺼기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역간, 빈부간, 종교간 갈등이 괴물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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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단추 이렇게 채워라
앤드루 앨버니즈.브랜든 트리슬리 지음, 박정철 옮김 / 홍익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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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불혹에 다가서는 나이가 되어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죽음을 제외하곤 인생에 끝이란 없다는 것이다.(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죽음은 내게 아직 미답의 수수께끼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가 끝나는 순간 여지없이 새로운 시작이 다가온다. 졸업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가 시작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다시 고등학교가 시작된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이고 사회도 마찬가지다. 끝은 끝이 아니라 곧 시작이다. 따라서 졸업은 긴긴 시간을 견디어낸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곧 새롭게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를 다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특히 대학 졸업은 이제 학교가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첫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더욱 각별한 행사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대학 졸업식의 연사로 초대되어 새 출발하는 인생의 새내기들에게 좋은 충고의 말을 남긴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영예일 것이다. 그런 비중 있는 자리에 초대된 연사들은 신중하게 선발된 유명인사이거나 대학 당국이 의미를 부여할만한 분으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새내기들에게 닮고 싶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이다. 특히 그분이 자신이 졸업한 대학 출신이라면 더불어 학교에 대한 자긍심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의 연설 내용 또한 인생의 풍부한 경험이 담겨 있고, 앞으로 졸업생들이 미래를 설계하는데 보탬이 되는 값진 금석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연설문들의 모음이다. 대학 졸업생들에게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는 글들의 집합이다. 그렇기에 미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저명인사들의 명연설을 이 한 권으로 집약해서 모두 들을 수 있다. 우리 뉴스에서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정치인, 영화감독,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가 있고,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법조계 인사, 사업가, 인기 작가, 학자 영부인도 있다. 그들이 던지는 한 마디 덕담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보다 훨씬 무게가 있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이미 사회의 저명인사이기에 같은 말이라도 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 더욱 중량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 보기엔 그들의 일설이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지만 단지 그들만을 위한 글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생엔 늘 시작과 끝이 반복되기에 어느 순간이든 출발점에 선 새내기라면 반드시 새겨야할 명연설이 아닌가 싶다. ‘너에게 다가온 기회를 붙잡아라(존 그리샴)’, ‘너를 둘러싼 세계에 ‘왜’라고 물어라(조지루카스 & 스티븐 스필버그)‘, ’모두가 예상하는 뻔한 삶을 거부하라(바바라 부시)‘,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껏 즐기는 사람이 되어라(행크 아론)‘,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너의 세계를 고집하라(수전 손택)’. 이런 말씀이 어찌 졸업을 앞둔 새내기들에게만 해당되는 덕담이겠는가. 누구라도 귀담아 들어야할 인생살이의 보편적 진리에 해당하는 주옥같은 표현들일 것이다.
 
이제 내 대학 졸업식을 떠올려본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2월 최루 가스로 오염된 대학 캠퍼스는 완전히 그 분진을 털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인파가 북적대다보니 최루탄 분진이 생명을 얻어 코를 자극한다. 결국 식장을 벗어나 축하객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부랴부랴 캠퍼스를 벗어나버렸다. 평소 별로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총장님의 졸업축사는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시끄러운 인파들의 소음에 묻혀 이미 그마저 소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책 속 연설의 청중이 된 대학 졸업생들이 부럽다. 자신들이 존경할만한 졸업생 선배가,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생의 선배가, 혹은 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지위를 구축한 사회 저명인사가 해주는 인생의 덕담이라면 훨씬 집중해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 십수 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와서야 내가 졸업생이 되어 그들의 덕담을 듣는 감회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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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 나를 움직인 한마디 두 번째 이야기
박원순.장영희.신희섭.김주하 외 지음 / 샘터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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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너무 좋은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이제 어떤 분이 어떤 말을 했는지도 헷갈린다. 그래서 다시 펼쳐든다. 또 보아도 마음을 콕콕 찌르는 금언들이다. 하지만 낱낱이 뜯어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무는 개가 되라’, ‘사랑받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지나니‘ 등등. 누구나 고된 인생살이에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말들이다. 역시 인생의 진리는 지극히 평범한 곳에 있나보다. 단지 그 평범함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온전히 실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의미있는 삶을 위해 굳이 난해한 사상가의 이해되지 않는 언술을 빌릴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언뜻 평범해 보이는 말이 평범하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각각의 말들이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오늘을 있게 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을 빌리느냐에 따라 완연하게 달리 들릴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하지만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단지 글쓴이가 유명인사라서가 아니다. 그것이 철부지 어린 시절 인생의 진로를 잡아준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좌절하고 방황할 때 흔들리지 않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 소중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에 안주하고 싶을 때 더 높은 이상을 향해 정진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글이지만 한편 읽을 때마다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어서다. 잠시의 휴식은 인생의 무게가 실린 말들을 곱씹어 소화하기 위한 명상의 시간이다.  또한 그분들의 인생을 내 삶에 오버랩해서 나를 다그치는 순간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여기 담긴 수많은 말씀을 완전하게 내 것으로 삼을 수 없을 것 같다. 행간의 깊이가 심오하다면 글귀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겠지만 인생의 깊이가 담긴 표현들인지라 마음에 새김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낀 나태함의 때가 말끔히 씻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그분들의 삶이 아닌 내 삶을 관조함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제 나를 움직였던 말을 곰곰이 찾아본다. 특별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평생 수많은 분들에게 수많은 말들을 들어왔을 텐데 막상 이 순간 하나도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건 내가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지 않았던 증거이다. 어느 순간 내가 절실히 무언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단말마적 고통이 없었음이다. 혹은 내 마음을 뒤흔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함이다. 아니 내 스스로가 그 누군가를 수용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함이다. 그 어느 쪽이든 참으로 부끄럽다. 타인의 인생을 임대하여 내 것인 양 살아야하는 내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제 내 것이 아닐망정 내 것으로 깊이 새겨보려 한다. 중량감 넘치는 그 분들의 말씀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하루에 한 구절씩 곱씹어 삼키려 한다. 그래서 그것이 내 영혼의 자양분이 되도록 기억의 창고에 담아 두고 삭히고 삭히려 한다. 오늘 하루 벌써 내 귓가에 쟁쟁 울리는 한 구절이 들어왔다. 이제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넘긴 첫 장에서 본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나를 사로잡는 이해인 님의 시구이다.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은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괜찮아’를 수십 번 외치며 힘을 내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가벼우면 어떠랴. 이제 내가 거듭나려 함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느끼는 나를 향한 부끄러움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나를 다그치는 모든 구절이 내 마음을 꽉 채우는 날 새롭게 변신한 나를 발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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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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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차라리 드러난 거짓은 누구라도 확연히 인식하기에 대처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거짓은 늘 진실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기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인식 주체의 내면에 진실로 가장된 채 둥지를 틀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로 고정된다. 그런 ‘허위의식’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진실로 위장된 거짓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인정된 관습이요, 용인된 문화로 자리 잡는다. 그런 기성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 제도화된 거짓된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허위의식을 밖으로 끌어내 검증받아야 한다. 그것이 ‘거짓된 진실’이 아닌지 세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지금까지 용인해왔던 숨겨진 진실을 캐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매우 긴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마음 속 깊숙이, 혹은 관습화된 우리 문화의 중심부에 튼튼한 뿌리를 꽂고 있어 의도적으로 보려하지 않는 한 ‘인식되지 않은 위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자의 의도가 바로 그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여우의 탈을 쓴 사악한 문명에 이미 기만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눈으론 절대 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치부를 하나하나 발가벗기는 고된 작업을 그는 하려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일이기에 문명의 달콤한 꿀맛에 젖어 있는 인간으로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이미 내가 향유하고 있는 지구 차원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에 애써 외면하려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자는 그것이 설사 메아리 없는 외로운 선각자의 절규에 그칠지라도 그리 하지 않는다면 전 지구의 절멸을 걱정해야 하기에 애써 그 길을 가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데릭 젠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제도화된 증오와 착취를 살핀다. 인류의 오랜 역사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계급 착취의 현장, 세계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인종적 차별, 가부장적 제도가 남성의 의식에 심어준 성(姓)적 편견 등 온갖 거짓된 진실이 인간 의식을 왜곡하고 있는 현장을 누비며, 그 속에 내재된 진실을 가장한 허위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는 인류 문명이 그 이면에 약자들을 착취하는 피의 역사를 감추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우리 시대 약자들의 외마디 비명을 강자들의 잔인한 폭력과 대비해서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범죄자들이 수감된 교도소, 인디언들의 학살현장, 아프리카의 노예시장, 농약과다 사용으로 파괴된 환경 등 인류 문명이 저지른 잔악한 현장을 누비고 있다.

내가 권력의 핵심에 있지 않은 일반 독자라 해서 그의 외침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미 증오와 착취가 제도화된 상태에서는 일반인들마저도 거짓된 진실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제도적 문화가 외적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달콤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구입한 다이아몬드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이미 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나 또한 착취의 역사에 동조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 데릭 젠슨의 세밀한 분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우리 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허위를 속속들이 밝혀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앞가림에만 급급했던 나의 이기적 행동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구의 소수인들에게 이런 수치스런 감정을 심어주려고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맹자가 말했듯이 그런 수치감이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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