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차라리 드러난 거짓은 누구라도 확연히 인식하기에 대처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거짓은 늘 진실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기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인식 주체의 내면에 진실로 가장된 채 둥지를 틀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로 고정된다. 그런 ‘허위의식’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진실로 위장된 거짓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인정된 관습이요, 용인된 문화로 자리 잡는다. 그런 기성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 제도화된 거짓된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허위의식을 밖으로 끌어내 검증받아야 한다. 그것이 ‘거짓된 진실’이 아닌지 세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지금까지 용인해왔던 숨겨진 진실을 캐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매우 긴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마음 속 깊숙이, 혹은 관습화된 우리 문화의 중심부에 튼튼한 뿌리를 꽂고 있어 의도적으로 보려하지 않는 한 ‘인식되지 않은 위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자의 의도가 바로 그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여우의 탈을 쓴 사악한 문명에 이미 기만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눈으론 절대 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치부를 하나하나 발가벗기는 고된 작업을 그는 하려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일이기에 문명의 달콤한 꿀맛에 젖어 있는 인간으로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이미 내가 향유하고 있는 지구 차원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에 애써 외면하려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자는 그것이 설사 메아리 없는 외로운 선각자의 절규에 그칠지라도 그리 하지 않는다면 전 지구의 절멸을 걱정해야 하기에 애써 그 길을 가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데릭 젠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제도화된 증오와 착취를 살핀다. 인류의 오랜 역사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계급 착취의 현장, 세계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인종적 차별, 가부장적 제도가 남성의 의식에 심어준 성(姓)적 편견 등 온갖 거짓된 진실이 인간 의식을 왜곡하고 있는 현장을 누비며, 그 속에 내재된 진실을 가장한 허위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는 인류 문명이 그 이면에 약자들을 착취하는 피의 역사를 감추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우리 시대 약자들의 외마디 비명을 강자들의 잔인한 폭력과 대비해서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범죄자들이 수감된 교도소, 인디언들의 학살현장, 아프리카의 노예시장, 농약과다 사용으로 파괴된 환경 등 인류 문명이 저지른 잔악한 현장을 누비고 있다.

내가 권력의 핵심에 있지 않은 일반 독자라 해서 그의 외침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미 증오와 착취가 제도화된 상태에서는 일반인들마저도 거짓된 진실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제도적 문화가 외적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달콤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구입한 다이아몬드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이미 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나 또한 착취의 역사에 동조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 데릭 젠슨의 세밀한 분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우리 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허위를 속속들이 밝혀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앞가림에만 급급했던 나의 이기적 행동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구의 소수인들에게 이런 수치스런 감정을 심어주려고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맹자가 말했듯이 그런 수치감이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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