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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 근대의 색깔은 빛바랜 흑백사진이다. 심하게 굴곡진 역사가 우리의 마음에 잿빛 구름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늘진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인간 본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뜻과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삶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난의 역사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늘이 짙을수록 빛 또한 더욱 찬란히 빛나듯 그분들의 삶 또한 어둠의 역사를 이겨내는 등불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짙은 그늘에 숨어 생명을 연장하기에 바쁜 부끄러운 인간은 강렬한 그분들의 광채에 감히 눈을 뜨기도 힘들다.
이 책의 주인공 장기려 선생도 내겐 감히 올려다보기 힘들 만큼 찬란한 빛에 둘러싸인 분이었다. 그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시대인 일제치하에서 태어나 조국 독립과 그 이후 극심한 이념 갈등,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모두 겪어온 이력을 지녔다. 이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고수해온 분이다. 그 분의 뜻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 마치 위대한 성자를 연상하듯 선생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굳은 의지를 꺾지 않으셨다.
외과의사인 선생은 직업상 인간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늘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선생은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자신의 사소한 실수가 한 소중한 생명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환자가 어떤 사람이든 그에겐 단지 의사에게 생명을 의탁한 환자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 그에겐 높은 권력을 차지한 사람이라 해서 헐벗고 굶주린 평민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은 한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안타까운 일은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고 죽어가는 경우였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이 다 똑같은데 누구는 부유해서 호화스런 병원에서 대접받고 누구는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냥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그에겐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 그가 의사가 되고자 했던 목적이 바로 그런 가난한 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내정된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서민의 병원을 택한다.
그가 택했던 평양의 기홀 병원은 그의 이상에 상당히 부합했다.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이었고, 무엇보다 지역적 특성상 많은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무리 서민을 대상으로 한 병원이라 해도 이곳마저 찾을 수 없는 빈민촌의 환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병원 업무가 끝나면 남은 시간을 쪼개어 직접 환자를 찾아갔다.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이니 거꾸로 의사가 환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념적 선택이 강요된 사회에서 어느 편이든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단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피아(彼我)의 구분을 초월하고자 노력했던 선생의 높은 이상은 용납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념 속에서 생명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더 높은 이념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찮은 한 생명은 그렇게 전쟁의 도구로 전장에서 쓰러져갈 뿐이다. 선생은 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 앞에서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겪어야 했던 슬픈 역사이기 이전에 선생으로선 삶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직전에서 선생을 살린 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이제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자궁을 박차고 막 나오려하는 새 생명이 선생을 일으켜 세운다. 다 쓰러져가던 가련한 생명은 자신을 부르는 또 다른 생명을 외면하지 않는다. 어쩌면 선생은 그런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위해 너의 생명을 다하라는 숙명적인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는지 모른다. 기적처럼 일어선 선생은 임산부를 병원으로 안내한다. 다른 의사들이 모두 외면한 불쌍한 여인을 막무가내로 병원 응급실로 인도하여 수술을 하게 한다. 생명의 부름에 응하는 선생의 그런 불굴의 의지를 가로막을 병원 관계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선생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오직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데 전념하신 분이다. 오로지 그것이 자신의 삶의 존재 의미였기에 어떤 주변의 압박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물질적 욕망에 도취되어 존재적 의미를 내팽개치는 이 사회에 귀감이 될만한 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