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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영혼의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은 그 무엇보다 내 영혼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것은 독자인 나를 이야기 밖 방관자로 머물지 못하게 강력한 빨판으로 흡수하여 소설 속 주인공에 동화시켜버린다. 주인공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내 심장의 울림이 되고 그의 슬픈 일상사는 나의 눈물 자국으로 번진다. 그래서 답답한 세상사가 암울한 기운을 내뿜어 내 폐부를 아무리 짓눌러도 아름다운 영혼이 교차하는 책을 읽다보면 어떤 악한 기운도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내 영혼의 치료제요, 내 정신의 청량제이다. 새해 들어 나에게 전달된 이 책이 바로 그런 강력한 에너지를 내 영혼에 뿜어주었다. 내 영혼 깊숙이 숨어있던 순수한 기운을 자극하여 외부로 분출시켜 주어 난 무엇보다 행복감에 젖어 이 책을 읽었다.
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두 이야기에 흐르는 외로운 영혼들의 교감은 두 이야기 속에서 동일하게 흘러넘친다. 전편 <흰 기러기>에서는 주인공 필립과 흰 기러기의 교감이 애절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둘은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곱사등이에 왼팔마저 기형적으로 가늘게 굽어있는 필립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아무리 넉넉하고 이해심이 많아도 추한 외모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한적한 늪지대를 사들여 새들과 함께 생활한다. 흰 기러기 역시 저 멀리 북미에서 철따라 날아오르다 폭풍을 만나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외딴 곳으로 오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냥꾼의 총에 맞아 부상까지 입은 흰 기러기는 어린 프리다에게 발견되어 필립에게 오게 된다. 이제 흰 기러기는 어린 프리다와 필립을 연결해주는 인연의 끈 역할을 한다. 철따라 떠나간 흰 기러기가 다시 회귀할 때쯤 필립은 프리다에게 전갈을 보내고, 그럼 프리다는 다시 헤어짐의 계절이 다가올 때까지 매일 필립의 거주지인 낡은 등대에서 함께 생활한다. 외로운 세 영혼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어느 새 그들 마음엔 사랑의 감정이 깊이 스며든다.
후편 <작은 기적>에선 고아 페피노와 그의 당나귀 비올레타의 사랑이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 전쟁으로 천애고아가 된 페피노에겐 유일한 유산으로 당나귀 한 마리가 남겨졌다. 당나귀 비올레타는 가족이나 진배없다. 비올레타는 부모처럼 성실한 노동으로 어린 페피노에게 돈을 벌어주며, 페피노는 엄마처럼 먹이와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잠자리도 편안하도록 돌봐준다. 그런데 비올레타에게 수의사도 고치기 힘든 심각한 병이 찾아온다. 페피노는 연일 야위어가는 비올레타를 위해 교회 안 성 프란시스 납골묘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지만 무시당한다. 페피노는 우여곡절 끝에 교황을 찾는다. 비올레타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작은 기적’을 낳았는지 페피노는 교황의 친서를 얻어 성 프란시스 납골묘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이처럼 두 편의 이야기 속엔 숭고한 사랑의 정신이 철철 넘치고 있다. 그 사랑이 가진 자의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못 가진 자의 나눔에서 오는 것이기에 더욱 심금을 울린다. 누구보다 세상에서 소외된 필립이 흰 기러기를 보살피는 것이나 천애 고아 페피노가 비올레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진실한 사랑이 작은 기적을 낳는다. 사랑은 확신을 심어주고 확신은 무한한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그 에너지는 기적을 낳는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읽는 독자는 그 무한한 에너지에 동화되어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