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족
서하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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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착한가족일까? 착하다는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으로 우리가족은 참 착한가족인것 같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가 서로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이다. <착한가족>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서하진씨의 소설집인 이 책에는 총 8개의 단편소설들이 한데 묶여져있다. 소설집의 제목으로 드러나는 서하진씨가 다루고있는 이 책의 '착한가족'이라는 개념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또한 조금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착하다는 것... 그 것은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또다른 가면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8편에 걸친 소설들에서 우리 자신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가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에서 '희숙'은 아내, 엄마, 주부로서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행한다. 그런데 죽을 병에 걸린 희숙,,, 남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는 묵과한 탓에, 그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고되었던 것은 아닐까. 혹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다른 이들도 나에게 잘 해주겠지 하는 은연중의 보상심리인 약간의 못된 마음때문에 하늘에서 이토록 무서운 벌을 내리신 것일까. '아빠의 사생활'에서 아빠의 불륜을 목격하는 '나'는 단 몇일동안의 아빠의 행동들을 보고, 그동안 아빠가 아주 철저한 가면을 쓴채 이중 생활을 해왔음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착한가족'에서 '그 여자'는 도무지 한 인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하루 동안에 여러모습으로 행동한다. 오전에는 아들때문에 초라한 행색으로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사정을 하러가고, 오후에는 완벽하게 멋있고 당당한 차림으로 남편의 직장에 찾아가 이사에게 쏘아붙이면서 남편의 계획을 통보하고, 저녁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고... 어떤 것이 진짜 '그 여자'의 본모습일까?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에서 'M'은 악성종양으로 인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된 후, 그동안의 오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옛사랑을 찾으러간다. 결국, 그 종양이 생명에 지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신의 인생행로를 바꾸는 기회를 놓치지만 말이다. '인터뷰'에서 '만자'는 또다른 자신의 이름인 '이혜영'으로 작가활동을 하며 자기안의 만자를 죽이고 외부에서는 이혜영으로 완벽하게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철두철미하게 짜여진 대본으로 인터뷰 대상 작가와 인터뷰를 끝마친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의 애완견 미르앞에서 그 가면들을 벗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채, 미르에게 밥을 건네준다. '슈거, 혹은 솔트'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매번 이름을 바꿔 행동하고, 자신의 친구인 K의 남편을 유혹해 결국 K와 그 남편이 헤어지게 만든다.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있는 K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그 행동으로인해 한 가정이 파탄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녀는 자기 내부를 감추는 행동들과 화장 등으로 자신의 현재에 충실히 임한다. '너는 누구인가'의 주인공인 '그 여자'는 자신의 소설의 모든 창작과정을 알고있는 K의 부재로 인해 알수없는 공허감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작가라는 삶과 자신의 평소의 삶을 철저하게 분리하길 원하는 그녀는, 자신이 즐겨찾는 헌책방의 주인이 자신을 작가로 알아보자 불쾌감을 느끼고 어색해한다. 결국 K를 살해하는 꿈마저 꾸는 그녀는 가면안에 자리잡고 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사소한 일'에서 '이영주'는 '신 이사'의 사소한 평소 행동들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여 인터넷에 탄원문을 올린다. 그로인해 전혀 성희롱할 의도가 없던, 그동안 맡은바 모든일에서 열심히 일해온 한 가정의 가장인 '신 이사'는 해고를 당한다.

 

사람은 문명이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점점 더 배우가 되어간다. 말하자면 사람은 남에 대한 존경과 호의, 정숙함과 공평무사의 가면을 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것에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 칸트

 

<착한가족>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특수한 여러 가면들을 쓴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과연 어떤 가면이 진실이고 어떤 가면이 가짜인지 우리는 알수 없다. 정작 연기를 하는 그들 조차도 어떤 모습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지고 우리가 바라는 일들이 우리앞에 펼쳐진다. 결국, 내가 이렇게 생활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 내가 만들어낸 무대에서 내가 펼치는 연기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속의 나와 현실속의 나.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상상과 현실, 그 경계가 존재하기는 하는것인지, 아니면 그 둘은 같은 것인지, 헷갈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럼 이중인격자들도 그 인격들 모두가 다 자신의 얼굴이란 말인가. 고민 끝에 얻어낸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렇게 해라, 이렇게 되어라 하는 주변의 요구때문에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 우리의 모습들... 그 하나하나가 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며, 바로 진실이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여러 행동들을 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은연중에 나 또한 모든 행동들의 대의명분을 '가족'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허나,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가면을 쓴채 행동하는 나의 간사한 모습들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의 원천이 되는 나의 가족... 나에게있어 아빠, 엄마, 내 동생이 나를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들이다. 가면, 연기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것들을 보듬고 감싸안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가면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다 우리자신이고, 그 모습들이 다 우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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