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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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를 야금야금 베어먹고 있는 지금, 내 입에는 침이 고인다. 조건반사이건 무조건반사이건간에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누울때까지 내 입안에는 항상 침이 고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물론 내 입에는 침이 고여있었다. 지금의 내 상황이 책의 제목과 일치하기 때문인지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익숙한 이야기를 듣는양 마음이 편안했다.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될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침이 고인다>는 총 8개의 단편소설들의 모음집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을 때처럼, <외딴방>을 읽었을 때처럼, <도가니>를 읽었을 때처럼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17살. 세상을 많이 살았다고 하기에는 건방지고, 세상을 적게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 나이. 머리가 커질수록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아지고, 세상에 기대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포기하는 습관이 생겨버린,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나. 나는, 나에게도 우리가족에게도 우리사회에도 넘지못할 벽이 있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깨달았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그 점을 아는 것 같다. 총 8개의 단편소설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을 담고있었다. 사회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에서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에 무뎌져 살아가는, 끊임없는 낙방과 압력 속에서 기 한번 못펴고 사는, '방'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나는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교육열이 높으신 부모님과 사범대에 다니는 누나의 영향 때문인지몰라도 나는 미래에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되고싶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맞혀나갈때마다 느낄수 있는 그 희열때문에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문제를 풀고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나와 문제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이런 희열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도움을 필요로하는 학생들을 내 힘으로 도와줄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것 같다. <침이 고인다>에 실린 소설들에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직업세계가 참 잘 나타나있다. 별다른 목표의식 없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각자만의 꿈이 없이 주위의 권유로 안정적인 공무원과 선생님을 선호하는, '꿈'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고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라는 듯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그런데 나는 한없이 우울한 그 모습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위트있는 문체로 그려지고 있어서 왠지모르게 마음이 더 아렸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껌 반쪽을 강요당한 그녀가 힘없이 대꾸했다. 응.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응. 후배가 한없이 투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입에 침이 고여요." (본문 61쪽)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그만큼 가슴이 아픈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일이 딱 한번 있었다.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죽음... 죽음 앞에서 정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그때 나는 깨달았다. 떠나갈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미물까지도, 이 세상에 각자만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나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사춘기의 나는 오늘도 이 해답없는 고민을 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한다. <침이 고인다>에 등장하는 모든 그와 그녀들, 이 세상에서 나고 졌던 모든 그와 그녀들,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그와 그녀들을 생각하니 내 입안에 또다시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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