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 인생의 맛 -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간결한 지혜
벤저민 호프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어릴 적에 곰돌이 푸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통통하고 푸근한 이미지에,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곰돌이 푸. 어찌 보면 조금 모자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더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왠지 너무 잘나고 똑똑하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지만, 곰돌이 푸는 살짝 어리숙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을 함으로써 나의 눈높이에 맞는 친구처럼 나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곰돌이 푸, 인생의 맛'이라는 이 책은, 곰돌이 푸에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들에 관한 일화를 적절한 예를 들어가면서, 도가 사상과 연계하여 풀어주고 있었다.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이 책이 철학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왜 철학과 곰돌이 푸가 같이 엮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푸를 통해서, 저자는 도가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병장수 무병단명'이라는 중국 속담은, 자기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 알고 자기를 돌보는 사람이 자기가 아주 건강하다고 믿고 약한 부분을 무시하는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는 뜻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 자신이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 한계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한계를 인정하면 그것이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나도 저자의 말처럼, 한계와 관련된 그러한 경험들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무언가 말도 안되는 그런 신념들을 가지고 생활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질 수 없기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조금 부족해도 남들보다 더 잘 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무리해서 일을 단행했었다. 그러다보니,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도움을 청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려서 혼자 그 큰 짐들을 짊어져야만 했었다. 즉,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었기에, 한계를 무시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럴수록 더 깊은 고뇌와 절망 속에 빠졌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강인한 척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접했다면, 그러한 실수들을 덜 했을텐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든다.

그리고 저자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일침하고 있었다. 노자는 "두 팔을 벌려야 껴안을 수 있을 만큼 굵은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자라났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다"라는 말을 남겼다. 눈은 내리면 내릴수록 점점 더 오고,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더 커진다. 행복도 그렇고, 불행도 그렇고.. 푸의 이야기를 듣고, 저자의 가르침을 듣고, 노자의 사상을 새겨보니.. 이 세상 이치가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학생 때는 못 느꼈던 감정들을, 직장인이 되어서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 직장 내에서 갈등이 생기고 힘이 드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거야'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곤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헌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굳이 왜 그렇게 나 자신을 비하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곰돌이 푸가,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듯이, 나도 그렇게 나 자신의 모습을 하고 존재하면 되는 것을..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면 되는 것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불행에 더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서양의 캐릭터인 곰돌이 푸와, 동양의 철학인 도가 사상이 저자의 이야기로 함께 다가왔던 '곰돌이 푸, 인생의 맛'. 적절한 순간에, 적합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의미 깊었던 독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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