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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ㅣ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다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르는 모두 추리소설, 꽃이 살인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 시대가 현재가 아닌 1920년대,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나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등나무 향기>. <도라지꽃 피는집>, <오동나무 관>, <흰 연꽃 사찰>, < 회귀천 정사>.1920년대에 쓰여진 소설은 아닌데, 시대적 상황은 과거이다. 따라서 현대의 추리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좀 고리타분 한듯하지만 그래서 애수어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등나무 향기>와 <도라지꽃 피는 집>은 배경이 사창가이다. 아버지에 의해 팔려온 여자들, 병든 남편을 위해 돈을 벌러 온 여자들.. 구구절절 사연이 가득한 여자들이 사는 곳.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등나무 향기>를 읽고,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전혀 살인의 동기가 없으면서 살인을 한 범인.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를 살리려는 이야기가 안타까우면서 아름다웠다. <도라지꽃 피는 집>은 한 소녀의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통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오동나무 관>은 야쿠자 세계의 이야기이다. 조직의 이야기라서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내용이라 공감이 안되는부분이 있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살인사건의 트릭에 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깨버리는 트릭이 일품인 소설이었다.
또 하나의 예측할 수 없는 트릭이 담겨져있는 <흰 연꽃 사찰>. 어린 시절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찾아 가는 과정 속에서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크게 흔드는 엄청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과 그 속에 감춰진 어머니만이 알고 있고, 지키려고 했던 진실이 연꽃을 소재로 사용하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제목 <회귀천 정사>의 '정사(情死)'는 사랑하는 남녀가 뜻을 이루지 못해 동반 자살하는 것을 말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가인 '소노다'는 자신의 연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해 회귀천에서 정사를 하지만, 실패하고 4일후 여관방에서 자살을 하게 된다. 그가 남긴 수천수의 노래들을 되짚어가며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소노다의 발자취를 따라 도쿄와 교토의 여관등지를 찾아가서 그의 노래를 하나씩 소노다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천재적인 기교를 지녔지만 노래에 불어넣을 혼과 경험을 쌓지 못했던 소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하고 벌인 일들, 그로 인해 벌어진 비극의 이야기.
미스터리 장르 답게 예측할 수 없는 허를 찌르는 재미를 주면서, 복선으로 꽃을 사용함으로써 묘한 매력을 지닌 단편 소설들이었다. 그동안의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아름답고 감상적인 문체로 인해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