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언제나 이긴다
안말례 지음 / 마음의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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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언제나 이긴다

안말례

2026

마음의숲




<진심은 언제나 이긴다>은삶과 관계, 일의 태도가 하나의 원리로 수렴되는 과정을 서술적으로 보여주는 책 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보험설계사 안말례의 30년에 걸친 삶이 놓여 있으며, 그 출발점은 연봉 15억이나 상위 0.01%라는 성취가 아니라 우유 판촉 아르바이트와 같은 가장 낮은 자리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시작의 낮음보다 그 이후의 지속과 축적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저자는 숫자로 대표되는 성취를 앞세우기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사람’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고객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태도, 성과를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 관계를 쌓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진심’이며, 책의 제목인 <진심은 언제나 이긴다>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30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 검증된 결론처럼 제시된다.


이 책에서 진심은 추상적인 감정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진심은 행동으로 분해되고, 다시 반복되는 습관으로 전환되며, 결국 사람을 대하는 방식 전체를 구성하는 구조로 자리 잡는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설명되던 것이 점차 경청의 태도, 기다림의 방식, 상대를 대하는 절제된 행동으로 구체화된다. 결국 진심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기술 이전의 원리로 이해된다.


특히 이 책은 영업이라는 직업을 거래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의 구조로 재정의한다. 고객을 설득하여 계약을 성사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뢰를 쌓아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조르지 않고 기다리는 태도’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영업 전략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저자는 초기에 실적을 위해 관계를 서두르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스며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업을 전환하게 된다.


이 책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경청과 태도이다. 말을 많이 하는 능력보다 끝까지 듣는 능력이 중요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힘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더 큰 영향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함은 주도하거나 압도하는 힘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릴 수 있는 절제된 힘으로 재정의된다. 이는 기존의 성과 중심 사고방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관계 자체를 중심에 두는 사고로 이동하게 만든다.


또한 이 책은 성공을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긴 시간 동안의 축적으로 설명한다. 반복되는 거절과 실패, 차 안에서의 눈물, 실적을 위한 조급함과 그로 인한 반성의 경험들이 모두 현재의 원칙으로 연결된다. 결국 성공은 계획된 결과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선택된 태도의 누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진심은 언제나 이긴다>는 바로 이 누적의 시간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특정 직업군에 한정된 기술서가 아니라 삶 전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에세이에 가깝다. 경력 단절 여성이나 새로운 시작을 앞둔 사람, 혹은 오래 일했지만 방향을 다시 점검하려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던진다. 특별한 조건이나 재능이 없더라도 관계를 대하는 태도와 꾸준함이 있다면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진심은 언제나 이긴다>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진심은 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태도이며, 성공은 전략이 아니라 관계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쌓였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뢰라는 형태로 남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진심은언제나이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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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 6가지 우회적 성찰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 외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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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슬라보예 지젝

2026

21세기문화원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단순한 사건이 아닌 하나의 조건이자 구조로 재정의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이해해 온 폭력 개념을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명료하다. 우리는 과연 폭력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혹은 보이는 것만을 폭력으로 오인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폭력은 전쟁·테러·범죄와 같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사건, 즉 ‘주관적 폭력’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지젝은 이러한 통념을 해체하며, 그러한 폭력이 오히려 더 근원적인 ‘객관적 폭력’을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객관적 폭력은 다시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구분되며, 전자는 언어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 스며들고, 후자는 경제·정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한 개념 정리를 넘어 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전환하도록 요구한다. 폭력은 특정 순간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평화’라고 부르는 상태조차 구조적 폭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국면일 수 있다는 통찰은,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이러한 이론적 틀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과 혐오 현상을 해석하는 데에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예컨대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물리적 공격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겉으로는 주관적 폭력의 형태를 띠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경쟁, 배제의 논리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과 타자를 낙인찍는 상징적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는 사회가 이미 내면화하고 있는 폭력의 또 다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대한민국 사회 일부 극우 세력의 과격한 언행과 물리적 충돌 역시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출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행위들은 주관적 폭력으로 가시화되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 변화에 대한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와 세대 갈등, 정체성 위기와 같은 구조적 긴장이 자리한다. 특히 이들은 특정 집단을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통해 상징적 폭력을 강화하며, 이를 스스로 정당한 방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폭력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 구조가 축적해 온 긴장이 외부를 향해 분출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젝이 폭력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을 직접 규정하기보다 ‘우회’라는 전략을 통해, 폭력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관용, 인도주의, 자유주의, 자선—속에 내재한 폭력성을 드러낸다. 이는 폭력을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적 효과로 파악하게 만든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는 착취와 자선을 동시에 수행하는 역설적 존재다. 이때 자선은 착취를 보완하는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 자체가 이미 폭력의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폭력의 근원을 개인의 내면과 일상적 관행의 층위까지 확장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습관, 제도적 무의식,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는 구조적 폭력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때 폭력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 내재된 조건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맞서 싸운다고 믿는 폭력조차, 사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일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치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진다. 지젝은 즉각적인 행동보다 ‘행동하지 않음’의 급진성을 강조하며, 바틀비적 제스처—“나는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를 통해 기존 체제가 강요하는 선택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구조적 폭력의 회로를 교란하는 전략적 중단이자, 또 다른 형태의 저항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조건으로 재위치시킨다. 나아가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통해 기존 질서를 단절하는 해방적 폭력의 가능성까지 사유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폭력을 비난하는 도덕적 안전지대에 머무르지 말고,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중립적 관찰자로 남을 수 없으며, 이미 폭력의 체계에 연루된 존재로서 자기 인식을 갱신하게 된다.


요컨대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사건이 아닌 조건으로, 외부가 아닌 내부로, 예외가 아닌 일상으로 재배치하는 사유의 전환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사유를 통해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폭력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그 내부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폭력 이후의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슬라보예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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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중입니다
김미옥 지음 / 마음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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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그러나 마음은 종종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뒤에 남겨진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달려가느라, 오늘이 이미 충분히 괜찮았다는 사실을 자주 놓친다. 김미옥의 <행복해지는 중입니다>는 바로 그 지점을 조용히 일깨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서 작게 숨 쉬고 있다고.



그래서 문득, 나 역시 행복을 수집해 보기로 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이미 내 하루 속에 존재하던 작고 사소한 순간들에 말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무 일도 없던 날이라고 생각했던 하루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 반짝이는 장면들이 있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길가에 피어 있던 벚꽃 한 송이, 무기력한 오후를 감싸던 햇살 같은 것들. 그것들은 거창하지 않기에 쉽게 지나쳐지지만, 사실은 하루를 견디게 하는 가장 다정한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밀어내려 할수록 더 가까이 달라붙는 것이 걱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걱정은 걱정대로 두고, 행복은 행복대로 두기로. ‘그럴 수 있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걱정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일상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봄에는 벚꽃이 있어 좋았고, 여름에는 푸른 바다가 있어 좋았으며, 가을에는 산책하기 좋은 공기가, 겨울에는 붕어빵의 따뜻함이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라면 한 그릇이 주는 위로가 있었고, 흐릿한 날에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고요가 있었다. 그렇게 계절과 날씨, 그리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순간들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작아지는 날은 찾아온다. 타인의 빛나는 순간들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고, 나의 평범한 하루가 괜히 초라해 보이는 날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과 속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잊은 채 비교에 머무를수록, 삶은 더 흐릿해질 뿐이다. 오히려 시선을 다시 나에게로 돌릴 때, 비로소 지금의 삶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박해서 좋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진실한 고백이다.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고, 작고 잔잔하기에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의 이유로, 해가 뜨는 날에는 햇살의 이유로 우리는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살아낸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도 삶은 전혀 다른 빛으로 다가온다.

책과 글쓰기는 그런 순간들을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흩어져 있던 감정을 차분히 모아주고, 불안의 결을 조금씩 풀어준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다시 괜찮아진다.

꼭 행복의 정점에 서야 좋은 삶인 것은 아니다. 마음에 볕이 들지 않는 날에도 삶은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아낸 태도는 결국 다음 계절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단단한 징검다리가 된다.

행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감정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순간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머물러 있다. 다만 우리가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행복해 지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며...이 책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행복해지는중입니다

#마음세상

#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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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명쾌한 금강경
이정서 지음 / 이른아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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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명쾌한 금강경

이정서

2026

이른아침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금강경을 둘러싼 오랜 난해성(難解性)의 통념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독해는 금강경을 ‘깊으되 어려운 경전’으로 전제하고 접근해왔으나,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이러한 전제가 오히려 후대의 해석과 번역 과정에서 형성된 것임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즉, 문제는 경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언어적·해석학적 층위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데서 논의가 출발한다.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본을 문법적으로 정밀 분석함으로써, 의역(意譯)과 오역(誤譯)의 층위를 제거하고 원문의 논리 구조를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금강경은 더 이상 파편적 문장의 집합이 아니라, 붓다와 수보리(須菩提) 사이에 전개되는 일관된 대화적 사유 체계로 재구성된다.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이 제시하는 독해 방식은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텍스트의 결(結)을 보존하고 흐름을 드러내는 ‘비개입적 번역’에 가깝다.


특히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이 강조하는 바는 불경(佛經)의 본질이 곧 ‘말씀’이라는 점이다. 말은 본래 전달(傳達)과 이해(理解)를 전제로 하며, 이는 붓다가 설법을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고자 했던 의도와도 부합한다. 실제로 금강경 본문에서 수천의 대중이 설법을 듣고 즉각 이해하며 찬탄(讚歎)했다는 서술은, 그 언어가 결코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체계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여, 경전을 다시 ‘들리는 말’로 복원하고자 한다.


또한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과 무아(無我)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일상적 언어로 이해 가능한 사유로 환원한다. 예컨대 “선법은 곧 선법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일 뿐이다(善法 卽非善法 是名善法)”와 같은 역설적 문장은, 기존의 난해한 해설 없이도 문장 구조 자체를 통해 의미가 드러나도록 제시된다. 이는 금강경을 철학적 난문(難文)이 아니라, 평등(平等)과 비집착(非執着)을 설하는 생생한 설법으로 되살리는 성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의 의의는 금강경을 ‘쉽게’ 만든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금강경이 애초부터 이해 가능한 언어였음을 논증하고, 그 위에 덧씌워진 해석의 장벽을 제거했다는 점에 있다.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독자로 하여금 해석을 소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경전과 직접 대면(對面)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점에서 『이토록 명쾌한 금강경』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금강경 이해의 방법론 자체를 갱신하는 하나의 학문적 성과이자, 불교 현대화(現代化)와 대중화(大衆化)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평가될 수 있다.


#이토록명쾌한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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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의 말하기 수업 - 말수가 적어도 인정받는 사람들의 말하기 전략
김해리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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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의 말하기 수업

김해리

2026

비전코리아




말은 종종 크기와 속도의 문제로 오해되지만, 실상 그것은 존재의 깊이와 방향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말수가 적어도,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당신의 한 문장은 충분히 강력하다”는 명제는, 발화의 본질이 양적 과시가 아니라 내면의 응축된 의미에 있음을 환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은 단순한 화술 지침서를 넘어, 내향적 주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하나의 사유 체계로 기능한다.


많은 이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는 기술적 과제를 넘어 신체적·정서적 긴장을 동반하는 사건이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호흡은 얕아지며, 언어는 끝내 발화되지 못한 채 내면에 머문다. 특히 내향적 기질을 지닌 개인에게 말하기란, 외부를 향한 표현 이전에 내부의 과잉된 사유와 감각을 통과해야 하는 이중의 과정이다. 이때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남겨진 하나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통념과 거리를 둔다. 저자는 내향성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내향성, 불안, 예민함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발화를 지연시키는 장애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반응을 섬세하게 읽고 상황의 맥락을 정교하게 파악하는 능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결국 문제는 기질이 아니라, 그 기질을 해석하고 운용하는 방식에 있다.


저자의 서사는 이러한 인식 전환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스스로를 ‘극내향인’이라 밝히는 그는 오랜 시간 불안과 떨림을 안고 살아왔으나, 그것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조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여전히 떨리지만 다만 들키지 않는 기술이 있을 뿐”이라는 고백은, 완전한 극복이라는 환상을 해체하고 불안을 공존의 대상으로 재위치시킨다. 이는 말하기를 ‘두려움의 제거’가 아니라 ‘두려움의 관리’로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이다.


이 책은 말하기를 단순한 화술이 아닌, 몸과 감정, 에너지가 함께 작동하는 총체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특히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떤 방향으로 말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통찰은 내향적 화자에게 중요한 해방감을 제공한다.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오류 없는 문장이 아니라, 그 순간 전달된 맥락과 진심의 흐름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러한 통찰은 개인의 경험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어린 시절부터 말수가 적고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심해왔던 한 개인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발화를 끊임없이 검열하며 위축된 자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침묵이 결함이 아닌 하나의 성향임을 이해하게 되고, 그 성향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을 깨닫는다. 특히 연습 노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자기 이해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결국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이 제시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말하기의 본질은 외향성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으며, 자신의 속도와 리듬을 발견하는 데 있다. 내향인은 느리지만 깊이 사고하고, 한 번 정한 방향을 꾸준히 유지하는 힘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짧을지라도 높은 밀도를 가지며, 때로는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중요한 것은 말의 양이 아니라, 그 말이 향하는 방향이다.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은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는 가능성으로 전환시킨다. 그것은 침묵을 극복하는 서사가 아니라, 침묵을 통과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호흡과 감정, 리듬 속에서 완성된다. 그렇게 길어 올려진 한 문장은, 비로소 세계와 닿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방식이 된다.


#내향인의말하기수업


#비전코리아


#김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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