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 6가지 우회적 성찰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 외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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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폭력

슬라보예 지젝

2026

21세기문화원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단순한 사건이 아닌 하나의 조건이자 구조로 재정의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이해해 온 폭력 개념을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명료하다. 우리는 과연 폭력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혹은 보이는 것만을 폭력으로 오인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폭력은 전쟁·테러·범죄와 같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사건, 즉 ‘주관적 폭력’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지젝은 이러한 통념을 해체하며, 그러한 폭력이 오히려 더 근원적인 ‘객관적 폭력’을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객관적 폭력은 다시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구분되며, 전자는 언어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 스며들고, 후자는 경제·정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한 개념 정리를 넘어 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전환하도록 요구한다. 폭력은 특정 순간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평화’라고 부르는 상태조차 구조적 폭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국면일 수 있다는 통찰은,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이러한 이론적 틀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과 혐오 현상을 해석하는 데에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예컨대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물리적 공격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겉으로는 주관적 폭력의 형태를 띠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경쟁, 배제의 논리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과 타자를 낙인찍는 상징적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는 사회가 이미 내면화하고 있는 폭력의 또 다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대한민국 사회 일부 극우 세력의 과격한 언행과 물리적 충돌 역시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출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행위들은 주관적 폭력으로 가시화되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 변화에 대한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와 세대 갈등, 정체성 위기와 같은 구조적 긴장이 자리한다. 특히 이들은 특정 집단을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통해 상징적 폭력을 강화하며, 이를 스스로 정당한 방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폭력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 구조가 축적해 온 긴장이 외부를 향해 분출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젝이 폭력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을 직접 규정하기보다 ‘우회’라는 전략을 통해, 폭력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관용, 인도주의, 자유주의, 자선—속에 내재한 폭력성을 드러낸다. 이는 폭력을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적 효과로 파악하게 만든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는 착취와 자선을 동시에 수행하는 역설적 존재다. 이때 자선은 착취를 보완하는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 자체가 이미 폭력의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폭력의 근원을 개인의 내면과 일상적 관행의 층위까지 확장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습관, 제도적 무의식,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는 구조적 폭력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때 폭력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 내재된 조건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맞서 싸운다고 믿는 폭력조차, 사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일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치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진다. 지젝은 즉각적인 행동보다 ‘행동하지 않음’의 급진성을 강조하며, 바틀비적 제스처—“나는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를 통해 기존 체제가 강요하는 선택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구조적 폭력의 회로를 교란하는 전략적 중단이자, 또 다른 형태의 저항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조건으로 재위치시킨다. 나아가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통해 기존 질서를 단절하는 해방적 폭력의 가능성까지 사유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폭력을 비난하는 도덕적 안전지대에 머무르지 말고,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중립적 관찰자로 남을 수 없으며, 이미 폭력의 체계에 연루된 존재로서 자기 인식을 갱신하게 된다.


요컨대 <슬라보예 지젝 - 폭력>은 폭력을 사건이 아닌 조건으로, 외부가 아닌 내부로, 예외가 아닌 일상으로 재배치하는 사유의 전환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사유를 통해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폭력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그 내부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폭력 이후의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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