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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 종양내과 수의사의 삶에 스며든 상실 그리고 사랑
르네 알사라프 지음, 박은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평점 :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르네 알사라프
2026알
에이치코리아(RHK)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는 존재가 있을까?
그리고 진정 중요한 것은 아마도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 일까?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계를 인간과 동물의 관계 속에 배치함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환기하는 기록이다. 수십 년간 동물의 암을 치료해온 종양내과 수의사 르네 알사라프가 어느 날 스스로 암 환자가 되면서 이 책의 서사는 역설적 전환을 맞는다. 타자의 고통을 관찰하고 진단하던 치료자가 자신의 육체를 통해 고통을 경험하는 순간, 의사와 환자, 보호자와 피보호자라는 기존의 관계적 위계는 해체된다.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의 핵심은 바로 이 경계의 붕괴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전환에 있다.
이 작품에서 질병은 단순히 제거해야 할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시간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드는 계기다. 인간은 질병을 미래의 상실에 대한 예고로 받아들이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죽음을 미리 경험한다. 반면 동물들은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도 현재의 감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스킷 하나, 산책 한 번, 가족의 곁이라는 구체적이고 소박한 현재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에서 이러한 동물의 태도는 인간의 시간관에 대한 조용한 반론으로 기능한다. 인간에게 시간은 불안과 기억, 예측으로 분절되지만 동물에게 시간은 무엇보다 ‘지금’이라는 현존의 밀도 속에서 지속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동물은 인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되돌려주는 능동적인 타자다. 항암치료로 쇠약해진 저자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벤틀리와 자신의 죽음에 가까워지면서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뉴턴의 모습은 돌봄의 방향을 역전시킨다. 인간은 동물을 치료한다고 믿지만, 정작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는 것은 동물의 존재 방식이다.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가 보여주는 돌봄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서로의 취약성을 감당하는 상호적 관계이며, 사랑은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윤리로 제시된다.
특히 상실에 대한 서술은 이 작품의 감상성을 넘어선다. 반려동물의 죽음 뒤에 남는 죄책감과 후회는 사랑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적 취약성의 표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죽음을 패배로 규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의 연장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의 질이며, 마지막까지 고통받지 않고 삶의 존엄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는 생명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시킨다.

결국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는 인간이 동물을 돌보는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이 동물에게 삶을 다시 배우는 이야기다. 질병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죽음은 삶의 유한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한계 앞에서 동물들이 보여주는 것은 거창한 초월이 아니라 현재를 끝까지 살아내는 정직함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묻는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라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시간에 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사랑과 돌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존재의 윤리에서 찾는 것을 우리는 읽게 되며 이 책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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