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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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대만,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거의 없다. 그저 한때 같은 중국영토에서 살다가 이념이 달라 대만으로 이동해 간 사람들. 그리고 차이나타운이라는 집대성?을 이룬 사람들 정도이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그저 삼국지나 수호지 등 그 시대의 작품들과 아비정전이라든지 좀 유명한 작품들을 읽었을 뿐인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일본소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책이 번역되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 '검은 강'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세상 그 어디를 가도 '사람'은 똑같구나.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욕망'으로 인해 누군가를 해치고,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결국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이 책은 대만을 충격에 빠뜨린 카페 살인 사건, 즉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카페 여종업원이 단골인 노인과 그의 부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다.

언론과 사람들은 돈을 노린 사건이며 노인과 여종업원이 내연관계인 점을 파헤치며 그녀를 '사갈녀'(뱀과 전갈처럼 남에게 해를 가하는 여자를 비유한 말)로 부르며 자극적인 기사와 소문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어쩌면 피해자들은 말이 없기 때문에 타인들로 인해 그들의 삶이 그려지고 분석되어진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가해자도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재판기록과 언론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그녀의 단편적인 삶이고 게다가 그 단편적인 면마저 왜곡된 것일지도 모른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인'을 알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작가는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지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인터뷰 중에서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누군가를 살해하고자 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랬는지, 혹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도 주목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다만 여성작가이다보니 아니면 이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을 촉발시킨 이가 카페 단골손님인 노인이라고 생각한 점(아내가 번 돈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운 점-젊은 여성을 탐한, 게다가 책 뒷부분에서 밝혀지는 진실? 또한 노인에게 불리한 일이 되었다) 때문인지 남성의 시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노인의 아내와 카페 여종업원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쓰여져있다.

감정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져나가고 있다.


책을 덮을 즈음에 이 책 제목 '검은강'을 생각해보았다.

카페 종업원이 매일 만드는 커피의 색일지도 모르고, 그녀가 두 사람을 유기한 탁한 강물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녀의 깊은 가슴 속에 잠겨있는 어린시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누군가 그녀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을 바꾸어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녀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아직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보다 운이 조금 좋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괴물'을 잘 다독거리며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했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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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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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문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방식의 고문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가장 싫어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반에서 누군가가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눈을 감게 하고는 침묵을 한동안 강요하다가 조금씩 우리에게 실토를 하라고 강요했다.

마치 선생님 자신은 범인?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자수하여 광명을 찾아라, 식이었다.

그 시간은 어쩌면 짧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괜시리 죄책감?을 갖고는 손바닥에 땀까지 날 정도였다. 게다가 가장 악랄?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그 한명 때문에 다른 많은 아이들이(그당시에 학생 수는 50-60명 정도였다)집에도 가지 못하고 벌서는 심정으로 가슴을 콩닥거리며 시련?을 견디고 있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사실 선생님은 범인?이 누군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범인?이 손을 들어 자신임을 알려준다고 하자,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다른 아이들 모르게 그 아이를 불러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눈을 감게 한것은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하나도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가?!

참으로 우습게도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는 자신의 실수로 집에 놓고 왔거나 다른 곳에 흘렸거나 그런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면 그 일로 인해 반아이들은 받지도 않아도 될 고문을 받고 스스로 자신이 결백함을 입증해야만 했던 씁쓸한 시간을 보내야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러한 일들을 혹 누군가가 행하고 있다면 말리고 싶다. 때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건 엄연한 고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는 가공의 일본에서 벌어지는 '정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부가 '평화경찰'을 만들어 일본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회에 위험이 될 사람을 미리 색출하여 공개처형-인권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피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호기심과 광기에 휩싸여 공개처형(그것도 단두대)에 흥분하기까지 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집단광기 혹은 믿음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인간성'은 정말로 '악'이 먼저일까, 이런 생각까지도 들 정도였다.-을 한다. 소위 '안전지구'에 선정된 지역에 한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평화경찰이 색출하는 위험이 될 사람은 어떻게 뽑히는가?

누군가가 평화경찰에 신고를 하거나(심지어는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 그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도 있었다)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평화경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평화경찰에 의해 위험인물이 되어 잡혀갔다.

그러면 자신이 위험인물이 아님을 주장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실제로 평화경찰은 그들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평화경찰은 그들이 위험인물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존재이유-위험인물을 제거하는 정의로운 평화경찰-를 뒷받침해주는 '위험인물'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평화경찰은 잡혀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위험인물이 아님을 주장하면 할수록 고문을 강행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너무 슬펐다. 이사카 코타로는 이것이 가상의 일이라고, 소설이라고 썼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얼마전까지도 이런 세계에서 살았다. 아니,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도덕책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학창시절에 아주 짧은 글이 있었다. 배경은 조선시대였는데 한 양반이 한 노비에게 자신의 돈을 훔쳤다며 그 노비를 몰아세웠다. 그 당시에는 노비는 인간취급도 받지 않았기에 양반은 노비를 고문했다. 칼을 채우고, 곤장을 치며 등등. 결국 노비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도둑질을 자백했다. 그러자 양반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고문은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하게 만든다고. 참, 서글펐다. 죄없는 노비의 희생은 그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자신의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문하는 양반을 보며 현실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그렇게 희생당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동물뿐이겠는가, 이 지구 모든 것이 권력과 돈의 실험대상인 것을.)


평화경찰에 잡혀온 사람에게 평화경찰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라고.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떠나지 못하니까 고칠 수 밖에 없다고. 우리가 그 겨울 광장에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이유때문이라고 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평화경찰에 반기를 든 이가 나타났다. 일명 정의의 편. 골프공같은 검은 구슬과 오토바이, 검은 작업복 그리고 목검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한명의 히어로는 어려움에 처한 많은 이들을 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된 자들만이 히어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이 책은 누군가의 입을 빌어 '위선'이라는 말을 꺼낸다.

마치 한겨울 불우이웃을 돕는다면서 라면박스 몇개 들고 가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것과 같다며 그를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아이들을 이용하더라도 라면박스를 기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상황이 있었다.

굶었는지 삐쩍 마른 길고양이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냥 지나치는데 한 사람이 그 고양이에게 참치캔을 내밀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매일 주지도 못할거 아예 안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괜히 고양이한테 기대만 하게 만들잖아."

그러자 고양이에게 참치캔을 내민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오늘 이 고양이는 배가 불러서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고양이라면 기대를 하더라도 오늘 하루 배부른게 좋을 것 같아."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를 위선자라고 부를 것인가.

내가 만약 그 고양이였다면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이 중요한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서 친절이나 도움을 베푼다면 그게 그 누군가가 마지 못해서 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했거나 혹은 자신의 버리지못하는 성격때문에 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 누군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 속에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여기에서

살 것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주 느리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변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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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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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녀의 소설은 '지독하다'는 평이 있다.  

그 평에 동감을 표한다.

그녀의 소설은 정말로 지독하다.


그녀의 대표작 리플리(5부작)를 조금씩 사모으고 있는데 읽고 나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 기대되기도 하고 한동안 리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 여튼 아직 두권밖에 못샀다. ㅜㅜ


열차안의 낯선 승객과 올빼미의 울음 이 두권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 열차안의 낯선 승객은 아직까지도 많은 추리스릴러계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설정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올빼미의 울음은 전혀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끈적거리며 진흙탕에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작품 자체는 읽히기도 잘 읽혔다.

희한하게도 이번 작품도 가독성이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시대배경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1950-6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결국 배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책은 '감정'이 중요한 것이었다. 사랑이든 집착이든 질투든 그 모든 것은 인간의 '감정'이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이리라. '인간'이니까.

올빼미의 울음도 이 책과 비슷하게 '사랑' '집착' '질투' 등의 감정을 다루었다. 거기에다가 '죽음'을 첨부해서 전체적으로 우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세번째로 읽게 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요즘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데이트폭력'(사실 데이트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헤어진 사이인데다가 사귀지도 않은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토커이기도 하다. 그걸 어떻게 하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어란 보이지 않는 올가미와도 같아서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에는 마치 두 사람이 연인인데 어쩌다가 싸우게 되어서 과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범죄를 작은 범죄로 인식하게 된다.)을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는 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은둔형 사람이다.

과학자답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통제함으로써(심지어 마음까지도) 데이비드는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그가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애나벨에 대한 사랑은 망상과 집착으로 변화했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서 사실 데이비드 켈시를 동정하기도 했다. (동정의 여지도 있었다. 초기에 애나벨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데이비드를 더욱더 망상 속으로 빠뜨리지 않았나 한다. 물론 애나벨이 착한 사람이어서 데이비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최선의 상처치료 방법은 확실한 선긋기임을 과거나 현재나 정답임을 왜 모르는가.)

데이비드의 심리와 함께 데이비드를 사랑하고 에피(데이비드가 애나벨에게 집착하듯이 에피 또한 데이비드에게 집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내를 지겨워하면서도 이혼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웨스, 데이비드를 확실히 끊어내지 못하는 애나벨, 그녀의 남편 등 사실 이 책 속의 사람들 또한 데이비드 못지 않게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줘 작가 길리언 플린이 하이스미스 소설이 예측을 불허하기에 사랑한다고 했다. 나 또한 동감하는 바이다.

올빼미의 울음도 예측을 벗어났는데 이번 책 또한 예측을 벗어났다.

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라고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는 가지만 데이비드의 삶을 보았을때 지독하지 않았나 싶다. (희한하게도 그를 옹호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동정하는 내가 있다. 아마도 책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실제 상황이라면 아니, 저 미친넘이 있나 하지 않을까.)


예전에 그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짝사랑은 시작할땐 달콤하지만 끝날땐 쓰다고.

쓰고도 지독한 것이 결코 돌아보지 않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를 죽였습니까, 라는 책을 샀는데 시간을 조금 두고 읽어야겠다. 이 책은 또 얼마나 지독할까라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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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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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범인에게 고한다'는 고집스럽고 우직한 매력적인 경찰 마키시마 후미히코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라면(주로 경찰사회의 알력과 언론을 이용해서 범인을 잡는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범인이 왜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이번 립맨(범인에게 고한다2)은 여전히 머리가 장발인 마키시마 후미히코가 범인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물론 얄미운 상사 소네도 여전히 얄미웠다) 하지만 전작과는 달리 이번 책에는 범인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져있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여전히 낳고 있는 보이스피싱과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기도 하는 납치를 절묘하게 버무린 범죄를 계획한 립맨.

지루해서 범죄를 계획한다는 립맨, 그는 오래전 읽은 만화 '검은사기'를 생각나게 했다.

사실 많은 사기범들은 돈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그랬다. 돈벌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없는 사람 등쳐먹기라고.

그래서일까, 수많은 다단계사기도 서민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하고, 저축은행사태도, 주가조작 사기도, 심지어 보이스피싱도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게다가 가장 평등하고 공정해야 할 법 또한 없는 사람의 편이 아니다. 편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차별하지 말아야하지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깨닫고 말았다.(그러니 십대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10억을 갖게 되는 대신 감옥에 들어가야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80%이상이 감옥에서 몇년 살더라도 돈을 얻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현상은 이 사회가 결국 윤리마저 돈에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주어 솔직히 쇼크다. 하지만 만약에 성인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과연 몇퍼센트가 자신의 윤리적 가치관을 지킬 것인가. 서글픈 현실이다. 게다가 그 선택을 미워하지 못하고 동감한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립맨의 '유괴사업'에 뛰어든 도모와 다케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의 모습들이 겹쳐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젊은애들의 약한 곳을 파고들어 이용한 유령같은 '립맨'을 용서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며 읽어내려갔다. 사실 전작보다 뛰어난 후작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번 '립맨'은 전작을 능가하는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어도 괜찮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을 읽고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게 되는 계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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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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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쯤 온라인의 어떤 모임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몇명이 수원의 회원집에서 모여서 한잔하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회원 한명이 느닷없이 자신이 귀신을 볼 수 있다, 고 이야기를 꺼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사람의 친구인 듯한 사람도 그 이야기에 고개를끄덕였다. 여튼 그래서 그 사람의 경험담을 듣게 되었다. 집안내력인듯 자신의 가족 대부분이 수시로 가위에 눌리며 (게다가 시골고향집은 수맥이 관통하는 곳에 있어서 잘때는 칼을 머리 맡에 두고 잔다고 했다) 자주 공포에 질린다고 했다. 어느날 그 사람은 회사사람들과 단체로 홍콩에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배정받은 방에 호텔키를 꽂고 들어갔을때 왠 여성이 방한가운데 놓여있는 거울(화장대)앞에 앉아 긴 머리를 곱게 빗고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귀신임을 직감적으로 느낀 그 사람은 눈이 안마주치도록 주의를 하고는 짐에 한구석에 놓고는 바로 밖으로 나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디에서 만날 지 모르는 귀신을 볼 때는 언제나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고 한다. 이유는 '화'(이 책에서는 '앙화'라고 한다)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화'를 '전달'한다고 할까? 여튼 다행히도 친구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 둔하게 '화'를 비껴간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비껴가지는 않고 사소한 불행?이 닥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볼펜을 잃어버린다든지,  안경에 금이 간다든지, 양말이 구멍이 난다든지 등등.

나는 기본적으로 저 세상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등등의 이야기들을 믿지는 않는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 피곤하기에 ^^;;) 하지만 내가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튼 대부분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세상은 사실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수많은 오컬트, 초자연적인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라는 말인가.

사실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에 나 또한 수없이 가위에 눌려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심할 경우에는 누군가가 가위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발 밑에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를 다시 방관자모양으로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의식'할 때는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연 그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마인드컨트롤을 위해서 호흡법을 배우고, 자세를 바르게 해서 자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때 이후로 가위는 많이 사라졌고, 힘들거나 불안정할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그 이유 중 하나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음이 아닐까 한다. 그까짓것, 그래 올테면 오라. 뭐 이런식으로. 다행히 둔한 편에 속해서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ㅡㅡ;;;)


하지만 오랜만에 이 책 '괴담의 테이프'를 읽고 잠이 들었는데 슬그머니 '가위'가 덮쳐왔다. 예전처럼 심한 가위는 아니었지만 사실 좀 섬뜩하긴 했다. 옮긴이 현정수 님의 말씀대로 밤에는 읽지 말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포, 호러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게 자는 나였는데 말이다. )

이 책 자체가 소설이긴 하나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이루어져서 그런건지(그저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어떤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책을 덮고는 살짝 등골이 오싹했다.


나를 가장 오싹하게 했던 것은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과 '시체와 잠들지 마라'와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문득 오래전 생각했던 의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실종자의 수는 6만5천명가량이고 그 중에 1만2천명은 찾지 못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33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찾지 못하는 것일까, 찾을 수가 없는 것일까?


새삼 이 세상이 참으로 미스테리함을 깨닫는다.


여름의 끝자락에 미쓰다 신조 '괴담의 테이프'를 추천하고 가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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