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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소설은 '지독하다'는 평이 있다.
그 평에 동감을 표한다.
그녀의 소설은 정말로 지독하다.
그녀의 대표작 리플리(5부작)를 조금씩 사모으고 있는데 읽고 나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 기대되기도 하고 한동안 리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 여튼 아직 두권밖에 못샀다. ㅜㅜ
열차안의 낯선 승객과 올빼미의 울음 이 두권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 열차안의 낯선 승객은 아직까지도 많은 추리스릴러계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설정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올빼미의 울음은 전혀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끈적거리며 진흙탕에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작품 자체는 읽히기도 잘 읽혔다.
희한하게도 이번 작품도 가독성이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시대배경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1950-6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결국 배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책은 '감정'이 중요한 것이었다. 사랑이든 집착이든 질투든 그 모든 것은 인간의 '감정'이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이리라. '인간'이니까.
올빼미의 울음도 이 책과 비슷하게 '사랑' '집착' '질투' 등의 감정을 다루었다. 거기에다가 '죽음'을 첨부해서 전체적으로 우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세번째로 읽게 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요즘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데이트폭력'(사실 데이트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헤어진 사이인데다가 사귀지도 않은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토커이기도 하다. 그걸 어떻게 하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어란 보이지 않는 올가미와도 같아서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에는 마치 두 사람이 연인인데 어쩌다가 싸우게 되어서 과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범죄를 작은 범죄로 인식하게 된다.)을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는 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은둔형 사람이다.
과학자답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통제함으로써(심지어 마음까지도) 데이비드는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그가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애나벨에 대한 사랑은 망상과 집착으로 변화했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서 사실 데이비드 켈시를 동정하기도 했다. (동정의 여지도 있었다. 초기에 애나벨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데이비드를 더욱더 망상 속으로 빠뜨리지 않았나 한다. 물론 애나벨이 착한 사람이어서 데이비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최선의 상처치료 방법은 확실한 선긋기임을 과거나 현재나 정답임을 왜 모르는가.)
데이비드의 심리와 함께 데이비드를 사랑하고 에피(데이비드가 애나벨에게 집착하듯이 에피 또한 데이비드에게 집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내를 지겨워하면서도 이혼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웨스, 데이비드를 확실히 끊어내지 못하는 애나벨, 그녀의 남편 등 사실 이 책 속의 사람들 또한 데이비드 못지 않게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줘 작가 길리언 플린이 하이스미스 소설이 예측을 불허하기에 사랑한다고 했다. 나 또한 동감하는 바이다.
올빼미의 울음도 예측을 벗어났는데 이번 책 또한 예측을 벗어났다.
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라고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는 가지만 데이비드의 삶을 보았을때 지독하지 않았나 싶다. (희한하게도 그를 옹호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동정하는 내가 있다. 아마도 책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실제 상황이라면 아니, 저 미친넘이 있나 하지 않을까.)
예전에 그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짝사랑은 시작할땐 달콤하지만 끝날땐 쓰다고.
쓰고도 지독한 것이 결코 돌아보지 않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를 죽였습니까, 라는 책을 샀는데 시간을 조금 두고 읽어야겠다. 이 책은 또 얼마나 지독할까라며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