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아르테 오리지널 6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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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소세키의 풀베개 서두 중에서/p62 신의 카르테1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점점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정말 너무 아프지 않으면 그저 하루하루 견뎌보거나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거나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차피 병원에 가도 많은 환자들때문에 한참을 기다려야만 하고(참 재수없게도 점심시간에 걸리면 최소 3시간 이상은 기다려야만 한다.) 그 오랜 기다림 뒤에 진찰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처방해준 약은 너무나 독해 하루종일 멍하니 있어야만 하거나 잠만 자게 만든다. 그렇다고 하루만에 낫지도 않는다. 결국 병원안가고 버티나 병원가고 버티나 그게 그거여서 정말 왠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이가 더 들거나, 혹은 큰 병이 생겨서 병원 신세를 어쩔 수 없이 지게 될 경우 난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선택해야할까?

내가 아는 병원과 의사 중에는 신의 카르테에 나오는 구리하라 이치토 선생도 없는데 말이다. ㅜㅜ


신의 카르테는 예전에 번역되어서 나온 작품이 다시 개정판으로 나온 작품이다. 총 4권짜리로 일본판 종합병원 같다는 느낌을 가졌다.

물론 우선 1권만 읽은 상태이긴 하지만.

치유계 선생 구리하라 이치토와 그의 피곤을 저멀리 날려버리는 사랑스럽고 강하고 현명한 아내와 곰같은 친구와 너구리선생, 여우선생, 그리고 열일하시는 간호사들까지 모두 이상적인? 병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 재정난과 인력난에 허덕여 피곤의 연속이겠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치유와 구원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랑'으로.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으로 마법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태어난 그 발밑 흙덩이 아래 묻혀 있는게 아닐까?

나에게 그것은 최첨단 의료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아즈미씨 같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나아가 아내와 함께 이 발걸음을 계속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처럼, 이전부터 결론은 줄곧 거기 있었던 것이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일수록 멈춰서서 발밑을 향해 쇠망치를 휘두르면 된다. 그러면 자연히 거기서부터 소중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그런 자명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어느새 발밑의 보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거나,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옳다고 퍼뜨리는 세상이 된 것일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방황하고 고민할 때야말로 멈춰서야 한다.

강을 막고 산을 깎아 돌진하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다. 여기저기 묻혀 있는 소중한 것들을 정성껏 파내어 쌓는 것 또한 인생이다.]

                                                                           -p252~253 신의 카르테1


그냥 전문 기술자인 의사가 아니라 인의를 아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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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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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 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p 154


2월에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팀이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급작스럽게 단일팀이 결정된거라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뭐 그건 둘째치고 과연 제대로 경기나 하겠나, 뭐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낯선? 선수들과 함께 팀웍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팀 입장에서는 뜨악, 하지 않았을까? (물론 웃기게도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정치권에서 오히려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했던 건 역시나 블랙코미디감이었고) 게다가 왠지 모르게 우리 모두는 많은 시간 레드콤플렉스에 걸린 감기환자처럼 불쑥 나타나서 합류한 낯선 그들을 어색해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감독과 귀화한 외국인 선수는 낯설어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엎어버린 순간이 있다.

첫 골의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친구를 만난 듯이 그렇게 낯섬을 무너뜨리고 그저 기쁨으로 그들을 껴안았다.

비록 1승도 하지 못한채 경기는 끝났다. 그리고 북한 선수들과 우리 선수들이 울면서 헤어질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그저 선수로서 그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얼마나 잘못 판단했는지를 깨달았다.

스포츠는 단지 그저 스포츠인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 스포츠는 많이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것은 사실이다. 모두 돈에 얽혀있고, 스포츠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추악함과 비리로 얼룩져있는지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나도 포함해서)이 스포츠를 사랑한다. 왜 스포츠를 사랑하냐고 묻지 말아주길 바란다.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면 알 수 있을테니까.)



'베어타운'은 스러져가는 마을에 유일한 희망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에 관한 이야기이다. 혹은 한 소녀,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자 소녀들,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또한 우리 이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론 어리석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는 그런 어른들과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두들 알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은 결국 어른들의 잘못된 거울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도대체 좋은, 훌륭한, 멋있는, 올바른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이 상처받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밖에 모르는 바보들이고 어른들이 하라면 하는 바보들이고, 약한 것?들에 잔인한 법이고 징징대고 떼쓰는 대장들이다. 하지만 그 속엔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겁쟁이들이 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그 어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모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베어타운의 아이들도 그러하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어른들은 어린아이보다 못하고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른을 뛰어넘는다.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천가지 소원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딱 하나로 바뀐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최대한 특별하게 자라주길 꿈꾸지만 병에 걸리면 모든게 평범해지길 바라는 것으로 갑자기 소원이 바뀐다. 이삭이 세상을 떠난 뒤로 몇 년 동안 미라와 페테르는 웃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찢는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들은 행복을 느낄 때 수치심의 습격을 당하고, 아이가 떠났을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게 아이에 대한 배신일지 궁금해진다. 슬퍼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게 상실의 가장 끔찍한 부작용이다. 장례식 이후에 어떻게 해야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무너진 가족을 재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깨져버린 삶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엔 무엇을 바라게 되는가 하면 행복한 하루를 바라게 된다. 딱 하루만이라도 행복한 날을. 몇 시간만이라도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p 256~257


나는 오랫동안 세월호 후유증을 앓았다. 아직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세월호는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말도 못할 것이다.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웃으며 물을지도 모른다.

네 가족 일도 아니잖아?라고 말이다.

그 혹자는 바보다. 나의 가족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나라의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이고, 누군가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월호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죽었는데 아주 멀쩡히 웃더라?!' 라는 말을 들었다는 세월호 유가족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웃지도, 울지도, 욕하지도, 싸우지도 못한다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공인아닌 공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위의 말이 너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정말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루만이라도 세월호 이전의 그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 이 시간에 살아 있고, 살아내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로 알게 된 프레드릭 배크만을 알게 되었다.

영화예고편을 보고는 바로 원작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사서 읽었다. (영화는 아직 안보았다) 읽으면서 맥주 한 잔을 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참, 이상하게도 무지 슬픈 장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보같이 울었더랬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 술기운때문이었어. 갑자기 울어버린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베어타운'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오자 이제 더이상 변명할 수가 없었다. (술도 안마셨건만 ㅜㅜ)

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가슴을 치는 뭔가를 아는 작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모든 상처받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줘서, 살아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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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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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건을 보면서 박창진 사무장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때 그 누구도 동료들이 진실을 얘기해 주질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조직내에서 버티는 모습을 보여 주어서 이번에 다시 사건이 ...났을때 1,000명의 박창진이 나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모든걸 잊고 그냥 주저 앉는다면 앞으로 검찰이 달라지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하구요. 검사라는 사람도 본인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서 그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 이후에 어떤 피해자가 앞으로 나올 수 있겠는지.

검찰은 돌아 올 생각 하지 말아라 라고 저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지만... 제가 어느 정도 힘을 내서 진실을 말하고 버티고 있으면 내부에 겁을 먹고 공포에 질려 있는 검사들도 진실을 얘기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서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 서지현 검사의 말 중에서 발췌


어렸을 적에 이웃에 남편에게 맞고 사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하지만 주위 어른들은 그 아주머니를 감싸주거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무 잘못도 없이 맞는 아주머니를 불쌍하게 여기기는 커녕 남편의 말(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줬다, 밥을 늦게 줬다, 아이들을 버릇없게 키운다, 바가지를 긁었다 등등)을 전적으로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수근거리며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 누군가가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래, 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래, 말투가 싸구려?여서 그래, 그냥 생김새가 그래 등등.

남편이 바람을 피고 가정을 파탄을 내도, 오히려 아내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상대 여성을 탓하거나 자신을 탓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을 욕했다. 아내의 행동?이 바람피울 만하다고 남편을 편들었고, 유부남인지 몰랐던 상대방 여성을 뻔뻔스런 밝히는 여자로 만들었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숨어야 하며 죄책감을 가져야 하며, 부끄러워해야 하며, 평생 그 사실을 마음 속에 꽁꽁 숨겨야 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을까?


공포영화 '여고괴담1'을 보면 전교 1등인 아이의 목이나 어깨 등을 남자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은밀한 손길로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가 나온 뒤 많은 사람들이 정말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그 남선생이었다고 이야기했었다. (귀신이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을 행하진 않을테니)

그 영화 속에서도 학생들은 선생의 추악함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선생의 추악함을 알고 있을 동료 선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고괴담이 나온지도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 때와 달라졌을까?


어렸을 적에 이웃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남자아이는 여름이 되면 런닝만 입고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고추를 덜렁덜렁 흔들면서 뛰어다녀도 어른들은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아이의 고추를 품평하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에도 팬티를 입고 치마를 입고 있었다. 왜일까? 왜 그 둘은 다르게 입어야만 했을까?

여자아이들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을 항상 깨끗한 유리병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고, 다루어야한다고 배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가정시간(80년대에는 여자아이들은 가정가사를 남자아이들은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같이 배운다고 들었다.)에 아직 가슴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브레지어를 착용해야했다. 안하면 점수가 깎이거나 손바닥을 맞았다.(어떻게 브레지어를 착용했는지 검사하는가하면 선생이 여자아이들의 등 뒤를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걸리는 것이 있나 없나로 검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가사시간에 이루어지는 성교육(그때에 남자아이들은 기술시간이었는데 그애들은 성교육을 받지 않았다. 우습지 않은가?)을 받았는데 내용은 생리에 관한 이야기와 임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임신도 요즘처럼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았다. 여선생이어서 그런건지 어떤건지 모르지만 그 여선생도 결국 같은 여성이라도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그 시대에는 여성에게 금기시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고등학교때에도) 배운 적이 없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내거나 책을 보거나 뭐 그랬다. 그러다보니 성교육의 내용이라는 것이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고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여자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뭐 그럴수도 있다. 자신의 반려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인생은 이리 저리 바뀌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용이 가관이었다. 고등학생인 여자아이가 우연찮게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섹스를 했는데 덜컥 임신이 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나몰라라 도망치고(우습게도 자신의 아이인 것을 어떻게 믿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여자가 동정녀 마리아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아이는 최대한 임신사실을 감추다가(복대를 하고) 출산할때쯤 임신사실을 들킨다. 학교는 퇴학당하고 부모에게도 외면당하며 결국 태어난 아이는 입양보내고 피폐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과연 성교육비디오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비디오를 틀어주며 성교육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감추어야했다. 자신의 몸도, 욕망도. 성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감추어야했다. 성은 남성들의 것이었다. 남성들은 겉으로 드러냈다. 여자아이들의 외모를 점수로 평가하며 자신과 사귀었다가 헤어진 여친과의 성생활도 친구들과 공유했다. 반면 헤어진 여친은 아이들 사이에서 '걸레'라며 손가락질을 당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지? 무엇부터 잘못된 거지? 무엇을 잘못한 거지?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 그럼 그는 무엇일까? 그는 그 어린 양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그 어린 양들을 제일 좋아하는 절벽이었다.]

                                                                  -p 123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상상력도 없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와 젊고 예쁜 불륜녀, 눈물을 흘리는 조강지처의 조합은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황금시간대 막장드라마 속 스토리로 치부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걸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작디작은 평화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자신을 '루저'라고 칭하는 시대에 진정한 루저인 여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고통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람들은 작은 행복을 누리며 입으로는 작은 고통을 외치고 있다. 누군가이 적나라한 고통이 눈앞에 다가오면 그들의 안락함은 비루해지고 고통은 가볍게 보인다.

줄줄이 달린 댓글이 서슬 퍼런 칼이 되어 그녀를 난도질했다. 죄는 선생님의 것이지만 그녀의 몸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p 282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저자 린이한의 자전소설이라 한다.

읽는 내내 가슴 속에 불덩이를 삼킨 듯한 체기를 느꼈다.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린이한이자 팡쓰치, 그녀가 가야만 했던 길이 너무나 외로워서, 그 길에 아무도 없어서 그래서 그녀가 기어코 아픔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녀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에 그녀는 그것을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해도 그렇게 찬란하게 빛났던 팡쓰치의 13살 어느날 그녀의 아픈 몸짓을 누구 하나라도 알아챘더라면, 누구 하나라도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졌더라면...

혹은 팡쓰치가 자신의 아픔 속에 머물러있지 않고 모든 것을 토해냈더라면, 아주 작게라도 말이다. (우리의 성교육은 '말하는'것부터 배워야만 한다.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싫으면 싫다고... 그리고 그것을 거짓이 아니라 그 말 그대로 '참'이라고.)


우리가 내가 미투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이 세상 수많은 팡쓰치에게 우리는 말해야 한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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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류승연 지음 / 푸른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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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곳에도 동네 바보형이 있었다. 사시사철 런닝과 팬티만 입고서 이 거리 저 거리를 왔다갔다 하던 형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괴성을 지르며 혼자서 신나서 뛰어다녔던 형. 그 당시(1980년대)에는 '발달장애'라는 말이 없었다.(물론 학술적으로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발달장애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저 모자른 형, '바보'라고 명칭하며 그 형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자신과 다른 이상한? 형이라고 생각하며.


[장애인,

어감 자체가 무겁고 왠지 회피하고 싶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들 마음 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란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왕자들이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기를. 지구 적응에 실패해 '나홀로 행성'안에 갇혀 버리거나 우주로 떠나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되도록 지구인들이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봐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p 13


유명한 사극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이 자신의 손자가 한센병 환자에게 죽임을 당한다(그 당시에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그러자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환자를 죽이는데 그 후 큰 후회를 하며 이렇게 되뇌인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뜨거운 붉은 피를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취급을 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은 장애, 비장애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어떠한 기준도 가지지 않고 상대방을 대한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그 기준이 생기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모두 어른들, 언론 등이 세워준 잘못된 기준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에 왼손잡이들은 어른들에게 많이 혼났다. 기어코 아이들을 오른손잡이로 교정하기 위해 때리기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지금은 오히려 왼손잡이들이 두뇌발달에 더 좋다며 권장하는 꼬라지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 양손잡이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ㅡㅡ) 지금도 왼손잡이용 가위를 쉽게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만큼 왼손잡이를 위한 물건들이 상용화되어있지 않다. (후배중에 왼손잡이가 있는데 학교 다닐때 참으로 힘들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왼손잡이인 사람도 일상적인 생활에서 어려움이 많은데 장애인들은 얼마나 힘들것인가, 말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이야기하지 말자.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짧게 스쳐간 불쌍한 '타인'이 아니다. 언제고 내가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어했던 장애 이해 교육의 핵심이다.]

-p 126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차별받아야 할 일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장애인 특수 학교를 세우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아동 학부모들을 무슨 원수대하듯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그들 앞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으며 호소하는 학부모들에게도 화가 났다. 자기 자식 귀한줄 알면 다른 사람 자식 귀한줄도 알아야하는데 그놈의 돈, 돈, 돈.... 배우려고 하는 것이 죄인가?! 우리가 수없이 내고 있는 세금들-과자 하나 먹는데도 세금이 붙는다-은 세상을 좀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아름답게 만들어달라고-개인적으로 그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하는데- 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반항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둘째 아들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완전히 사랑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장애인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외계인보듯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몹쓸 병 걸린 환자 보듯이 하지 말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아달라고.


지금이라면 어렸을 적 보았던 그 동네 형에게 '안녕'하고 인사라도 할 텐데, 다른 아이들과 같이 그 형이 신나서 '우캬캬'할때 웃으며 박수라도 쳐줬을텐데. 우리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을 배우지 못했다.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가장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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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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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암보스는 스페인어로 '양쪽의' '두 사람' 이라는 뜻이다.

이책은

한 마디로 재밌다.

소재도 독특했고(사실 도플갱어의 이야기인줄 알았었다), 사건을 끝까지 긴장감있게 끌고가는 것도 좋았다. 물론 정반대의 캐릭터 또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형사 캐릭터는 사실 너무 진부한 만담개그커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캐미 또한 좋지 않았나 싶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했다.

 

어느날 자신의 몸이 남의 몸으로 바뀌었다면?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자 이한나와 소설가 강유진은 같은 날 죽음?에 처하게 되는데 우여곡절끝에 살아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데.

누구도 믿어주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단 두 사람(서로 바뀐 몸을 가진 두 사람)만은 진실을 안다.

이한나와 강유진은 서로의 몸으로 1년간 서로의 삶을 바꾸어 살아가기로 한다(1년이 되는날 서로의 몸이 다시 제자리로 찾아갈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강유진의 몸을 한 이한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다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거대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이한나와 강유진의 삶은 혼란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자신의 몸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 수업시간에서 토론을 했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있는데 갑자기 병들어서 죽게 되었다. 그러자 그 철학자의 지성이 너무 안타까웠던 친구들(정치가, 성직자, 과학자 등)이 뇌이식수술을 권하지만 철학자는 논리적으로 뇌는 자신의 것이지만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생각이 있었다.

과연 인간의 마음은 '머리'와 '가슴' 중 어느 곳에 있을까?

지극히 과학적으로 따지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시하고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뇌'를 가진 머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은 '머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예를 들어 살인자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점차 성격이 변했다고들 한다. (근거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도 이한나는 영혼(여기에서는 생각하는 주체-뇌라고 하자)은 키크고 마른 이한나이지만 몸은 키작고 뚱뚱한(백킬로그램에 육박한) 강유진이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냉장고를 뒤져 폭식을 하고 평소에 먹지 않았던 것들에 맛있어한다. 그렇다면 과연 몸은 전혀 영혼에 관여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가 흔히 '습관'이라고 이야기할 때에는 그만큼 몸이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배인 행동이다.

만약 완전한 골초인 사람이 갑자기 몸이 뒤바뀌었는데 그 몸의 주인은 원래 흡연을 못하는 사람이거나 흡연을 안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될까? 골초인 사람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려고 하겠지만 과연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을까?

물론 알 수 없다.

이러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뇌이식에 성공했다는 사례도 볼 수 없고.


여튼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라지만 만약 더 긴 시간을 이한나와 강유진이 서로의 몸이 뒤바뀐 채로 살아간다면 과연 이 둘은 서로를 어느 순간 구분할 수 있을까?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주변에 적응을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잘한다.- 물론 각자의 나름이겠지만- 사투리만 쓰는 도시에 가면 표준어를 썼던 사람도 금새 사투리에 물들듯이)


"그 뒤편, 어둠 속에 서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진짜로, 나는 들러리인가?"

이한나는 거울 속에 비친 강유진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이한나도, 강유진도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억'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니.


-덤으로 예전에 '전설의 고향'에서 이름이 같은 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가난한 농부였고, 한 사람은 부자집 양반이었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부자집 양반을 데려간다는 것이 잘못해서 이름이 같은 가난한 농부를 데려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옥황상제가 다시 지상으로 가난한 농부를 보냈으나 이미 가난한 농부의 몸은 무덤에 묻혔다. 할 수 없이 아직 땅에 묻히지 않은 부자집 양반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 가난한 농부. 그 가난한 농부는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어여쁜 부인이 있어도 죽을때까지 가난했던 자신의 삶을 그리워한다.

아무리 지금 세상이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다는 세상이지만 나는 돈이 억수로 많은 이건희의 삶이 부럽지 않다. (물론 돈은 부럽다. ㅋㅋㅋ 책을 맘껏 사볼 수 있는 돈이면 충분한데 말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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