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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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 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p 154


2월에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팀이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급작스럽게 단일팀이 결정된거라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뭐 그건 둘째치고 과연 제대로 경기나 하겠나, 뭐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낯선? 선수들과 함께 팀웍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팀 입장에서는 뜨악, 하지 않았을까? (물론 웃기게도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정치권에서 오히려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했던 건 역시나 블랙코미디감이었고) 게다가 왠지 모르게 우리 모두는 많은 시간 레드콤플렉스에 걸린 감기환자처럼 불쑥 나타나서 합류한 낯선 그들을 어색해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감독과 귀화한 외국인 선수는 낯설어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엎어버린 순간이 있다.

첫 골의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친구를 만난 듯이 그렇게 낯섬을 무너뜨리고 그저 기쁨으로 그들을 껴안았다.

비록 1승도 하지 못한채 경기는 끝났다. 그리고 북한 선수들과 우리 선수들이 울면서 헤어질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그저 선수로서 그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얼마나 잘못 판단했는지를 깨달았다.

스포츠는 단지 그저 스포츠인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 스포츠는 많이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것은 사실이다. 모두 돈에 얽혀있고, 스포츠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추악함과 비리로 얼룩져있는지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나도 포함해서)이 스포츠를 사랑한다. 왜 스포츠를 사랑하냐고 묻지 말아주길 바란다.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면 알 수 있을테니까.)



'베어타운'은 스러져가는 마을에 유일한 희망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에 관한 이야기이다. 혹은 한 소녀,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자 소녀들,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또한 우리 이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론 어리석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는 그런 어른들과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두들 알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은 결국 어른들의 잘못된 거울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도대체 좋은, 훌륭한, 멋있는, 올바른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이 상처받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밖에 모르는 바보들이고 어른들이 하라면 하는 바보들이고, 약한 것?들에 잔인한 법이고 징징대고 떼쓰는 대장들이다. 하지만 그 속엔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겁쟁이들이 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그 어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모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베어타운의 아이들도 그러하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어른들은 어린아이보다 못하고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른을 뛰어넘는다.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천가지 소원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딱 하나로 바뀐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최대한 특별하게 자라주길 꿈꾸지만 병에 걸리면 모든게 평범해지길 바라는 것으로 갑자기 소원이 바뀐다. 이삭이 세상을 떠난 뒤로 몇 년 동안 미라와 페테르는 웃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찢는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들은 행복을 느낄 때 수치심의 습격을 당하고, 아이가 떠났을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게 아이에 대한 배신일지 궁금해진다. 슬퍼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게 상실의 가장 끔찍한 부작용이다. 장례식 이후에 어떻게 해야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무너진 가족을 재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깨져버린 삶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엔 무엇을 바라게 되는가 하면 행복한 하루를 바라게 된다. 딱 하루만이라도 행복한 날을. 몇 시간만이라도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p 256~257


나는 오랫동안 세월호 후유증을 앓았다. 아직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세월호는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말도 못할 것이다.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웃으며 물을지도 모른다.

네 가족 일도 아니잖아?라고 말이다.

그 혹자는 바보다. 나의 가족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나라의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이고, 누군가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월호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죽었는데 아주 멀쩡히 웃더라?!' 라는 말을 들었다는 세월호 유가족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웃지도, 울지도, 욕하지도, 싸우지도 못한다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공인아닌 공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위의 말이 너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정말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루만이라도 세월호 이전의 그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 이 시간에 살아 있고, 살아내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로 알게 된 프레드릭 배크만을 알게 되었다.

영화예고편을 보고는 바로 원작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사서 읽었다. (영화는 아직 안보았다) 읽으면서 맥주 한 잔을 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참, 이상하게도 무지 슬픈 장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보같이 울었더랬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 술기운때문이었어. 갑자기 울어버린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베어타운'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오자 이제 더이상 변명할 수가 없었다. (술도 안마셨건만 ㅜㅜ)

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가슴을 치는 뭔가를 아는 작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모든 상처받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줘서, 살아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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