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잊혀진 소년

작가
오타 아이
출판
예문아카이브
발매
2018.02.1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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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범죄자'를 흥미롭게 읽어서 이번에 '잊혀진 소년'도 내쳐 읽게 되었다.

사실 '범죄자'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고 묵직했지만 이번 '잊혀진 소년'도 '원죄'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고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 (예전에 미국에서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하기까지 했으니...ㅜ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에 '재심'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여전히 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여튼 읽는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읽은 후에도 여운이 너무 오래 갔다.

(일미를 처음 접한 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다. 그 당시 제목은 '인생을 훔친 여자'였는데 나중에 '화차'로 바뀜. 그 뒤에 읽게 된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었다. 이  두 책으로 인해 내가 '일미'를 접하고 지금까지도 일미를 애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쩌면 이상한 곳에서 감정이 울컥하는 면이 있는데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이시가미?가 감옥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여인이 자백을 하는 장면에 절규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시가미가 열심히 설계해 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졌기 때문인 듯하다. 이번에 '잊혀진 소년'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비극은 한 가족을 모두 파괴해야만 했는지... )


열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단 한명의 억울한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는 법의 원칙.

과연 우리는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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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라이즈 아르테 미스터리 16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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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한번 시작하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조셉은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아내의 차를 발견하고는 따라가는데 아내는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 베스의 남편인 벤을 호텔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 윌리엄때문에 차마 앞에 나서지 못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아내를 기다리는데 아내는 조셉의 부름을 못듣고 차를 타고 가버리고 조셉은 뒤늦게 나온 벤에게 따져묻는다. 그러다 실랑이가 되어 조셉은 벤을 밀치는데 그만 벤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식을 잃는다. 그 순간 아들 윌리엄의 천식이 발작하고 조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벤을 방치한 채로 윌리엄의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간다. 겨우 진정이 된 윌리엄을 보고 호텔에 다시 가보았지만 주차장엔 벤의 차도, 벤도, 벤이 흘린 피도 깜쪽같이 사라지고 없는데, 과연 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벤은 실종되고, 아내의 거짓말은 늘어나고, 과연 조셉은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소중한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소재로 쓰이는 '불륜'을 이 책에서는 '거짓말'의 재료로 쓰인다.
예전에 연인이었던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바람을 피우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용서하고 받아들여줄 것이냐, 아니면 헤어질 것이냐, 며 물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이 질문은 상당히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믿음'을 바탕에 깔고서 유지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믿음을 저버린 상태에서 뭘 용서하고 뭘 받아들여준다는 말인가.
설령 상대방의 모든 과오?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준다고 해도 그 순간부터는 '의심'이라는 지옥문을 여는 것이다.
조금만 무언가가 달라져도 아, 이 사람이 또다시 나를 기만하는 거 아닌가, 또 다른 사람이 있는거 아닌가, 하며 끊임없이 상대방을 추궁하고, 의심하며 자신을 정신적으로 학대할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는 육감, 그 육감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신비하게도 좋은 일에는 쓸모가 없지만 나쁜 일에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조셉은 어쩌면 아내의 차량이 테니스코트(그날은 테니스를 치러가는 날이었다)가 아니라 호텔로 향하는 그 순간부터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아내의 거짓말(과연 조셉은 그 거짓말이 진짜라고 정말 믿었을까?)을 믿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유지하고 싶은 소중한 '가족'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조셉은 '진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유지'가 중요했을 뿐.
과연 조셉은 유지할 수 있을까?
(마지막 반전은 좀 충격적이었다. 역시나 거짓말같은 결말... ^^;;; 예상했던 범인이 범인이 아니었을뿐. ㅜㅜ)

이 책 '리얼라이즈'는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 '진짜'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니까.
우리가 결코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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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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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드디어 읽었다. ^^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과 더불어 '오만과 편견'은 워낙 유명해서 영화화도 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읽어야지, 읽어봐야지, 라고 했지만 (그렇게 생각만 한 것도 십여년의 시간이 지난듯 ㅜㅜ)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음, 약간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거나 그런거는 아니다. 물론 이 책이 감동을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 시대에 여성이 그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지금의 여성이라면 뭐, 이런 개뼉다구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라며 문을 박차고 나갈 일들이 많았던 시대였다.(우리나라도 그 시대에-18~19세기- 여성의 독립이나 연애, 결혼이 얼마나 억압적이었던가. 심지어 성종시대에는 이혼이나 재혼이 용납되지 않았고(자신들 또한-왕이나 귀족- 같은 규율을 지켰으면 말을 안하겠지만 자기들은 축첩에 이유도 없이 아내를 내쫓고 노비를 죽여도 어떠한 벌도 받지 않았던 특권으로 가득찼으니 얼마나 모순적인 규율인가), 신분차이도 극복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서양시대가 나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재산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그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p 9 중에서


이런 시대에는 나이 찬 아가씨들은 무도회에서 남자들과의 만남을 가져서 연애하거나 결혼을 한다. 그 시대나 이 시대나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이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부유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시대나 그 시대나 자식은 부모마음대로 할 수 없는 법.

이 책 오만과 편견은 딸 다섯을 키우고 있는 베넷 가 근처에 대저택 네더필드에 부유하고 잘생기고 사교성 좋은 빙리가 여동생들과 친구 다아시(이분도 잘생기고 빙리보다 부유하고)를 이끌고 이사?(어쩌면 지금 시대의 말로 하면 별장을 구입한 것 같다)와서 그들과 베넷 가의 첫째 제인과 둘째 엘리자베스와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이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책 뒷표지 중에서 발췌


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사랑을 하는가.

사실 성격적으로 오만하기만 하다면 아무리 '사랑'이라고 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대답은 '예스'다.

어렸을적(20대까지 ^^;;)에는 오만과 자만, 편견, 선입견 등 이런 것으로 똘똘뭉친 사람들은 변할 수 없다고 보았고, 나 또한 나 자신의 성격을 누군가가 변화시킬 수 없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도 받으며 살아가면서 어떠한 콘크리트같은 성격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위에서도 아, 저 사람은 평생 저렇게 살거야, 하며 혀를 찼던 사람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래서 그 오래된 고금서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사랑에는 국경도 신분도 성별도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난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고 자부했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만했어! 언니의 너그럽고 공평무사한 마음을 자주 비웃었어.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흠을 찾고 불신하면서 내 허영심을 채웠어. 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너무 창피해! 그렇지만 창피를 느껴도 싸지! 사랑에 빠졌어도 이렇게 덮어놓고 판단력을 잃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데 사랑 때문도 아니고 허영심 때문에 그처럼 어리석게 굴다니. 처음 서로를 보았을 때 한 사람은 내게 호감을 보인다며 좋아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며 불쾌하게 여겼지. 그 바람에 난 그 두 사람이 관련된 일에서 선입견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없애버렸던 거야.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

                                                              - p 320~321 엘리자베스의 말 중에서


책 중에서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보인다. 제인은 인내하며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본다. 하지만 사실 이런 성격은 남에게 이용당할 성격이다. 거짓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그 상처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니까. 하지만 제인의 성격은 보석같은 성격이다. 과연 어느 누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런 언니 제인에 비해 엘리자베스는 합리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당차게 말하는 진보적인 여성이다. 타인에게서 상처는 덜 받겠지만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둘러싼 벽 속에 갇히게 만드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단호하게 인정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그녀라면 어떠한 고난이나 편견으로 둘러싼 자신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는 어떠한 편견과 오만도 없어야 한다. ^^


그 시대의 말투, 억양, 언어, 문화 등으로 인해 생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읽는내내 캐릭터들을 따라 감정에 휩쓸리다보니 금새 읽혔다. (그래서 제인오스틴의 소설들이 현대의 수많은 로맨스의 모토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박희정씨의 아름다운 삽화 또한 책읽기 즐거움의 선물이었다.


조금씩 서늘해지는 가을에 고전 연애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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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범죄자 세트 - 전2권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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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티저북을 접했을때부터 무척이나 흥미롭고 끌리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야 다 읽게 되었다.

티저북을 읽었을때에도 느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나는 사실 십년 전쯤에 급성 천식에 걸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감기인줄 알고는 내과에 다녔다. 열도 없고 콧물도 나지 않는데 자꾸만 기침이 나왔었다. 심할 경우에는 기침이 멎지 않아 바닥에 거품을 토하기도 했다(먹을 것을 토하는 것이 아닌 하얀 거품을 쏟아내면서 당황했었다). 폐쪽에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엑스레이도 찍어보았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참 우습게도 이 정도면 의사들이 병명을 이야기해줄법도 했지만 그저 의사들은 내가 지독한 기침감기라고만 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기침은 밤이 되면 심해지면서 몸을 축나게 했다. (결국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천식의 일종이라고 알게 되면서 환경을 바꾸고 민간요법을 병행하여 지금은 완치되었지만 그 뒤로는 심하게 운동하거나 뛰지 않게 되었다.) 그때 너무 건조한 환경이 안좋다고 해서 1년 넘게 가습기를 사용했었다. 나중에는 가습기에 오히려 세균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용을 안하게 되었다(물론 엄청나게 부지런하게 청소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게으른 나에게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여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느날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를 TV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TV를 안보는 편이라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있다는 것도, 그런 것을 광고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숨을 못쉬어 병원에 도착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에는 병명도 모른채 죽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폐가 굳어지는 병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원인을 알지 못했다. 결국 끈질긴 의사들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 아이는 살았지만 평생 산소통을 끌어안고 산소호흡기를 한 채로 살아가야만 한다.

한 남자는 아내와 아이를 자신이 죽였다면서 오열했다. 그 남자는 아내가 육아로 지쳐있었기에 도움이 되고 싶어 가습기통에 넣기만 하면 살균소독이 된다는 광고를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샀다고 이야기했다.

피해자들과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대기업을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싸웠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사족이 길었다.


이 책은 날씨좋은 3월의 어느날 역 앞 공원 분수대에서 무차별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다섯사람, 네 명은 죽고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열여덟살인 시게토 슈지는 경찰이 발표한 범인(마약상습범으로 과다약물복용으로 죽었다)이 자신을 공격하고 네 명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따 형사 소마 료스케도 시게토 슈지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유일한 생존자 시게토 슈지가 누군가에게 다시 공격을 당하고 소마 료스케는 간신히 슈지를 구해 친구 야리미즈에게 슈지를 부탁한다.

이 세명은 조금씩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사건의 진실은 참으로 참혹하고,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이 나라 국민들은 어린아이와 똑같아. 귀가 얇고 겁쟁이인데다 샘도 많지. 그리고 힘 있는 자에게 거역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어린아이처럼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평범하게 살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도 없고, 말도 안되는 불행을 겪을 일도 없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지. 물론 막상 재난이 닥치면 즉시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을 원망하지만.

그토록 유치한 그들이 그래도 어엿한 어른이랍시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국가와 기업이 오랫동안 그들을 자기 자식처럼 지켜줬기 때문이야. 다른 생각 할 필요없이 일만 열심히 해라. 그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지. 그러한 처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결과, 세상 사람들은 이제 기업이 자식을 비호하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조차 몰라. 버려진 줄도 모르고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나 마찬가지라고. 최근 오 년 동안 우리나라의 방향키가 얼마나 많이 틀어졌는지 세상 사람들은 앞으로 몇 년에 걸쳐 깨닫게 될거야.

기업 경영진은 이제 시장경제라는 세계에 속한 기업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속한 기업그룹이 국가야. 거기에는 국경도 없고 본래 의미의 국가도 없어. 그들은 국가를 기업이 윤택하게 성장해나가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여기지. 자국을 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보게. 이 나라 국민들은 전쟁 후에 특권계급으로 태어난 지도자가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사이좋게 전쟁 전으로 돌아갈 거야. 태어남과 동시에 일생이 결정되어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기 힘든 시대로 되돌아갈 거라고. 다시 전쟁 전으로 돌아가면 예전에도 존재했던 최소한의 도덕심도 사라질거야.

더 늦기 전에 길을 바로잡아야 해. 난 지금도 부모에게는 자식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네. 물론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사사키 구니오에게 주는 경고라고 야리미즈는 느꼈다. 동시에 반세기 가까이 위정자로서 살아온 이소베가 자국민에게 품은 굴절된 애증은 패전이라는 응어리가 없는 야리미즈에게 거목의 갈라진 나무껍질에 손바닥을 댄 것처럼 생생한 감각으로 남았다.]

                                                                                             - p 261~263 중에서 발췌

이소베의 말은(이 책 속에서 배경시간은 2005년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품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소름끼친다.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우리는 추웠던 겨울날 적폐를 청산하라며 길거리로 나갔었다. 거대한 적폐는 처음에는 우리의 기세에 눌려 잠시 움츠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적폐 스스로가 옷을 바꾸어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도대체 이게 뭐야?! 라고 말이다.

물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욱 답답한 현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도.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우리가 그 커다란 바위를 깨뜨리지는 못했을지라도 계란을 던져 더럽히긴 했을 것이라고.

어떤 것이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사실 그 적폐도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청소는 그것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사회파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강추한다. 물론 뒤끝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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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탐정 -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의 37년 단어 추적기
존 심프슨 지음, 정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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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장의 37년 단어 추적기, 라고 책표지에 적혀있듯이 저자 존 심프슨이 37년 동안 옥스퍼드 출판사 사전부에서 편집자로 지내온 이야기를 단어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편집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가족이야기-아내 힐러리와 두 딸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둘째 딸 엘리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오랜 시간 동안 단어에 관한 일을 하는 저자로서는 발달장애(특히 엘리는 말을 하지 못한다.)를 가진 엘리는 침묵의 생활을 하는 아이러니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엘리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이 세상은 '말'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니까.


나에게 있어 '사전'은 어떤 의미일까?

어렸을 적에 동화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우리말사전을 가져와 그 단어를 찾아서 이해하곤 했다. 

하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편집되어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전'이라는 것은 갑자기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요새는 모르는 단어-특히 신조어라든지 십대들이 쓰는 약어, 속어 등-를 찾기 위해서 온라인 사전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만약 '사전'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불보듯 뻔하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알기까지 궁금해서 못참는 성격인지라 '사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이 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니, 어리석은 생각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지금에야 쉽게 온라인으로 검색하고 전화로 전문가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저자가 처음 옥스퍼드 출판사 사전부에 출근했을 때에는 하나하나 책을 찾고, 오래된 사전들을 꺼내보고, 수많은 색인들을 꺼내 손으로 적어내려갔으니 한 단어에 대한 어원과 변천 그리고 여러 뜻을 사전에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온라인 검색으로 인해 발품이나 손품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신조어로 인해 힘든 건 똑같다고 하니 '사전' 편집부의 일은 아마도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끝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옥스퍼드 사전 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과 '기록'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어가 어떻게 탄생하고 생존하고 소멸하는지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 바로 단어 탐정인 사전편집자가 하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 우리말 사전을 일제시대때 만든 주시경 선생님과 그 외 사전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이 되지 않았을까?

쓰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이 '단어'의 습성이 아닐까?

그래서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요새는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이 있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너무 심한 단어파괴는 기존의 '단어'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간의 '소통'도 단절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가 소멸되지 않고 생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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