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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범죄자 세트 - 전2권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평점 :
처음 티저북을 접했을때부터 무척이나 흥미롭고 끌리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야 다 읽게 되었다.
티저북을 읽었을때에도 느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나는 사실 십년 전쯤에 급성 천식에 걸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감기인줄 알고는 내과에 다녔다. 열도 없고 콧물도 나지 않는데 자꾸만 기침이 나왔었다. 심할 경우에는 기침이 멎지 않아 바닥에 거품을 토하기도 했다(먹을 것을 토하는 것이 아닌 하얀 거품을 쏟아내면서 당황했었다). 폐쪽에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엑스레이도 찍어보았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참 우습게도 이 정도면 의사들이 병명을 이야기해줄법도 했지만 그저 의사들은 내가 지독한 기침감기라고만 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기침은 밤이 되면 심해지면서 몸을 축나게 했다. (결국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천식의 일종이라고 알게 되면서 환경을 바꾸고 민간요법을 병행하여 지금은 완치되었지만 그 뒤로는 심하게 운동하거나 뛰지 않게 되었다.) 그때 너무 건조한 환경이 안좋다고 해서 1년 넘게 가습기를 사용했었다. 나중에는 가습기에 오히려 세균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용을 안하게 되었다(물론 엄청나게 부지런하게 청소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게으른 나에게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여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느날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를 TV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TV를 안보는 편이라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있다는 것도, 그런 것을 광고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숨을 못쉬어 병원에 도착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에는 병명도 모른채 죽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폐가 굳어지는 병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원인을 알지 못했다. 결국 끈질긴 의사들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 아이는 살았지만 평생 산소통을 끌어안고 산소호흡기를 한 채로 살아가야만 한다.
한 남자는 아내와 아이를 자신이 죽였다면서 오열했다. 그 남자는 아내가 육아로 지쳐있었기에 도움이 되고 싶어 가습기통에 넣기만 하면 살균소독이 된다는 광고를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샀다고 이야기했다.
피해자들과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대기업을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싸웠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사족이 길었다.
이 책은 날씨좋은 3월의 어느날 역 앞 공원 분수대에서 무차별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다섯사람, 네 명은 죽고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열여덟살인 시게토 슈지는 경찰이 발표한 범인(마약상습범으로 과다약물복용으로 죽었다)이 자신을 공격하고 네 명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따 형사 소마 료스케도 시게토 슈지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유일한 생존자 시게토 슈지가 누군가에게 다시 공격을 당하고 소마 료스케는 간신히 슈지를 구해 친구 야리미즈에게 슈지를 부탁한다.
이 세명은 조금씩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사건의 진실은 참으로 참혹하고,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이 나라 국민들은 어린아이와 똑같아. 귀가 얇고 겁쟁이인데다 샘도 많지. 그리고 힘 있는 자에게 거역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어린아이처럼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평범하게 살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도 없고, 말도 안되는 불행을 겪을 일도 없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지. 물론 막상 재난이 닥치면 즉시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을 원망하지만.
그토록 유치한 그들이 그래도 어엿한 어른이랍시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국가와 기업이 오랫동안 그들을 자기 자식처럼 지켜줬기 때문이야. 다른 생각 할 필요없이 일만 열심히 해라. 그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지. 그러한 처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결과, 세상 사람들은 이제 기업이 자식을 비호하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조차 몰라. 버려진 줄도 모르고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나 마찬가지라고. 최근 오 년 동안 우리나라의 방향키가 얼마나 많이 틀어졌는지 세상 사람들은 앞으로 몇 년에 걸쳐 깨닫게 될거야.
기업 경영진은 이제 시장경제라는 세계에 속한 기업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속한 기업그룹이 국가야. 거기에는 국경도 없고 본래 의미의 국가도 없어. 그들은 국가를 기업이 윤택하게 성장해나가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여기지. 자국을 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보게. 이 나라 국민들은 전쟁 후에 특권계급으로 태어난 지도자가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사이좋게 전쟁 전으로 돌아갈 거야. 태어남과 동시에 일생이 결정되어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기 힘든 시대로 되돌아갈 거라고. 다시 전쟁 전으로 돌아가면 예전에도 존재했던 최소한의 도덕심도 사라질거야.
더 늦기 전에 길을 바로잡아야 해. 난 지금도 부모에게는 자식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네. 물론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사사키 구니오에게 주는 경고라고 야리미즈는 느꼈다. 동시에 반세기 가까이 위정자로서 살아온 이소베가 자국민에게 품은 굴절된 애증은 패전이라는 응어리가 없는 야리미즈에게 거목의 갈라진 나무껍질에 손바닥을 댄 것처럼 생생한 감각으로 남았다.]
- p 261~263 중에서 발췌
이소베의 말은(이 책 속에서 배경시간은 2005년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품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소름끼친다.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우리는 추웠던 겨울날 적폐를 청산하라며 길거리로 나갔었다. 거대한 적폐는 처음에는 우리의 기세에 눌려 잠시 움츠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적폐 스스로가 옷을 바꾸어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도대체 이게 뭐야?! 라고 말이다.
물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욱 답답한 현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도.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우리가 그 커다란 바위를 깨뜨리지는 못했을지라도 계란을 던져 더럽히긴 했을 것이라고.
어떤 것이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사실 그 적폐도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청소는 그것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사회파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강추한다. 물론 뒤끝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