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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그때까지 사오리는 자신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다. 잃을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었다. 되찾기 어려운 소중한 것을.
그날 밤 기숙사에 돌아와 혼자 울었다.
잃어버려서 마음 아픈 것은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보통은 하찮게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하찮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p 55 '1화 요시오와 사오리'중에서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100여년 전 당시 장사가 잘된다는 의미로 '네코스테(고양이를 버린다는 뜻)'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종종 밤이면 고양이들의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집고양이, 길고양이 모두 모여서. 과연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양이는 아는 것'은 이 네코스테 다리의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외로운 인간의 이야기이다.
5화로 되어 있는 이야기는 인간의 시각과 고양이의 시각이 교차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웃다가 울다가 울컥하다가 슬며시 뭉클해버리는 이야기이다.
1화 요시오와 사오리,는 고양이 요시오가 인간 사오리와 밤을 보내기 위해 벽을 타다가 강에 떨어지게 되면서 네코스테 다리에서 고양이들에게 구출되면서 시작된다.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했던 요시오는 점차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오리에게 가기 위해 아직 성치않는 몸을 이끌고 사오리에게 간다. 과연 요시오는 사오리를 만날 수 있을까?
사오리는 평범한 아이로 자라났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집을 나와서 도쿄에서 생활한다. 자신과 같은 외로운 처지인 고양이 요시오를 돌보면서 살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요시오. 과연 사오리는 소중한 요시오를 찾을 수 있을까?
2화 키이로와 고흐, 는 색각이상(색약)-적색을 구별하지 못하는-을 가진 화가 고흐와 버림받은 고양이 키이로(노란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고흐가 좋아하는 색)의 이야기이다. 완성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는 고흐, 그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하는 고양이 키이로.
[키이로는 나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어. 나의 색각은 고양이의 색과 같아. 사람에게는 드문 증상이지만 소수라고 해서 그걸 비정상이라고 치부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너희들하고 보이는 게 다른 건 확실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 빨강도 파랑도 초록도 내 방식으로 보고 있어. 많다고 정상이라 하고, 적다고 비정상이라 하는 건 다수의 오만이 아닐까?]
-p 117 '2화 키이로와 고흐' 중에서
3화 철학자, 는 유일하게 인간도 고양이의 시각도 아닌 '백로'의 시각이다. 철학자 백로가 보는 인간과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까?
-새삼 느끼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지만 동물들과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덜하지도 않고 보태지도 않고. 그래서 그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아주 쉽게 감동한다. 소중한 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행복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화 저마다의 크리스마스, 는 모든 이야기들의 결말이자 시작인 이야기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또한 끝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의 첫부분이다. 이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인연은 아니겠지만, 자신 또한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한 단계 성장한 자신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밟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5화 르누아르, 는 이름을 갖고 싶어하는 삼색 아기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네코스테 다리의 고양이들이 '신' '그분'이라고 불리는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은 이름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속박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부러운 것은 키이로의 이름이 아니다. 고흐와의 관계가 부러운 것이다.
센이 센키치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애처롭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기 고양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얽매이는 삶을 동경했다.
그것이 설령 슬픈 결말을 맞았다고 할지라도.]
- p 276 '5화 르누아르'중에서
이 편을 읽으면서 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이름이 불려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는 시. 아마도 아기고양이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었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집고양이와 길고양이 어느 쪽이 더 행복해?"
"그건 뭐, 운명이니까. 정답은 없어."
행복의 우열을 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이 세상의 삶은 정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행복의 모양도 제각각 다르니까.
당신의 행복은 어떠한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