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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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때까지 사오리는 자신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다. 잃을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었다. 되찾기 어려운 소중한 것을.

그날 밤 기숙사에 돌아와 혼자 울었다.

잃어버려서 마음 아픈 것은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보통은 하찮게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하찮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p 55 '1화 요시오와 사오리'중에서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100여년 전 당시 장사가 잘된다는 의미로 '네코스테(고양이를 버린다는 뜻)'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종종 밤이면 고양이들의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집고양이, 길고양이 모두 모여서. 과연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양이는 아는 것'은 이 네코스테 다리의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외로운 인간의 이야기이다.

5화로 되어 있는 이야기는 인간의 시각과 고양이의 시각이 교차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웃다가 울다가 울컥하다가 슬며시 뭉클해버리는 이야기이다.


1화 요시오와 사오리,는 고양이 요시오가 인간 사오리와 밤을 보내기 위해 벽을 타다가 강에 떨어지게 되면서 네코스테 다리에서 고양이들에게 구출되면서 시작된다.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했던 요시오는 점차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오리에게 가기 위해 아직 성치않는 몸을 이끌고 사오리에게 간다. 과연 요시오는 사오리를 만날 수 있을까?

사오리는 평범한 아이로 자라났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집을 나와서 도쿄에서 생활한다. 자신과 같은 외로운 처지인 고양이 요시오를 돌보면서 살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요시오. 과연 사오리는 소중한 요시오를 찾을 수 있을까?


2화 키이로와 고흐, 는 색각이상(색약)-적색을 구별하지 못하는-을 가진 화가 고흐와 버림받은 고양이 키이로(노란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고흐가 좋아하는 색)의 이야기이다. 완성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는 고흐, 그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하는 고양이 키이로.


[키이로는 나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어. 나의 색각은 고양이의 색과 같아. 사람에게는 드문 증상이지만 소수라고 해서 그걸 비정상이라고 치부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너희들하고 보이는 게 다른 건 확실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 빨강도 파랑도 초록도 내 방식으로 보고 있어. 많다고 정상이라 하고, 적다고 비정상이라 하는 건 다수의 오만이 아닐까?]

                                     -p 117 '2화 키이로와 고흐' 중에서


3화 철학자, 는 유일하게 인간도 고양이의 시각도 아닌 '백로'의 시각이다. 철학자 백로가 보는 인간과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까?

-새삼 느끼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지만 동물들과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덜하지도 않고 보태지도 않고. 그래서 그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아주 쉽게 감동한다. 소중한 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행복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화 저마다의 크리스마스, 는 모든 이야기들의 결말이자 시작인 이야기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또한 끝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의 첫부분이다. 이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인연은 아니겠지만, 자신 또한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한 단계 성장한 자신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밟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5화 르누아르, 는 이름을 갖고 싶어하는 삼색 아기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네코스테 다리의 고양이들이 '신' '그분'이라고 불리는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은 이름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속박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부러운 것은 키이로의 이름이 아니다. 고흐와의 관계가 부러운 것이다.

센이 센키치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애처롭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기 고양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얽매이는 삶을 동경했다.

그것이 설령 슬픈 결말을 맞았다고 할지라도.]

                                          - p 276 '5화 르누아르'중에서


이 편을 읽으면서 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이름이 불려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는 시. 아마도 아기고양이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었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집고양이와 길고양이 어느 쪽이 더 행복해?"

"그건 뭐, 운명이니까. 정답은 없어."


행복의 우열을 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이 세상의 삶은 정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행복의 모양도 제각각 다르니까.


당신의 행복은 어떠한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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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가림
어단비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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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가벼운 내용부터, 막장 드라마같은 여러가지 내용을 접했다. 비록 어떤 작품은 보다가 도저히 못보겠어서

제쳐둔 작품들도 있었지만, 요 작가의 작품은 제목부터 참 아름답단 생각에, 새벽일 끝나고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 본 작품인데, 사실 완독하고 나니 새벽에 읽기를 잘 했단 생각도 들기도 했다. 밤엔 사람이 좀더 감성적으로 변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동트기 전의 새벽녘과 닮아있는 듯한 소설.... 그런 소설이 달가림이 아닐까 싶다.

사실 아쉬운 점도 있다. 다른, 로맨스 소설을 보면, 두 주인공의 케미와 심쿵한 대사들, 뭔가 그 둘 사이의 복잡미묘한 감정선, 그리고 에피소드들이 존재하지만,  이 소설은 이런 점들이 없다 느껴질만큼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로, 이 소설은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소설은 결코 아니란 거다.

에이... 너무 잔잔한거 아닌가? 이게 로맨스 소설인가? 그냥 판타지 동화 아닐까? 란 생각을 지울순 없었으니까 말이다.


얼마전에 종영한 숲속의 작은집이나, 영화 리틀포레스트, 혹은 미니멀리즘이나 스웨덴의 라곰라이프를 소재로 한 책들을 보았는데, 이 소설이 요즘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은, 작가가 무척이나 친자연주의적인 사람일까나? 달가림을 읽은후, 힐링을 느낀건 나뿐일까? 란 생각을 해본다. 비록 뜨겁고 격정적이고 알콩달콩하며, 심쿵할 만한 요소는 없지만, 동심을 자극하는 두 주인공의 대화와, 장촌할머니의 소박한 음식들, 마을사람들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정....  요즘은 접하기 힘든 것들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이 소설엔 가득 담겨져 있다. 햇빛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숲에 쏟아지고, 밤엔 검은하늘을 찾아볼수 없을만큼 도글도글 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빛나는... 그런 하늘을 미세먼지가 가득해 뿌옇기만한 요즘도 볼수 있을까? 과연,  도기마을은 정말 충주에 있을까??


효주는 잃어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찾으며, 삶의 이유도 찾아가고, 그림자 찾는걸 도와주는 무영에게 인간의 표정을 가르쳐주면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외할머니의 진실한 마음도, 장촌할머니에 대한 감사함도 느끼게 된다. 비로소 살아있기만 한 좀비같던 효주는 표정있고 향기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나저나, 둘은 잘 될까요?


우리가 매순간 지치더라고 참고 견디는 이유는,  옆에 날 지켜봐줄 누군가가 있기에, 그 누군가와 매 순간 순간을 함께 향유할수 있단 희망, 혹은 함께한 기억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그나마 기쁘게 견디고 버텨내는게 아닐까? 지금 자신의 옆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장촌할머니의 음식처럼 맛나진 않겠지만, 나도 돌아가신 할머니가 쪄준 감자나, 호박죽이 생각나는 건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겠지?  그나저나, 나도 부침개에 시원한 막걸리한잔이 생각나는군...

어단비작가님의 달가림, 이쁜 동화한편과 함께 모두 도기마을로 힐링 치유 여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요?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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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쉬고 싶다 -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한 카르페 디엠
니콜레 슈테른 지음, 박지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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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 12명과 코치가 열흘넘게 고립되어 있다가 무사히 구조되었다. 그 오랜 시간 어둡고 추운 동굴 속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싸우면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세계는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12명의 소년들을 침착하게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코치였다. 코치는 공포와 허기에 지친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면서 '명상'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매우 좋은 우연인지 이 책 니콜레 슈테른의 '혼자 쉬고 싶다'를 읽을때 이 태국동굴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 읽었을무렵 기적같이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나는 슬픔(20140416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 그러하지 않았을까?)과 함께 기뻤다. 얼마나 다행인가.


[지구는 성공한 사람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행성에는 혁명가, 평화 수호자, 치료사, 소설가,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랑꾼이 필요하다. - 달라이 라마]


'쉰다'는 도대체 무엇일까?

쉰다는 것에도 종류가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 자신이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사실 저자인 니콜레 슈테른도 언급하지만 오래전서부터 우리는 '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멍하니 있거나 잠시 어딘가에 앉아 쉬고 있으면 사람들은 맨 먼저 묻는 것은 '할 일은 다했니?' 였다.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쉬지도 못하는가?

우리는 강박적으로 '쉬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야했다. 마치 쉬는 것이 게으름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어내고 게으르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지런한? 개미처럼 살기를 강요했다.

-'개미와 베짱이'는 어린아이서부터 어른까지 모두 아는 이야기이다. 부지런한 개미는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울대비 식량을 모으는데 게으른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악기나 켜면서 노래를 불렀다. 결국 한겨울이 되자 개미는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지내지만 베짱이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구걸하면서 지낸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읽었을때 마음 속은 베짱이처럼 한가하게 음악이나 즐기면서 탱자탱자 놀고 싶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나중에 배고픔과 추위에 허덕이고 싶지 않기 위해서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야함을 마음 속에 새겼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동화 속 세계는 열심히만 살면 그런 행복이 보장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리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도 그리 녹녹치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시간을 가진 우리나라,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쉬기는 하는걸까?

나 스스로도 과연 제대로 쉬는 시간이 있기는 한지 의문스럽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로 일하니 한가하고 좋겠다, 고 하지만 실제로 프리랜서여서 일도 고정적이지 않고 페이도 적어서 많은 시간 노동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 또한 이런 생활이 어느 순간 금이 가고 무너질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없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몇년 전까지는 나중에 닥칠? 노후생활을 위해서 돈을 저축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관점을 달리 해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얼마만큼 벌어야 적당한 것일까? 어느 정도 모아야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어서 어쩌면 아무리 모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자 반대로 생각해보았다. 최소한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고 말이다. 어차피 죽을때 모두 짊어지고 갈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커다란 집이 필요도 없고, 엄청난 돈도 필요가 없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온다면 시골에 내려가서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짝꿍에게 말했다. 뭐 노인연금을 받으면서 크게 아프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자 짝꿍은 반신반의하면서 눈을 치켜세웠지만 계획 한번 짜보자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요새 짝꿍은 미니멀리즘에 빠져있다. 여유있고, 적당하고, 즐겁고, 단순하고, 비워내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저자는 자신의 녹록치 않은 삶을 살면서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깨닫는다. '삶'에 있어서 '양'이 아니라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우리는 인간-존재Human-Being이지 인간-행동가Human-Doing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더 이상 많이 성취하거나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적게 일하고 사색하며 시대의 까다로운 문제들에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내면과 외부의 균형을 찾는 일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p 362중에서 '혼자 쉬고 싶다'


당신은 지금 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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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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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때 서정윤의 '홀로서기'라는 시집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어. 나 또한 그 시집을 읽어보았는데, 아마도 에이자 지금 너의 나이인 열여섯이었고 사춘기였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여서 그런지 그 시집은 가슴을 울렸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었어.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평행선을 생각했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평행선이 아니라 교차선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교차선은 결국 다시 멀어지고 말잖아? 우리가 소중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건 평행선에서 만난다는 것을 깨달았어.


에이자 네가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에이자 너의 특별함-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나선의 생각 소용돌이-을 악마로 칭하고 우울해하지만 사실 그 특별함이 너의 자신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거야.

아마도 너의 건강염려증은 너의 소중한 사람인 아빠를 잃고 나서 생겨난 것이겠지.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우리의 곁을 떠나간다면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 또한 마지막에 소망이 있다면 적어도 작별인사를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언제나 그렇듯 슬픔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니까.

에이자 네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자신의 강박증을 고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혹은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긴 뜻대로 된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긴 할거야)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거겠지. 또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삶을 살아내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갈 의미가 있는지도 몰라.

난 적어도 에이자 네가 잘 견뎌내고 꿋꿋이 삶을 살아내리라 생각해.


에이자 너의 열여섯 살의 시간에서 데이비스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알겠더라. 계기가 어떻든간에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게다가 어렸을적에 호감을 가진 상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인거지.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고 단순할 수 있지.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너는 알거야.

내가 보기엔 에이자 너와 데이비스는 짧은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고 깊어보였어.

그런 사람을 만나는게 쉽지 않지.

아마도 에이자, 데이비스 둘 다 인생에 있어서 열여섯살의 시간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지 않을까?

아주 오랜 후 과거를 되돌아볼때 어느날 찬란하게 빛나던 별들을 바라보았을때처럼.(그 별빛은 사실 과거의 별빛임을)


아마도 너의 특별함은 평생 너를 따라다닐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곁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지 그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항상 걱정이 많지만 너무도 너를 사랑하는 엄마,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스타워즈 팬픽을 쓰는 멋진 친구 데이지, 닥터 싱, 기억 속의 아빠, 첫사랑 데이비스 등, 그리고 네가 살아가야 할 시간에 마주칠 혹은 같은 세상을 바라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거야.


에이자 너의 찬란한 시간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또 다가올 찬란한 시간들을 너의 방식대로 보내기를 바랄게.

잘 있어, 에이자.


[단수 고유명사인 '나'는 늘 주위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 살아 나갈 거야.

하지만 넌 아직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해. 너와 나는 데이비스의 손을 꽉 잡아. 데이비스도 우리의 손을 꽉 잡지. 넌 그와 함께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참 후에 데이비스가 그만 가야겠다고 말하고, 넌 '잘가.'라고 말하고 데이비스는 '잘 있어, 에이자.'라고 말하지.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p 312 중에서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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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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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콜럼바인'을 읽었었다. 꽤 오랫동안, 집중해서 읽은 책이었다. 10년여 동안 기자가 콜럼바인 사건(두 명의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학교에 폭탄을 설치하고 총기를 휘두른 사건)을 파헤친 다큐기록물이었다.

읽고 나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이 책 '밤의 동물원'을 읽으면서 '콜롬바인'이 많이 생각이 났다. (이 책에서도 콜럼바인이 잠시 언급되기도 한다.)


'밤의 동물원'


조앤은 아들 링컨과 자주 동물원을 산책하곤 한다. 링컨과 함께 링컨이 꾸미는 이야기들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동물들과 평온한 산책을 했다.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에 조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링컨을 달래서 서둘러 동물원을 빠져나가려던 그 시각, 폭죽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는 폭죽소리가 아니었다. 어두워지는 동물원 입구쪽 두 명의 남자가 라이플 총을 들고 있었고, 남자들 주위에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조앤은 본능적으로 링컨을 안아 껴안고는 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이 책은 동물원에서 인간사냥을 나선 남자들에게 살아남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로 조앤과 링컨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사실 범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취급되진 않는다. 나는 사실 그 부분이 좋았다. 어린시절이 어떻고, 학창시절이 어떻고, 부모는 어떻고, 성격은 어떻고, 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실은 그저 그 살인마가 자신과 같은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는 진실만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 이면에는 그 어떤 당위성도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의 장점은 조앤의 모습이  '히어로'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 너무 어린 아들 링컨이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면 짜증이 나고, 쿠키를 소리내서 먹는 것도 짜증이 나고(속으로 너무 시끄럽다고 화를 낸다), 우연찮게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도 이들로 인해 자신과 링컨이 혹여나 범인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초조해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앤은 한 사람의 인간이기도 하지만 링컨의 엄마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엄마'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그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그릇보다 더 큰 것을 담으면 결국 자신이 망가지기에 가장 작은 것만을 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만 가득찬 것이 아니어서 '모성애', '부성애' 등 일명 '사랑'으로 통칭되어진 것들이 존재하기에 차갑고 우울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살만한 세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방관자의 시점에서 조앤과 링컨을 보다가 어느 순간 조앤의 시점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앤과 링컨이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동물원이 더이상 평화롭지 않고, 안전하지 않았다.

과연 이 세상에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 있을까?


한 인간이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소원을 빌었다.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다음날 이 지구에는 단 한명의 인간만이 남았다. 소원을 빈 인간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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