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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고고학자인 저자가 죽어 있는 유물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를 ‘잔치’, ‘놀이’, ‘명품’, ‘영원’ 4가지 큰 주제로 들려주는 책이다.
사실 고고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프롤로그에서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고학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박물관에 전시된 고고학 유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그 유물의 진면목을 알아차리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고조선을 증명하는 유물인 비파형동검을 생각해볼까요? 전시실에 진열된 비파형동검의 모습은 그다지 멋들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퍼렇게 청동 녹이 슬었기에 볼품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양만 봐서는 이 유물이 어떤 점 때문에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증명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전문가적 지식과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낡고 녹슨 이 비파형동검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정말 그렇다. 박물관에서 아주 오래전에 사용되었던 주먹도끼라든지, 화살촉 같은 것들을 볼 때, 사실 큰 감흥이 없다. ‘아! 그렇구나!’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별다른 생각을 이어나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영상으로 꾸민 구석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보거나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를 들으면 그제서야 이 유물들이 어떻게 사용되었을지 그리고 이런 유물을 사용했던 시기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의 문이 열린다.


작가는 32가지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32가지를 크게 잔치, 놀이, 명품, 영원이라는 주제로 구분하고 있다.
1. 잔치: 요리하고 먹고 마시다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고기, 해장국 8가지에 대해서 유물을 통해 그 기원을 이야기해준다.
상어고기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나는 경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낼 때 남자어른 들은 한복에 갓도 썼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런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셔서 한마디로 종갓집 만큼은 아니어도 어느정도 유교적 격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제사상에 돔베기라는 상어고기가 항상 올랐다. 매우 짭짤하게 간을 한 채로 늘 제사상에 올랐었다. 대학을 타지역으로 가고 이후 직장생활도 수도권에서 하면서 상어고기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제사상에 올렸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그런데 신라 무덤들에서 상어뼈가 두루 발견되었고 가장 오래된 것은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니! 경주를 수도로 한 신라에서 상어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없는 상어뼈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그 당시 바닷가에서 상어를 잡은 뒤에 금방 상해버리는 머리와 내장 부위는 제거하고 통째로 염장을 해서 내륙으로 운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제사상에 올려진 돔베기도 너무 짜서 나는 사실 돔베기를 잘 먹지 않았었다. 기름기없이 단백한 맛은 좋았지만 너~무 짜서 짠맛에 다른 맛들이 모두 가려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라시대에도 염장을 한 상어고기를 먹었다니! 천년도 전에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의 맛이 어쩌면 내가 맛본 그 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오묘했다.
2. 놀이 : 놀고 즐기며 유희하다.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개, 고양이에 대한 기원을 이야기해준다.
그 중에서 동서양 모두 예전부터 공놀이를 했다는게 신기했다. 양하이 유적에서 발견된 3200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공은 정말 놀랍다. 3200년이나 지났는데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3200년전이면 기원전인데, 그럼 우리나라 역사로는 고조선 이전 시대라는 건데, 그 옛날에 이미 이런 공을 만들어서 놀잇감으로 사용했다니 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된다.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하며 지내는 지금 우리 눈에는 원시인 같은 모습을 가진 동시에 문명이 시작되어 유희를 즐기고 놀잇감을 발달시켜가는 모습도 가진 그 옛날 사람들.

3. 명품 : 부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석기, 실크, 황금, 신라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명품이라는 챕터로 엮으면서 부와 아름다움을 추구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물들이 등장하겠군! 짐작했고, 역시 소주제들 중 실크, 황금, 신라금관 등은 명품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주제 중에 ‘도굴’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이게 왜 여기 있지?’하는 생각이 들어 명품 주제 중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앞부분에 도굴에 대한 이야기를 풀면서 인디아나존스 이야기가 잠깐 언급된다. 고고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20세기 중반까지 식민지 유적지를 찾아가서 귀한 유물을 훼손하고 훔쳤던 서양고고학계의 어두운 얼굴을 미화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엄청난 인디아나 존스의 팬이었다. 그의 모험이 너무나 신났다. 그래서 이런 이면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어렸을 때 본 영화여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저 문장을 읽고 나니 이제 다시 보더라도 이전과 같이 그저 모험의 세계로 떠나는 것처럼 마냥 하하호호하며 볼 수는 없을 것같다.

중국 진시황의 14대조 할아버지 진경공의 무덤은 250여개의 도굴갱이 발견될 정도였단다. 정말 도굴꾼들의 도굴 실습장이었나보다. 그 규모가 상당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무덤하나에 도굴갱이 250개가 있을 수 있는지...
4. 영원 : 영원한 삶을 욕망하다.
벽화, 추모, 미라, 발굴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라는 8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라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저 미라라고 하면 이집트의 투탕카멘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었는데, 물론 이집트 이야기가 먼저 나왔지만(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이 이렇다니...끔찍하다.) 레닌이 미라가 되어 그의 육신이 아직 보존되고 있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더구나 유물론자인 레닌이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의 유물인 미라가 되었다니! 그리고 그의 뇌는 그대로 폐기된 것이 아니라 1만 3000개의 표본으로 만들어졌단다. 레닌은 자신이 죽은 후에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라가 되어, 표본이 되어 계속 존재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을까?

32가지 소주제로 유물을 통한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다.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하는 나에게 유물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용은 픽션 같지만 유물과 함께 그 이야기들이 소개되면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마냥 흥미롭다.
역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 성인들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