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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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았다. 이렇게 한 데로 묶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SF에는 특유의 포근함과 고심했을 성찰의 흔적들이 뭉근하게 느껴져서 좋다. 며칠간 책태기가 심하게 와서 도저히 책이 읽히지 않았는데, 덕분에 좀 극복한듯. 책태기가 오면 SF를 읽어야겠다ㅎㅎ


소설집 전반에서, 특히 표제작인 <단어가 내려온다>에서 오정연 작가의 '말'사랑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괜히 나도 모르게 같이 사랑하게 되는 기분.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폼나다가 외래어이고, 점잖다가 젊지 않다에서 파생되었다는 것? 이런 토막지식 알게 되는 거 너무 재미있다! 3가지의 단편에 공통적으로 화성이 등장하며 화성으로의 이주 그 이후를 다루는데, 꽤나 통찰력있고 현실적인 지점이 많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 특유의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작가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보면 특히 결말에서 소위 과거의 '인소 감성'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살짝 유치한가 싶으면서도 또 취향에는 쏙 들어맞는 그런 끝일 때가 있다. 이렇게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고, 막상 인소 감성이라고 설명하자니 아닌 것도 같지만 그런 기시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ㅋㅋㅋ 특히 소설집의 문을 연 작품인 와 마지막 작품이 그러했던.


작가가 여성, 아내, 엄마로서 겪은 한국의 현실과 SF를 잘 접합한 소설집 같다.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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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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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의 신작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연출한 이길보라 감독이 2016년부터 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이길보라 감독이 농인 부모를 가진 코다, 그리고 여성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만큼 그와 맞닿아 있는 주제들이 책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같은 세상을 살고, 같은 사건을 겪어도 서로의 처지에 따라 보이는 것이 이렇게나 달랐다.

 

글을 읽는 내내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자꾸만 기득권(주류)으로서의 자아가 슬금슬금 올라왔다는 것이다. 자꾸만 마음 속으로 농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어떡하자는 거지?', '일단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는거야?', '내 것을 희생해 나누어줘도 자꾸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거 아냐?' 끔찍한 생각들이 자꾸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더 끔찍했던 건 장애인 담론이라는 걸 지우고 보면 이 생각이 너무나 뼈저리게 페미니즘 담론에서의 기득권 남성들의 생각으로 읽힌다는 거였다. 그제야 나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내 경험과 연결 짓고서야. 자꾸만 되뇌었다. 내것을 희생한 게 아니라, 내가 저들의 것까지 편리함을 누리고 있던 거라고. 그 후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을, 특히 이런 일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어 차별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길보라 감독이 영화제 숙소에서 불법촬영을 겪은 후 라는 포르노같은 제목으로 기사들이 나왔다. 심지어 이길보라 감독의 프로필 사진도 함께. 당연스런 수순으로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감독이 수정을 바라며 연락한 기자, 신고를 바라며 찾아간 경찰은 당신이 공인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조회수를 올리는 데 급급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피해자를 부각하는 기사가 정말 국민들의 알 권리인가? 자기들 돈 벌 권리가 아니고? 애초에 포털 사이트에 뜨는 게 공인의 기준인가? 자기들이 뭔데 국민들의 알 권리의 범위를 정하는 거지? 이거야말로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알권리'라는 단어는 중요하고 급박한 정보들에 쉽게 가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가령 위급한 재난 상황에 대한 긴급 속보나 자세한 후속 보도들. 꼭 알아야 할 그런 급박한 소식일수록 농인들은 오히려 더 알 수가 없다. 급하다는 이유로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로나19 관련 본부의 첫 회견 때에도 수화통역사는 없었다고 한다. 알권리는 이런 곳에 쓰여야 하는 단어다. 돈벌이로 쓰고 싶은 자극적인 기사의 변명으로 쓰일 말이 아니라.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생각, 특히 농인과 그들의 자녀인 코다에 대한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고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항상 약간의 궁금증이 있었다. 왜 페미니즘은 환경주의나 장애인 담론, 성소수자 담론과 함께 가야하는걸까? 왜 여성인권엔 관심도 없어보이는 사람들까지 포용해야한다는 부담을 지우는거지? 이렇게 범주로 묶다보면 너무 단일화되고,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분투가 고되고 힘들어보여 그 짐을 함께 나눠지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무조건 함께,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작정 포용하고 싶지도 않고, 서로의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무작정 배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차별이 같은 결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없애고 싶은건 단지 여성차별이 아니라 차별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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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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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방송에선 이야기꾼인 장트리오(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의 역할이 돋보이며 긴장감있게 스토리를 끌고가지만, 책은 좀 더 느긋하게, 놓친 부분은 다시 꼼꼼하게 읽어가며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꼬꼬무>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한국의 근현대사를 말한다. 특히 좋은 점은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 그 당시의 상황과 사회, 문화적 맥락도 함께 짚어내는 것. 이러한 부분 덕분에 사건을 단지 흥미거리로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현실을 되짚어보게끔 한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 대체로 한국의 당시 사회상을 읽어보는데 중요한 부싯돌이 되어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무려 1998년에도 강간 중매가 있었다는 것이다(p.38). 그것도 고등학생인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를 결혼시킨 것. 옛날엔 그랬구나, 하고 넘기기엔 전혀 먼 옛날이 아닌데? 읽는 내내 화가 참 많이도 났던 파트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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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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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르테에서 4번째로 출간된 B. A. 패리스의 스릴러 소설이다. 과거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고대하던 화려한 결혼식을 하지 못한 아내 리비아는 이후 내내 마흔에 맞이할 성대한 생일파티를 기대한다. 그리고 바로 그 생일파티 직전, 아내 리비아와 남편 애덤은 각각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만한 비밀을 갖게 되고 부부는 그 비밀을 파티가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숨기기로 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 시간을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즐길 수 있도록.


스릴러를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초반 진도가 조금 더디긴했지만 중반이 지나가니 책을 덮는 순간이 아쉬울 정도로 주인공 부부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이입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 꼭 주인공들이 숨긴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 뿐만이 아니라, 리비아나 애덤이 가지고 있는 결핍과 결함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소설 초반 부분은 시간을 거꾸로 구성하여 '왜'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이 소설의 메인 사건이 진행되는 중반부까지 책을 벗어날 수 없도록 붙잡는 역할을 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신작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동안 B. A. 패리스의 작품을 읽고 기대했던 것 보다는 심심했다는 후기도 있는 걸 보니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얼마나 더 재밌길래..?

표지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게 느껴져서 아쉬웠지만, 어릴 때 참 좋아했던 팀 보울러의 스타시커를 번역한 김은경 번역가를 책날개에서 발견해 반가웠다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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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
티키틱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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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티키틱이다! 티키틱은 허황되고 장황한 지각 사유를 리드미컬하게 줄줄 내뱉는 "제가 왜 늦었냐면요" 영상으로 유명한 일상 뮤지컬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4명의 팀으로 이루어져 매번 귀여운 뮤직비디오같은 영상들을 올리는데, 단순히 제작진으로 존재한다기보단 영상에 직접 출연하는 식으로 각자를 드러내서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상은 "후회의 노래"인데,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치킨을 먹은 어제의 나에게 그러지 말라며 말을 거는 귀여운 영상이다🤭

티키틱의 채널은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슬쩍 떠올려 봤을법한 귀여운 상상과 고민들이 주 소재다. 아직 티키틱을 모른다면 한번쯤 찾아보길 추천해본다. 아마 취향에만 맞는다면 너무나 공감되는 귀여운 상상과 퀄리티 높은 영상에 빠져 정주행하게될지도 모른다.

책은 주로 4명의 멤버들이 번갈아서 이야기한다. 티키틱이 만들어진 배경, 티키틱 결성 전 개개인이 꿈을 향해 가던 방향과 방법들, 그리고 티키틱 영상을 만들며 얻은 팁들과 에피소드들까지 담겼다. 티키틱의 영상을 보면서 막연하게 다들 탄탄대로를 걸으면 평탄하게 팀 결성을 했을 것만 같았는데,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있는 법. 특히 세진님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누구의 꿈이 더 쉽고 어려운지 멋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연기는 영상제작에 비해 꿈을 붙들고 버티기가 유독 힘들었을 것 같다. 립싱크하던 어린시절의 영상에서 티키틱으로 넘어온 그 사이가 내게는 마치 티키틱의 <롱 테이크>처럼 편집된 삶처럼 느껴졌었고, 그래서 그 중간에 힘들었던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볼 생각도 하지 못했었고.

티키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하고, 영상 제작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만들고 싶던 영상의 목표와 기준을 세우고 중심을 잡는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추가로! 너무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 있다. 평소 쉽게 잠드는 편이 아니라서 머리만 대면 10초도 안돼서 잠든다는 추추님의 답변을, 꿀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힘든 분들이라면 자기 전에 베개를 앞에 두고 주먹으로 베개를 내려치면서 '나는 푹 잘수 있다!'를 외친 후에 잠들어보세요. 말의 힘은 뜻밖에 굉장합니다." 라는 말을 보고 너무 빵터져서 깔깔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의 힘이 아니라 주먹👊의 힘인 것 같은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나의 뇌는 미련을 감출지 말지 갈피를 못 잡기 시작했다. 내가 연출을 맡은 광고에서 제작비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때면 자발적으로 엑스트라를 자처했는데, 크게 넘어지거나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는 뒷모습을 대타로 촬영할 때면 ‘출연료가 많이 드는 장면을 내가 꽁짜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한때나마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내 꿈을 제일 먼저 나서서 짓밟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 P46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것은 악의를 갖지 않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다른 이들에게 불쾌함을 주는지 이해하는 영역의 문제다. 창작자라면 자신의 도덕성이나 인성과 별개로, 어떤 표현과 편견이 상처가 될 수 있는지 늘 경계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악의 없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속해 있지 않으니 더욱이 그들이 처한 상황과 배경을 모를 수 밖에 없다. - P119

추추 : 잠이죠(웃음). 자기 전에 저를 꽤 많이 믿는 편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자는 잠은 최고의 꿀잠이다‘라고 강하게 믿고 잠드는 거죠. 저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을 믿는 것이 힘든 분들이라면 자기 전에 베개를 앞에 두고 주먹으로 베개를 내려치면서 ‘나는 푹 잘수 있다!‘를 외친 후에 잠들어보세요. 말의 힘은 뜻밖에 굉장합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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