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분들은 히스테리아의 어원을 알까?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할 때의 그 히스테리의 어원. 히스테리아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여성이 광기를 보이는 이유를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남성의 병을 설명할 때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과는 다르게 여성의 병을 설명할 때 이런 식으로 여성의 몸 안에서, 특히 여성의 생식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남성이 유독 많이 걸리는 병과 다르게,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병의 원인으로 '여성호르몬'을 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 또한 그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병의 원인으로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환경적인 요인을 배제한 채 여성호르몬만을 강조할 경우 병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경고한다. 특히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우울증'의 경우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처하며, 집안일 및 육아 시간이 더 길고, 그로인해 사회와 고립되는 경우가 더 많고, 외모에 대한 압박감이 더 심하고, 성폭력 및 가정 폭력의 위험에 상시 노출될 수 있다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생물학적인 요인, 즉 여성호르몬이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을 짚어낸다.
1부에선 앞의 내용을 포함해 우울증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자리에 위치해 있는 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을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 1부가 가장 충격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첫 장부터 생각도 못해봤던 내용들이 자잘한 지식이 아닌 묵직한 돌덩이처럼 밀려들어왔으니, 말 다했다. 2부는 좀 더 우울증 환자들의 생각과 생활에 밀착한다. 인터뷰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공통적인 내용을 추려 여성 우울증 환자들의 서사를 정리한다. 우울증의 시작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부터, 환자에게 맞는 병원을 떠돌며 경험한 것들, 상대적으로 가려지는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2부부터는 굉장히 논문스럽다...ㅎㅎ
일단 첫 장을 읽다보면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에 훅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데, 단순히 흥미로운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가려져 있던 모순들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모르고 있던 미지의 공간을 가려 온 커튼을 확 젖힌 기분이 든다.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품을 들인 연구인지 느껴졌다. 1부를 채 읽기도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읽으라며 추천해주고 다녔을 정도로 좋았던 책이다. 우울증 또는 여성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께, 꼭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