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 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김병기 지음 / 학고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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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탔다. 분명한 범인은 있었지만, 우리는 누구도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은 그 죄의식의 가장 얕은 부분일 것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사는 나는 해마다 한두번씩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을 방문해왔다. 그동안 여러 궁궐을 봤고, 여러 연주회 및 전람회를 관람하였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건 숭례문을 직접 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의 서울 나들이가 아무 의미가 없어보이는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졌던 존재감. 그래서 허탈함과 죄의식이 이리도 큰지 모르겠다. 참 부끄럽다.

이 책은 나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역사전쟁을 알게 해주었다.

광개토대왕비가 있다는, 만주의 집안이라는 지방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내용이 일제에 의해 변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비의 존재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조차 없었거니와 변조 운운에 대해서도 그저 그렇거니 하고 여겼을 뿐이었다.

이 비는 무엇인가?

장수왕은 아버지가 거둔 영광을 이어나가려는 의지로 선왕의 업적을 비에 새겨 후대에 전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 비에 선왕의 업적을 사실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동북아 및 세계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장수왕이 비에 새긴 아버지 광개토왕의 무덤 이름(능호)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이다. 국강상은 이 태왕이 묻힌 지역의 이름이고, 광개토경은 광개토대와 시절에 넓혀진 영토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이 이름의 뜻은 땅의 경계를 넓게 열었고 온 나라에 평안을 가져다 준 위대한 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의 옛 영토를 잃어버림으로써 이 비는 우리의 역사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다시 역사의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이 비에 새겨진 글자를 몇 개 변조하고, 내용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역사에 유리하게 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나락까지 떨어뜨리는 술책을 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여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재일 사학자인 이진희에 의해 변조설이 주장되었을 뿐이며, 그는 수십년을 홀로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역사전쟁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비에 새겨진 글자의 서체를 분석함으로써 변조설을 확실히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다.

역사는 아는 자의 것이다.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고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자신감의 고구려 천하관을 우리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의 가장자리인 물가 안의 모든 땅에 살고 있는 것으로서 왕의 신하가 아닌 것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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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탄생 - 미국 역사 교과서가 왜곡한 건국의 진실들
레이 라파엘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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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소위 민중의 역사가이다.

처음 이 책을 알았을 때는 "강대국 미국도 역사를 왜곡했다고? 왜? 얼마나? 이거야말로 미국을 비웃어줄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론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소위 '민중의 역사가'라고 일컬어진다고 한다.

그는 주장한다.

미국 건국신화에서 말해지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모두 날조된 것이다. 어떤 영웅담도 혼자 이룩한 것이 아니며, 그나마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모두 꾸며진 것이다. 미국은 민중의 힘에 의해 건국된 것이며, 영웅들은 단지 그들의 '대표자' 또는 '대변자'일 뿐 지도자가 아니다. 현재의 미국 건국사는 일련의 시간 경과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영웅담의 나열이며 이들을 시간순서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 만일 미국이 이들 수십명의 소수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면 그들 외의 민중은 꼭두각시였던가?

건국 초기를 비롯하여 미국이 겪었던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일치단결이었고, 이를 위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는 바로 영웅이었다.

저자는 주장한다.

이제는 이런 날조된 역사가 아니라 진정한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되살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역사의 주인임을 인식시켜 새로운 애국심을 가지게 해야한다.

나는 생각한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세워진 나라이고, 전쟁을 통해 강해진 나라이다. 전쟁을 잘 수행하려면 돈독한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들은 역사를 날조해 이를 충족시겼고, 필요할 때마다 잘 이용해왔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위기는 내부의 전쟁이나 외부와의 전면전 때문이 아니다. 복잡해진 사회상과 맞물리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국제 정세와 얽히는데 그 고리를 한번에 풀기에는 영웅담의 위력이 약하다. 즉 건국신화의 영웅담은 현대의 위기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역사의 주인임을 촉구할 때다. 모두가 영웅이 되어 구국전선에 나서야 한다.

좋게 생각하면 '이제야 정신차리는군!' 하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모두가 영웅?'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좀 과장하면 모두가 가슴에 폭탄을 품고 전장을 향해 돌격하라는 선동 같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좀 비뚤어진 생각인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만, 저자는 미국 역사 교과서가 왜곡한 역사의 진실을 고발하는 듯하지만, 내 느낌에는 '소수의 영웅주의'를 탈피하여 '모두가 영웅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애국심을 과시하는 한편 독자들에게도 동참하기를 요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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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스캔들 - 세계 최고의 영광 노벨상의 50가지 진실과 거짓
하인리히 찬클 지음, 박규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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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상이다. 해마다 탄생되는 수상자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며,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부심의 표상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은 노벨 자신의 애매모호한 선정 기준 때문에 원천적으로 수상자에 대한 논란이 생기게 되어 있었다. 그 해의 업적에 대해, 한 분야에 3인 이하에게 수상하며, 사망자는 제외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이는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노벨의 시대에는 그래도 되었다. 아직 세상의 발전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던 때이니까.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한 해에도 세상을 이끌어갈만한 없적이 여러 분야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데, 그 업적들은 연구의 특성상 여러명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수상위원회가 이 많은 일들을 다 심사하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년 전의 업적으로 관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야 상을 타게 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나마 타면 다행이다. 죽으면 소용도 없으니까. 이는 젊은 괴학자들이 돈 걱정 없이 연구하게 하겠다는 노벨의 취지에서 한참 멀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한 분야에 3인 이하라는 규정은 심사위원회를 무척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당혹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한 팀에서 누군 주고 누군 배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직!) 저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여태까지 수여되었던 노벨상 중 각 분야 별로 논란이 있어보이는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그 많은 수상자들 중에서 저자가 꼽은 것이 겨우 이만큼이라면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지금까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객관식 시험조차 그 문제의 당위성을 문제 삼는 시대다. 답이 맞는 건지는 고사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 맞게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어찌 말이 없겠는가, 지구 인구가 몇인데? 참 골치 깨나 아프겠다.

지난 날 우리는 오래도록 문학이나 과학분야에서 우리의 첫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기를 고대해욌으나 그러지 못해 평화상 수상이 첫 그림을 장식했다.  비록 그 자체의 의미는 크다고 보지만 아직 우리의 갈증이 풀리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노벨상의 의미는 그만큼 크니까, 누가 뭐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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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 50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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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젠들 매드니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출판물 수집광들에 대한, 거의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는데 수만권의 서적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접하고는 부러움과 함께 그 콜렉션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고, 겨우 얼마 안되는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 흐뭇해하는 자신이 초라해보이는 순간을 겪어야 했다.

그 수집광들의 대부분은 개인 혹은 대학과 연계해서 도서관을 건립하여 간접으로나마 대중에게 혜택을 베풀었다. 열람 또는 관람으로.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에 나오는 도서관들은 거의 공공 도서관들이었는데, 우선 그 건물 자체가 문화재 급에 해당하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예술품들이었다. 그 건물에 책이 없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이르게 할 아름다움. 그런데 그 벽 사면이 귀중한 책으로 가득차 있으니...

책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읽는 이의 영혼을 살찌우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 또는 보관만 하는 책은 당장 내게 별 소용이 없는 것이기는 하다. 따라서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책은 우리 집 작은 방의 벽을 나름대로 채우고 있는 불과 수백권의 책들일 것이다.

하지만 '젠틀 매드니스' 이후로 느껴지는 이 갈증이 더해진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언젠가는 이 도서관들 중 어느 한 곳이라도 가볼 수 있을 까? 그러면 이 갈증이 조금은 풀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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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충동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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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수 많은 멘토가 있다. 그리고 인생의 질은 높여주려는 많은 지침서가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지침들은 모두 저자의 이상향에 다름 아니다. 즉, 저자 자신의 인생 방향타일 뿐 내게는 다만 참고 자료일 뿐인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책들을 보면 그저 그러려니 했다.

사실 교훈적인 책을 읽고 그대로 살아보려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덧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을 살고 있었고, 이미 그 방식을 뜯어고치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어 있었다. 하지만 내 방식의 삶이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고, 귀를 막고 살지는 않았음에도 아직 나쁜 평을 들은 적이 없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여러 사람의 일화들 들어 설명하는 방식은 책을 앍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료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래서 다 읽고나니 한질의 위인전집을 섭렵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내용대로만 하면 과연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이끌어가는 힘과 내용 자체가 주는 포스가 막강하기는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역시 하나의 인생 지침서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1인 내 아들 녀석은 어떨까? 아직 노는거 말고는 전혀 생각이 없는 이 아이는 책을 참 싫어한다. 물론 만화는 예외지만. 아비 된 죄로 여태 여러가지 말로 또 생활로 많은 걸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느끼는 바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언젠가는 느끼기 시작할거라는 오직 한가지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이 책을 주었다. 내용 자체에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심심할 때 조금씩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나흘을 이 책을 끼고 산다. 한번 뿐이기는 하지만 질문도 했다-내용은 잊어버렸다^^;-. 이게 웬 일이람. 그래? 뭔가 조금은 느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이 이 아이가 살아감에 있어 하나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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