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껏 나는 어떤 세계를 느껴왔었을까?
과연 무엇이 우리 스스로를 살아있다고 여기게 할까? 본인으로서의 자각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실재 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종류의 자각 말이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런 질문을 잠깐씩 떠올릴 때마다 앞서 말한 종류의 자각을 하게 된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형태도 아니고, 하필이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 곳, 지구에 있을까?' 사실 내가 다른 무언가라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는가. 누군가 거대한 존재(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 혹은 초월자)의 생각에서 나온 상상 속의 산물이 되건, 혹은 피조물이 되건, 우리가 음모론 속에서 흔히 보아온 회백색의 난쟁이 외계인이 되건, 아니면 육체가 없는 영적인 존재가 되건, 그건 전체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상관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이런 형상을 하고 있고, 이 우주와 세계를 느끼고, 자각할 때 우습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느낀다. 난 이상한 말장난 속에서 스스로를, 그리고 세계를 자각하고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각은 다양하다면 다양하고 그렇지 않다면 또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의 대표적 감각기관인 눈을 생각해 보자. 사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기껏해야 가시광 영역에 있는 빛의 일부를 감지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태양에서 출발한 강한 광선이 부딪치고 산란하며, 반사되어 온 것만을 말이다. 만약 우리가 보는 가시광 영역보다 높은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있을거다. 어쩌면 색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글자나 숫자가 튀어나오는 컴퓨터 같은 디스플레이를 가질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다른 감각기관도 한번 생각해 보자. 본다는 것 다음으로 외부의 무언가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듣는다는 행위일 거다. 귀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 특정한 영역의 소리에너지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박쥐가 느끼는 세상은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퇴화된 눈을 가지고 있지만 날렵하게 비행하고 비행 중 사냥을 하는 이 생명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하고 있는 거다. 다음으로 맛, 즉 먹는 것. 이것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우리의 감각의 일부이다. 나는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고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많고, 분명히 훈련이 잘 된 소믈리에나 예리한 미식가들이 존재한다. 그들과 내가 느끼는 세상은 같을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내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의 수배나 수십배가 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그들에게는 내가 느끼는 세상 그 이상이 분명히 있다. 또한 촉각은 어떤가.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비가 내릴 때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감촉을 느끼고, 또한 따뜻한 물의 기운에 몸을 맡끼는 것도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누군가의 따뜻함을 만지고 입맞추고 살을 맞대는 것도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타인보다 잘 느끼고 반응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이상한 감각기관 이야기의 종착역이자 이 책이 이야기하는 냄새, 후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난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냄새의 다양함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향수를 읽은 것은 고등학교 입학 직후였는데, 그 때까지 축농증도 약하게 있고 코감기가 잘 걸리는 편이라 늘 냄새에 둔감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냄새와 향기에 대한 묘사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그루누이를 향한 시기심을 느꼈다. 나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세계에 살고있는 존재 때문에. 부러움도 아니고, 동경심도 아니다. 단지 시기심이다. 이건 마치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보통의 사람들을 시기하고, 청력을 상실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품는 것과 동일하다. 냄새의 세계에서는 나는 무력할 뿐이다. 그 세계와 나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시각으로 비유를 하자면 나는 암흑 속에 서있지만 그루누이는 빛의 홍수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몇천배는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인간의 후각세포는 그 민감도가 낮고, 역치도 상당히 낮아 오랫동안 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더이상 그걸 느낄 수 없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루누이가 느끼는 세상은 개가 느끼는 세상과 비슷한 건가? 물론 그건 아니겠지. 쥐스킨트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인간이긴 하지만 전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후각세계의 구원자의 이야기로.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누구도 속해있지 않은 세계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러니 그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자의 손길을 우리 그토록 잔혹하게 뿌리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느 한 살인자의 이야기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루누이가 아닌 평범한 그냥 인간으로서 우리가 보는 세계는 결코 냄새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천상의 무엇을 선의로도 악의로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우리는 오해를 하고 말았던 거다. 구원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인간 세계의 인식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