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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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의 닥친 큰 위기가 왔을때, 나는 과연 그걸 정면으로 받아내고 극복할 용기와 역량이 있는가?


 사실 살아오면서 큰 위기를 못 겪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위기를 되도록이면 피해가자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그래서 만약 도저히 피하지 못할 큰 위기가 왔을 때를 생각하면, 너무 불안하고 끔찍하다. 용기와 역량이 있기를 바라지만, 한번도 그걸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기에 불안하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이 굴곡지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면 그것이 결코 나를 좌절시키거나 꺽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경험을 자산으로 더욱 큰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한땐 나에게 큰 시련이 닥치길 바란 적도 있었다. 어차피 겪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겪고 그걸 경험삼아 앞으로 올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스스로 부딪치려고 하지 않았기에 피해갔었다. 여기에 나오는 멋진 사나이는 위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남자다. 전편에서는 이 인물이 왜 이렇게 이상하고 과거의 모습에 집착을 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후편에서는 강인하고 멋진 남자다. 인생에 찾아온 큰 위기에 호탕하게 맞서며, 큰소리치며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의 모습에서부터, 강인한 생활력까지. 아들이 불안해 하고 의심하던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책은 전편과 후편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예 같은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리즈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편이 내가 알지 못한 부모님의 또다른 모습에 대한 놀라움과 이상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각에서 찾을 수 있는 신선함이 감상의 포인트였다면, 이번 후편은 예상치 못한 불의에는 용감하게 맞서며, 결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의지를 남기는 남자의 모습이 감상의 포인트가 되어버렸다.

 남들이 볼 때 실패하고, 나이가 든 마당에 꿈이니, 이상이니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을 받지만(실제로 TV에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이런 것일 거다), 이렇게 사는 건 결코 의미가 없지 않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신념이야 말로 나의 인생을 이끌어나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끌어 가는 강인한 인생의 원동력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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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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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절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표현할까? 아니면 더 비참하고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표현할까?

  내 생각에는 전자가 더 많을 것 같다. 나자신도 그러거니와 흔히 낙천적인 사람이건, 비관적인 사람이건 현실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과거의 자신을 더 우위에 두고, 현실의 자신을 채찍질해 더 나은 미래의 자신을 만들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그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 부터 언제나 같이 있었고, 봐왔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봐왔던 그 모습은 자식을 위해 원래의 자신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온 당신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튀어 1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아버지는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냥 이상하다. 그리고 어쩜 그렇게 상식적이지가 않은지. 그러던 차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 입으로 들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으로(그것도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굉장한 인물이었다고 말이다. 그는 용감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이다. 더군다나 더욱 충격인 건 어머니마저 그런 아버지와 함께 그 길을 같이 걸어갔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 사람들이 나의 부모님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주로 하게 될까? 과연 나의 부모님은 멋진 분들이시구나. 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예전에는 그렇게 멋진 분들이셨는데 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참 이 상황에서 생각을 하는 사람은 12살의 소년이다. 사실 자신이 10대 초반이었을때의 생각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 솔직했던 생각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부모님의 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었다면 분명히 후자의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 당시 난 불만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의 사회에 어른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한 꼬마가 있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건들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고, 그 또래에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이 아이는 분명히 성장할 거다. 그리고 그 당시의 고민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같이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들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멋진 꼬마이다. 이런 고민을 이 녀석에게 넘기는 친절하지 못한 그의 부모님들이 오히려 문제다. 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왔을까? 그리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괴짜라고 밖에 느낄 수 없도록 행동해 왔을까? 특히 아버지가 말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미화하고 헤어 나오지 않았던 게 아닐까? 물론 지금(이 책의 1권)까지는 그래왔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람도 정체하지 않고 언제나 변한다. 이어질 이야기에서 펼쳐질 새로운 현실은 모두 다 바뀌길 요구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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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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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는 어떤 세계를 느껴왔었을까?

 과연 무엇이 우리 스스로를 살아있다고 여기게 할까? 본인으로서의 자각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실재 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종류의 자각 말이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런 질문을 잠깐씩 떠올릴 때마다 앞서 말한 종류의 자각을 하게 된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형태도 아니고, 하필이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 곳, 지구에 있을까?' 사실 내가 다른 무언가라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는가. 누군가 거대한 존재(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 혹은 초월자)의 생각에서 나온 상상 속의 산물이 되건, 혹은 피조물이 되건, 우리가 음모론 속에서 흔히 보아온 회백색의 난쟁이 외계인이 되건, 아니면 육체가 없는 영적인 존재가 되건, 그건 전체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상관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이런 형상을 하고 있고, 이 우주와 세계를 느끼고, 자각할 때 우습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느낀다. 난 이상한 말장난 속에서 스스로를, 그리고 세계를 자각하고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각은 다양하다면 다양하고 그렇지 않다면 또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의 대표적 감각기관인 눈을 생각해 보자. 사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기껏해야 가시광 영역에 있는 빛의 일부를 감지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태양에서 출발한 강한 광선이 부딪치고 산란하며, 반사되어 온 것만을 말이다. 만약 우리가 보는 가시광 영역보다 높은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있을거다. 어쩌면 색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글자나 숫자가 튀어나오는 컴퓨터 같은 디스플레이를 가질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다른 감각기관도 한번 생각해 보자. 본다는 것 다음으로 외부의 무언가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듣는다는 행위일 거다. 귀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 특정한 영역의 소리에너지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박쥐가 느끼는 세상은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퇴화된 눈을 가지고 있지만 날렵하게 비행하고 비행 중 사냥을 하는 이 생명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하고 있는 거다.  다음으로 맛, 즉 먹는 것. 이것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우리의 감각의 일부이다. 나는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고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많고, 분명히 훈련이 잘 된 소믈리에나 예리한 미식가들이 존재한다. 그들과 내가 느끼는 세상은 같을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내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의 수배나 수십배가 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그들에게는 내가 느끼는 세상 그 이상이 분명히 있다. 또한 촉각은 어떤가.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비가 내릴 때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감촉을 느끼고, 또한 따뜻한 물의 기운에 몸을 맡끼는 것도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누군가의 따뜻함을 만지고 입맞추고 살을 맞대는 것도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타인보다 잘 느끼고 반응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이상한 감각기관 이야기의 종착역이자 이 책이 이야기하는 냄새, 후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난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냄새의 다양함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향수를 읽은 것은 고등학교 입학 직후였는데, 그 때까지 축농증도 약하게 있고 코감기가 잘 걸리는 편이라 늘 냄새에 둔감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냄새와 향기에 대한 묘사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그루누이를 향한 시기심을 느꼈다. 나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세계에 살고있는 존재 때문에. 부러움도 아니고, 동경심도 아니다. 단지 시기심이다. 이건 마치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보통의 사람들을 시기하고, 청력을 상실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품는 것과 동일하다. 냄새의 세계에서는 나는 무력할 뿐이다. 그 세계와 나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시각으로 비유를 하자면 나는 암흑 속에 서있지만 그루누이는 빛의 홍수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몇천배는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인간의 후각세포는 그 민감도가 낮고, 역치도 상당히 낮아 오랫동안 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더이상 그걸 느낄 수 없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루누이가 느끼는 세상은 개가 느끼는 세상과 비슷한 건가? 물론 그건 아니겠지. 쥐스킨트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인간이긴 하지만 전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후각세계의 구원자의 이야기로.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누구도 속해있지 않은 세계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러니 그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자의 손길을 우리 그토록 잔혹하게 뿌리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느 한 살인자의 이야기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루누이가 아닌 평범한 그냥 인간으로서 우리가 보는 세계는 결코 냄새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천상의 무엇을 선의로도 악의로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우리는 오해를 하고 말았던 거다. 구원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인간 세계의 인식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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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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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자 생각하자 그리고 그 생각을 쏟아내자

 보통 씨의 글의 장점은 그가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그는 현대적 의미의 철학자이며, 사변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의 것들을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가 뜨는 것을 보며 생각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동물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며, 혼자 밥을 먹으며 생각하고, 자신의 과거 한 순간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한편의 글로 자아낸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도 언제나 생각한다. 점점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TV를 보고 있는 것은 점점 고역이 되어간다. 그 속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냥 따라가고 생각을 맡겨야 한다. 그게 너무나도 싫어져만 간다. 반면 책을 읽는 건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무한한 시간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그 생각을 많이 말하고 표현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가령 서너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 생각을 남들에게 말해줘야지라 맘을 먹으면, 어느새 이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생각을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그럴 때는 실망과 함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힘껏 고개를 내민다. 내게 스쳐가는 단상을 모두 잡아내고, 기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희망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단 하나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찾고 만다. 그저 공허한 단어들만이 문맥에 맞지 않게 둥둥 떠다니고 만다. 조금더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있는 지우개가 '타임오버야' 라고 한마디 말을 하고 내개서 그 생각을 빼앗고 만다.

 아~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글을 잘 쓴다기 보다는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다양한 시각과 생각, 느낌을 쏟아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을 읽을때면 부러움과 한편으론 시기심으로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평을 짜게 주는 이유는 그 기분 나빠짐에 대한 표현이다. 덧붙이자면 이 짧은 분량도 맘에 들지 않는다.

 '이봐 보통 씨. 나는 돈을 내고 당신의 책을 사서 보는 독자란 말이야. 그러니 빨리 더 당신의 생각을 보여달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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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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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그걸 생각하는가?

 그리고 왜 나는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가?

 삶은 영원하다. 한 사람은 태어나고, 있는 힘껏 살아가고, 그리고 죽는다. 죽음 이후의 삶은 흔히들 생각지 않기에 그리고 의미가 없을 수도 있기에, 삶의 순간은 매순간이 새롭고 영원하다. 힘껏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무엇인가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희귀한 경험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자신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순간이 삶 속에서 흔한 일일까? 그 순간이 일생동안 과연 몇 번 찾아오게 될까?

 보통 씨가 말하는 것과 같이 정말 놀라운 확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정말 놀라운 확률에 의해,(그리고 보통 아주 조그만 계기로 인해) 사랑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렇기를 바란다. 그래서 끊임없이 물어본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걸까?' 하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앞서 삶이 영원하다고 했건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 개개인이 의식하는 영원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사랑만을 하진 않는다. 그리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필연이며, 사랑을 시작했으면 사랑을 끝맺는 것도 필연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그 과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의 순간을 의미있게 만들고 싶어한다. 영원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내고 싶기에.

 그래서 나도 늘 묻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왜 나는 당신들을 사랑했었지?' 그리고 '왜 아직도 사랑하는 거지?' 하지만 알고는 있다. 나는 사실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단지 두렵기 때문에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건데 말이다. '왜 나는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한 걸까?' '왜 니가 나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말았을까?'

보통 씨의 책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기분이 가라않는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게 주어진 영원의 시간에서 이런 걸 고민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고민해야만 하는 건지 알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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