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트 블루 (Brilliant Blue)
함지성 지음 / 잔(도서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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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사랑은, 이 끝나지 않는 길고 긴 터널 같은 그리움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강물처럼 투명하고 푸르던 그의 눈. 내가 선택한 사랑. 우리의 10년 뒤 여름. | p142


프랑스에 사는 소중한 친구 커플의 결혼 초대장을 읽어 내려가며 ‘수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엑상프로방스라는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결혼식을 생각하며, 한껏 기분이 들뜨다가도 다시금 ‘그’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3년 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던 남자, ‘리버’. 이미 이 둘의 관계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수키가 숨 쉬는 공기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사람.


“ 이 방 안 모든 것이 그 자리 그대로이지만,
결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나 눈빛 같은 것.
순간의 열정이나 다칠 줄 알면서도
진심에 닿기 위해 도전하는 용기 같은 것. ”


다시 찾아간 엑상프로방스에서 그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독자들도 진한 푸른빛 사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림 같은 도시에서 시작된 운명 같은 사랑이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그저 조용히 사라져갔던 그것.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고 있을 첫사랑 또는 풋사랑 같은 무르익지 못했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수려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더해져 내내 사랑을 노래하는듯한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어왔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싶어 했고,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 한 단 한 가지 사실을. 계속해서 모든 순간에 지표가 되어 주던, 단 한 가지 사실을.
그건 아주 쉽고, 당연하고, 분명하고, 또 뻔한 사실이었다.
“리버가 보고 싶어.”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나의 진심. | p214


진한 첫사랑의 여운,
그때 왜 용기 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마음속에서는 너무 당연한 사랑이지만
그 마음을 꺼내 보이기에는 부족했던 용기,
그 둘 앞에 늘어선 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혹여 지쳐버리면 어쩌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내내 마음 졸였다.

책을 덮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또다시 짙은 푸른빛을 응시하며 눈을 감아본다.
오묘하게 빛나는 ‘브릴리언트 블루’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푸른빛이
마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 목소리가 참 간지러워서
풋- 하는 웃음이 나고야 말았다.

오늘 밤,
한 여름의 풋풋한 사랑 한 잔 어때요?


++ 책 속의 문장들

그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부드러운 비단 뱀처럼 그의 입술에서 흘러내리던 나의 이름은, 세상 그 어떤 노랫말보다도 기분 좋게 들렸다. | 81

나는 다른 어떤 순간들보다 그런 것들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익어가는 포도나무의 향기. 매일 밤 나를 잠들게 만든 것들. 나의 눈을 감게 한 것들. 우리가 길게 늘어뜨린 시간들. | 107

나는 몰랐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좀 덜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모든 의심은 하늘을 향해 쏘는 화살과도 같았다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을. 그래서 가장 아픈 사람도 나였다는 것을. 남은 것은 나의 못난 얼굴과 매일 밤 일기에 써 내려간 날이 선 문장들뿐이었다는 것을. 나의 사랑은 진작에 남프랑스 작은 마을, 엑상프로방스에 두고 왔다는 것을. | 174


도서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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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블루 (Brilliant Blue)
함지성 지음 / 잔(도서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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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사랑. 처음부터 끝까지 눈과 귀를 간지럽히는 사랑. 시 한편을 읽는 듯한 짙은 푸른 빛 사랑 이야기가 한 여름밤과 너무 잘 어울린다.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담아봤을 절절한 사랑을 수줍게 다시 꺼내어 마주하게 한다. 표지디자인도 정말 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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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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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는 자수를 할 때가 제일 즐거워 보이는구나.”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소년, ‘기요’는 자수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독서가 그렇듯, 누군가의 축구가, 달리기가, 피아노 연주가 그렇듯, 자수는 기요에게 실과 바늘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넘어,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가족을 이해하고,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해주는 것 이상이다.

나는 ’기요의 자수‘와 ’나의 책읽기‘가
묘하게 겹쳐보였다. 그저 책을 읽듯, 달리기를 하듯, 그냥 자수일 뿐인데. 그가 자수를 즐기는 것이 왜 불편한 것이 되었을까.
기요의 순수한 열정을 성별과 연관시키고, 남자라서 하면 안된다는, 그런 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편견이 자연스러운 것은 어쩌면 어른들이 만들어낸 틀에 스스로 갖혀버린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함을 원하는 엄마,
사쓰코의 마음도 너무 잘 알것 같았다.
‘실패할 권리’와 ‘비에 젖을 자유’
모두가 그 아이의 선택이고 스스로 경험을 통해 깨닫도록, 나는 그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내 아이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책의 페이지를 넘길 수록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속에 담긴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쌓여갔고, 작가 데라치 하루나는 어느 인물의 서사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충실하게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것이 보였다.

‘물을 수놓다’가 무슨 의미일까
책을 읽기전부터 궁금했다.
물이라는 생동하는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것.
어딘가에 고이지 않고 내내 흘러가는 것.
아마 물이라는 것은 기요의 이름처럼
그를 지켜주는 단단하고 힘있는 흐름이리라.
이 다정한 이야기 속에는 반짝이는 물빛처럼
누나의 드레스에 놓여진 고운 자수처럼
억지로 거스르려 애쓰지 않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라고,
‘그래도 좋다’고 말해주는것 같았다.

그래도 좋다.
물처럼 흘러가자.
눈부신 반짝임으로 가득한 윤슬을 바라보듯.
그렇게 흘러가보자.

“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 항상 움직인다. 그렇기에 청정하고 맑다. 한 번도 더렵혀진 적 없는 것은 ‘청정함’이 아니다. 계속 나아가는 것, 정체하지 않는 것을 청정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이 울고 상처 입을 테고, 억울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이길 소망한다. 흐르는 물처럼 살아다오. ” | p285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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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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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에게도,이제 막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성장이고 때로는 그 곁에서 지켜보는 어른의 손을 잡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따뜻함이 가득한 그런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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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의 위로 세리프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 빛소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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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가 되도록 초대한다. 우리는 종종 강과 닮았다. 부주의하면서 강하다. 소심하면서 위험하다. 맑으면서 탁하다. 소용돌이치고 반짝이고 고요하다. 소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한 인간의 삶은 강물처럼 신선해야 한다. 같은 통로로 흘러도 매 순간 새로운 물이 흘러야 한다.” | p119

#열린공간의위로
#그레텔에를리히
#빛소굴
#도서제공

와이오밍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던 그레텔 에를리히에게는 투병중인 연인이 있었다. 한 때 그녀와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병세가 깊어지며 그는 먼저 도시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하루라도 빨리 촬영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거침없이 흩어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느날 아침 그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이미 눈을 감았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그레텔은 도시로 돌아가는 대신 와이오밍에 남기로 한다.

“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가는 일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 역설로 압축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라졌다.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고 바닥에 누워서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요란한 웃음을 터트렸다가 결국 울어버리곤 했다. 죽음만큼 웃긴 농감은 없을 거야. 우리는 동의했다. ”
| p57

“ 이 넓은 공간은 꼭 가능성 같아서 슬퍼져.
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삶의 가능성 ”
| p58

그녀에게 와이오밍의 대자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도시에서의 삶 대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목장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곳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스펙트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대자연의 위로와 거칠지만 순박한 사람들로부터 얻는 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목장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가보지도 않았던 산으로 들판으로 몇천마리나 되는 양들을 홀로 이끌어 나아가야 하고 풍족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요즘같은 시대라면 더더욱 마치 다른 시공간속에 있는 듯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태껏 존재해왔고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 속에 감춰진 섬세함으로 동물들을 보살피고 기른다.

그리고 작가는 그 환경 속으로
더 깊이 걸어들어갔다.
‘거침없음’의 이면에 ‘거침없이 견딤’ 속으로.
그 안에서 오롯이 자연을 느끼고 향유하며
‘땀으로 일궈낸 사랑의 언어들’속에서
상처가 아물어간다.

카우보이와 목장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지식은 그저 영화에서만 보던것이 전부였지만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생각의 전환을 경험했다. 남성미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는 누구보다 섬세해야 하고 다정해야 하며 자연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얼굴을 붉히고 모자를 고쳐쓰며 겨우 내뱉는 사람들이며, 여인과의 깊은 대화 후에는 “심장이 삐끗한 거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 그들의 힘은 곧 부드러움이고 그들의 강인함은 보기 드문 세심함이다. ” | p78

“ 이곳에서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잘 버텨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적어도 전동적으로 목장 생활은 물질주의와는 거리가 있고 인간이 동물과 동고동락하며 얻게 되는 성취감, 밤에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별자리를 찾아보는 등의 소박한 기쁨을 대표한다. 내가 배우게 된 강인함은 순교자적인 끈기나 단순무식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적응의 기술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강인함은 곧 연약함과 통하며, 온유함이야말로 진정한 치열함이라고. ” | p66


혹시 ‘브로크백 마운틴’ 이라는 영화를 기억할까?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한 퀴어 로맨스 영화인데 왠지 이 책을 읽으며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진짜로 그 곳이 와이오밍이었다.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레텔이 머물렀던 목장의 분위기를 언뜻 알 수 있어 슬며서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한없이 충만하고 대자연 속의 풍요를 내 안으로 더 가까이 가져올 수 있었다.

도서 제공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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