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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평점 :
“ 고양이와 나, 고양이가 된 그를 여전히 사랑하는 나”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 별안간 거대 고양이가 나타나 묻는다,
“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고양이로 살기를 원한다면 ‘예’,
원하지 않는다면 ‘아니오’에 체크하시오. ”
이렇게나 갑자기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고양이의 삶을 선택할지 말지 결정하라니,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분명 매혹적인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친구들과 다음 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다음 생에는 결혼을 안할란다, 애도 안낳고 나 혼자 살란다, 아니다, 다 싫다, 나는 그냥 냇가에 돌로 다시 태어날란다.. 우리의 결론은 늘 돌멩이가 되어 끝이 나곤 했다.
그런데 고양이라니? 🐈
그 귀엽고 새침한 작은 생물체?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제안에 갈수록 묘하게 끌리는 나를 추스르며, (결국 나는 고양이는 될 기회가 없었지만), 책을 통해 고양이가 된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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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의 물음을 던진 거대 고양이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책은 일단 고양이가 된 이후의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삶에 더 깊이 관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양이가 되었지만 어떨떨한 마음에 소리내어 울어보지도 못한 채 서둘러 해야할 일들을 처리해내는 남겨진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고양이가 된 배우자, 파트너, 친구를 위해 오롯이 그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사람들.
“ 그도 귀여운 생물이고, 고양이도 귀여운 생물인데, 그가 고양이가 되니 두 배로 귀여웠다” , p32
나는 좀 슬플 것 같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손 잡고 거닐며 보내는 시간이, 사람으로서 존재했던 시간이 사라지다니…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붙잡았던 질문, 그 사람은 왜 고양이가 되길 선택했을까.
“ 내가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나와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서 차라리 고양이로 사는 쪽을 선택한 거라고… ” | 30
마음을 추스릴 틈도 없이 내가 그를 힘들게했나 싶은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서로를 지지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연대, 옆에 앉아 같이 눈물 흘릴 줄 알고 위로하고 보살피며, 또 서로의 고양이를 존중하며,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한다는 점이다.
동네 작은 책방을 하던 친구가 고양이가 되면서 어떨결에 사장이 되어버린 번역가, 출판하고싶은 원고를 찾느라 2년 넘도록 책 한 권 출판하지 못한 어느 이름 없는 출판사 사장, 파트너가 고양이가 되어버린 작가
묘하게 책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된 세 사람.
세상을 짝사랑하는 소박한 마음들, 한없이 서투르기만 해서 세상과 제대로 이어지고 소통해본 적 없는 이들이 용기를 내어 한걸음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이야기.
고양이와 나
고양이가 된 그를 여전히 사랑하는 나
소박한 사랑을 전하는 고양이 판타지 소설 💗
우리의 얼어버린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사랑스러운 이야기들, 같이 읽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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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그 존재가 고양이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고양이가 된 사람의 수명은 어 느 정도일까? 고양이만큼 살까, 사람만큼 살까?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다니. | 31
물리적 형태가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소리로 바꾸는 것이 '말'이고, 눈으로 볼 수 있게 문자로 옮기는 것이 '글'이다. 그러고 보면 말이나 글은 번역이기도 하다. | 156
우리의 관계가 하나의 방이라면, 그 방의 창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창문으로 상쾌한 바람이 들어오고 나갔다.
우리의 방에 꽉 닫힌 문은 없었다. 언제나 부담 없이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방. 아침의 빛이 들어오기도 하고, 오전이나 오후의 빛이 들기도, 저녁이나 밤, 새벽의 어둠이 내리기도 하는 방이었다. | 181
그때는 우리 사이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고양이가 된 지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자유롭게 둘 수도 있었다. 고양이가 된 지금의 나처럼 해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하는’ 대신 그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기만' 할 수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199
그냥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이었던 그도 너무 사랑하고, 고양이가 된 그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데. 사람이었던 그가 그립고, 고양이가 된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여러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뒤섞여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순간이 있는 건데. | 217
(도서제공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