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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남자들은 뚜껑 열린 맨홀처럼 인생에 잠복하여 어린 여자들을 삼킨다. 어리고 똑똑지 못한 여자들을 삼킨다.(p26)
이 도시가 자라나는 방향에는 아무 계획이 없다는 걸 누가 봐도 깨달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p29)
성적 취향만큼 이런저런 복합적인 차별 의식을 뾰족하게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p30)
아가야, 웃으렴. 겁내지 말고. 팔매질을 하렴. 운동회 날 받을 터뜨리려 애를 쓰는 아이들처럼. 싸우렴. 다치지 말고. 구멍에 빠지지 말고. (p40)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한,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발견하면 갑자기 화가 났다. 불행을 모르는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 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p49)
최악의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강인해진다. 불행을 팔아 일자리를 얻는 것쯤은 마음에 미약한 실금도 긋지 않았다.(p50)
그것이 인간의 습성인 것이다. 확률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p51)
부족한 것 없는 여자를 다시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을 어설픈 덫으로 잡으려는 시도나 다름없었다.(p74)
사랑받는 사람들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리를 한다. (p78)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景)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p90)
음식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약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생색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p97)
죽음은 너무 가깝다. 언제나 너무 가깝다.전철에서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는 기분 나쁜 남자처럼 가깝다.(p103)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가치 없게 취급되는 사회란 걸 알면서도 이 전공을 확고하게 선택했고, 그 선택의 자유를 자기보다 뒤에 오는 이들에게도 확보해주려고 찬 바닥에 앉아 있었다.(p108)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었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고 공부도 좋아했지만 그 정도 인물이야 흔하다. 무얼 이뤘건 모두 운 좋게 받은 도움들 덕분이었다. 이만큼 적시에 도와주려는 손들이 다가왔던 인생이 또 어디에 있을까.(p115)
있잖아, 마음에 갈증 같은 게 있는 사람은 힘들다? 그런 사람은 항상 져. 내가 보기엔 네가 힘든 게 몸무게 때문도 아냐. 마음 때문이야.(p121)
마흔은, 마흔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삶이 지나치게 고정되었다는 느낌, 좋은 수가 나오지 않게 조작된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다.(p130)
고등학교 생활은 힘들고, 작은 호의는 다른 곳에서보다 오래 효력을 유지한다.(p153)
결혼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길 수 있는 사람과 더이상 얕은 계산없이 팀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p164)
그 짧은 침묵은 거짓말에 가까웠다. 최종 판단은 당신에게. 성인과 성인의 거래는 원래 그런 것이다.(p170)
어른들이 뭘 너무 많이 묻는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귀찮은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p180)
몸은 그저 몸이라는 걸 의료계 종사자들은 여느 업계 사람들보다 잘 이해했다. 몸에 그 이상의 복잡한 의미 같은 걸 부여하지 않아서 서로 편했다. 스트레스는 많고 시간은 없어서 여러 번거로운 과정들이 깔끔하게 생략되었다.(p185)
좋지 않은 구덩이에 태어나면 계속 그 구덩이에 머물러야 해?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에서 나름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면 약은 거야? 모두가 무기력에 잠겨야 해?(p221)
조그만 권력을 쥐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열명, 백명을 괴롭게 만드느 사람은 어느 집단에나 있지만, 그런 사람이 군대에 있을 때가 최악이 아닐까(p233)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언제나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냈다.(p244)
넘기 전에는 희미하다. 넘고 나면 선이 아니라 벽이 된다. 아주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힘들어진다. 살면서 그런 선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까. 넘어가게 될까.(p251)
가끔 너무 난도질당한 마음은 상태를 살피기도 난처해서 감각에만, 오로지 단순한 감각에만 의존해야 할 때가 있다.(p272)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p305)
하여간 대한민국 성교육 실태는 참담한 수준임에 분명했다.수치심을 가져야 할 순간에 갖지 않도록, 가지지 않아야 할 순간에 갖도록 잘못 가르치고 있다.(중략)사람들은 일정 시점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계속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고, 친구도 그랬음이 분명했다.(p309)
처음 좋아하게 된 걸 계속 좋아하지 않게 되어도, 다음 걸 또 찾으면 돼요. (p321)
사는 건 지옥구덩이 같은 데 즐거울 때는 소수의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을 때뿐이란 걸 잊지 않으려고요.(p335)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법을, 힘겹게 마음을 방어하는 법을 배웠다.(p351)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젊어도 그 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없이 (p381)
정세랑 작가님을 좋아하지만 50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이라 선뜻 망설여지는 책이기도 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보니, 기억하면서 읽어야한텐데, 메모해야하나? 하는 부담감이 있었달까.
읽기 시작하니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 어려웠던 책이었다.^^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지만, 우연찮게, 혹은 필연으로 등장인물들이 만나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고, 어떻게든 작은 인연들로 이어졌다.
인물들의의 연결고리나, 지점들이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기발했다.
아...어떻게 이 50명을 이렇게 다 연결지었을까...할 정도로 놀랍기도 했다.
작은 사건들부터, 대형 사건들까지 사회 전반의 사회문제들을(씽크홀 추락사고, 대형 화물차 사고 , 낙태와 피임, 층간소음, 성소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병원의 과도한 업무,가정폭력, 산업재해, 따돌림, 자살 등)
한가득 담아냈다.
주인공들의 먹먹한 삶도, 간간히 달달하고, 흐믓한 이야기들도 다양하게 전개되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각 단편단편들은 놀라울 정도의 힘과 굵은 메지지를 전달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이야기들과 인물들.
이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거대한 소설이 된것은 역시 정세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것 같다.
독특하고, 사랑스럽지만, 먹먹한 이야기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행복과 분노가,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역시 정세랑 작가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