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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평점 :
모든 공사가 끝나면 이들(비계공)은 자신들이 설치했던 결과물을 스스로 해체한다. 자식과 길을 걷다가 "저~기 저거 보이지? 저게 아빠가 만든거야~"라는 자랑조차 비계공은 할 수 없다.
뭐 꼭 이세상에 무언가 남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도 가끔 저 높은 곳에서 위태롭게 작업하는 비계공을 넋 놓고 본다. 그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이 사회라는 게 주인공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다는 상식을,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조연도 얼마든지 멋질 수 있다는 진실을 말이다.p201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 판 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다. 오야지들은 인부들 다그쳐서 공사를 빨리 끝내야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인부 입장에서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일자리 보장받을 수 있따. 안전관리자가 백날 '뛰지 마세요', '하나씩 들고 가세요' 잔소리해봐야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빠릿빠릿 안 하면, 하나씩 들고 다니면, 오야지한테 일 못한단 소리를 들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잘릴 수도 있따. 그런데 뛰지 말란다고 안 뛸 수 있겠냐는 말이다. 생계가 달린 문젠데.p263
산업별 업무상 사고 사망 재해 비율을 보면 놀랍다. 2017년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총 964명이다. 이 가운데 506명이 노가다 판에서 죽었다. 사망 사고 절반 이상이 노가다 판에서 터졌단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52.5퍼센트다. 전체 산업 노동자 가운데 건설 노동자 비율은 고작 16.4퍼센트인데 사망자 비율이 무려 52.5퍼센트면, 책상에 앉아 고민할 게 아니라 현장에 와서 보고 듣고 느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거시아니냐고 그렇게 했는데도 10년째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다면 진짜 무능 한 거고,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현장에 와 보시라고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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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의 작가가 낮에는 공사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며 집을 짓고, 밤에는 틈틈히 글을 지어 출간한 책이다.
기자 출신에 공사장 노가다꾼이라....꽤나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몸을 써서 돈을 벌겠다며 호기롭게 노가다판에 뛰어 들어 일명 '잡부'로 일하다 목수가 되기까지의 여정들과 그가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담은 책으로, 그는 건설 노동자, 근로자라는 말대신 '노가다꾼'이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여담이지만,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특히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이야기들이나(이를테면, 이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자신의 추억과 취향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수필들은 딱히 관심이 없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단순한 추억팔이와 감성팔이를 읽고 싶지 않달까.
하지만 이렇게 눅진한 땀냄새와 인간미 넘치는 에세이나 사회적 메시지들이 담긴 에세이는 참 좋아한다.
(직접 만났던 그 역시 참 사람 냄새나는 진솔하고 소탈한 분이었다!)
일을 하면서 작가가 보고 듣고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 사람, 산재사고, 인권, 노조에 관한 현장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담겨 있어 더 진솔함이 느껴진다.
고된 현장에서의 삶들이 진정성있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에피소드들도 재미있게 담겨 있다.
책에는 실제 현장에서 쓰는 용어들도 담겨 있고, 뒷 부분에는 용어사전들이 따로 담겨 있는데, 영어나 일본어에서 유래된 단어들을 우리말로 순화해서 담지 않은 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존중하듯, 사용하는 용어들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외래어 표기를 민감하게 생각하며 변화시키기 보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차별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이 노가다라며 무시하지만, 정직하게 육체노동을 하고 땀흘려 번 값진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설노동자들을 누가 감히 무시할 수 있을까.
부디 공사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대받거나 차별받지 않기를...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무엇보다 다치지 않기를 바라본다.